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 - 코믹과 멜로로 버무려진 살벌한 현실, 그러나 재미있다!

까칠부 2012. 2. 1. 08:33

흔히들 말한다. 가족이라고. 마치 가족과 같다고. 한 직장에서 함께 고생하며 회사와 운명을 함께 하기에 마치 한 몸과도 같다고. 어떤 이들은 회사를 위해 일하는 그들이야 말로 회사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한 말들은 사실일까?

 

그러나 천하그룹의 총수 진시황(이덕화 분) 회장은 그러한 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한 마디로 명쾌하게 정의를 내려준다.

 

"그걸 내가 썼어? 대필작가가 다..."

 

수십년을 천하그룹을 위해 몸바쳐 일했을 것이다. 천하메디의 공장장 오광만(이희도 분)이 아니다. 장량(김일우 분) 또한 마찬가지다. 가족마저 내팽개치다시피 자신의 모든 삶을 천하그룹을 위해 바쳐왔는데 그가 떠밀려 회사를 떠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마지막 눈물을 보이며 떠나는 장량에게 들려주는 진시황 회장의 위로와 충고는 그나마 최소한의 보상은 되었을까?

 

평소 가족이라고, 한몸이라고, 운명을 함께 하는 공동운명체라고 헌신과 희생을 강조하다가도 회사의 실적이 나빠지면 가장 먼저 잘려나가는 것이 바로 노동자들이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그토록 많은 연봉과 막강한 권한을 쥐어주는 것인데 경영진이 경영부실의 책임을 지는 경우는 회사가 망하기 전에는 그다지 없다. 물론 그렇다고 실적이 좋다고 노동자들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지도 않는다. 갈수록 늘어만 가는 비정규직은 그나마 혜택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다. 비정규직은 회사의 동등한 구성원조차 아니다.

 

"적자가 심한데 여기 있는 사람들(임원들)의 월급은 왜 자꾸 올라? 주주배당금은 왜 자꾸 오르는데?"

 

사실 이것은 그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상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다. 미국에서는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인사권을 쥔 주주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그 주주들에게 많은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자면 회사가 이익을 남겨야 한다. 장기적인 투자는 오히려 있는 돈마저 까먹기 쉽다. 투자가 반드시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가장 손쉬운 것이 정리해고다. 노동자를 대량으로 해고시키고 그 만큼의 인건비를 이익으로 남겨 주주들에게 돌린다. 어차피 CEO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회사이기에 장기적인 전략보다는 단기적인 이익에 충실하다. 당장은 가시적인 이익이 돌아오지만 결국 숙련된 노동자는 회사를 떠나고, 장기적으로 회사를 먹여살려야 할 잠재력은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미국의 제조업 위기의 한 부분을 그러한 미국식 경영문화에서 찾는 주장도 있다.

 

정규직을 해소하면 그 만큼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서도 한참 적은 비용으로 고용하여 부릴 수 있다. 마음놓고 해고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만큼 줄어든 비용은 다시 회사의 이익으로 돌아온다. 회사의 이익은 주주의 이익이다. 주주의 이익은 경영진에 대한 신임이다. 노동자의 사정 따위 알 바 없다. 극단적으로 회사가 망하더라도 다른 투자할 곳을 찾아 투자하면 주주들로서는 전혀 아무 상관이 없다. 전문경영인 역시 회사가 망하면 다른 자신을 고용해 줄 회사를 찾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가족이라고 공동운명체라고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회사는 갈수록 흑자에 이익을 내고 있는데 정작 노동자들은 구조조정당하고 더 열악한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이 그런 것이다. 그러한 냉혹한 자본주의의 원리에 있어 노동자란 항상 소외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노동귀족이라 한다. 그러나 본부장쯤 되는 장량조차 하루아침에 회장인 진시황의 지시에 의해 사표를 쓰고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일개 대리에 불과한 유방(이범수 분)은 말할 것도 없다. 그토록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최항우(정겨운 분)에게 고기를 구워주며 아부하는 모습은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천하메디 공장의 직원들은 경영진의 결정에 따라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야 한다. 일자리를 잃어야 한다. 하기는 진시황 회장조차 불로불사 신약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을 때 주주들로부터 불신임당하며 사면초가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었다. 힘을 가진 이가 바로 위에 있는데 손놓고 그저 시키는대로 따르기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노동자들의 가장 아픈 약점을 찌른 최항우의 전략은 매우 적절했다 할 것이다. 노동자가 아닌 개인으로 만든다. 천하메디 인천공장의 노동자가 아닌 한 가정을 책임진 가장으로, 한 개인으로 분리시킨다. 먹고 살아야 한다. 당장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공장보다는 그것이 우선이다. 다른 동료직원들보다 오로지 그것이 최우선이 된다. 먹고 살아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한 개인이 되었을 때 개인이란 한없이 무력할 수밖에 없다. 연대에 대한 책임과 신뢰가 사라졌을 때 개인이 되어 버린 그들은 사용자에 의해 무력하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전략 가운데 하나다. 노동자간의 연대도 사회적인 연대도 배제한 채 오로지 개인의 문제로만 접근하고 해결하려 한다.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약자일 수밖에 없다.

 

뭉쳐 있을 때는 확실히 사용자 입장에서도 부담이 된다. 팽월을 시켜 용역을 동원해 강제해산을 시도해 보기도 하지만 하나가 되어 저항하는 공장노동자들 앞에 그조차 쉽지 않다. 오히려 그러한 사실들이 마침내 언론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을 때 하나의 압력으로서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마저 그들의 입장을 알아주려 하지 않고, 결국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입장만을 쫓아 개인이 되어 흩어지려 할 때 무엇으로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는가. 결국은 회사와의 타협에 응해 농성을 푼 노동자들 역시 이제까지 몸바쳐 일한 일자리를 잃고 불안한 실업자의 신세로 전락한 것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차이라면 그들의 손에 쥐어진 회사가 약속한 퇴직금과 석달치 월급이 전부다. 하지만 그조차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약자란 그런 것이다. 노동문제에 있어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약자가 더욱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기업에 있어 국민이란 주주들이다. 그렇게 믿는다.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국가의 이익은 곧 국민의 이익이라고. 그래서 더욱 국민들은 국가의 이익에 민감하다. 그 이익이 자신의 것이라 여기기에 그것을 해치는 것들에 적대적이다. 경찰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 용역이라고 하는 사적인 폭력이 노동자에게 투사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경찰이란 공적 권력이다. 그리고 용역은 단지 회사의 이익을 위한 사적 폭력이다. 그 접점에 바로 국가와 국민이 있다. 과연 국민의 동의 없이 그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겠는가?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쫓고, 그 가족이 가족의 입장만을 쫓듯, 국민 역시 국민으로서의 이익을 쫓는다. 노동자라고 하는 연대는 그러한 서로의 이익과 입장에 의해 의미를 잃고 만다. 노동자의 연대도, 시민사회의 연대도 파편화된 개인 앞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죽하면 노동자와 연대하려는 같은 노동자나 시민사회에 대해서 국민 스스로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겠는가? 그들은 국민의 적이다.

 

바로 그것이 최항우의 힘이다. 천하그룹의 힘이다. 유방과 천하메디, 오광 공장장이 결코 그들에 승리할 수 없는 이유다. 노동자 자신이 그들의 적이 아니다. 천하그룹이 그들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이상 노동자와 그 가족 또한 그들의 아군일 수밖에 없다. 국민은 그들의 가장 큰 협력자이며 후원자다. 여론마저 그들의 편에 서고 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고서는 역전이란 불가능하다. 현실에서도 그런 상황에서 극적인 역전이 이루어진 경우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드라마니까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개 공장에서 공장장 개인에 의해 연구개발된 신제품이라고 하는 구원의 동아줄을 늘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열쇠를 쥔 것이 역시나 비정규직인 한신이라고 하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 하겠다. 과연 최항우라고 하는 현실의 이익인가, 아니면 같은 노동자로서의 천하메디 노동자들과의 연대인가.

 

백여치(정려원 분)가 단순히 천하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기업내 정치를 위한 캐릭터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말하자면 백여치란 백지다. 천하그룹 총수의 외손녀라고 하는 닫힌 환경에서만 안주하며 살아온 어린아이와도 같은 존재다. 그런 백여치가 세상을 만난다. 노숙자도 되어 보고, 이번에는 유방 덕분에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서도 눈을 돌린다. 오히려 현실에 대해 잘 모르기에 그녀는 솔직하다. 그녀가 보기에도 세상은 모순된 것들 투성이다.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오히려 원망스럽고 그래서 계란을 던지며 적의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래서 더 그녀가 보는 세상이란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천하메디 노동자들과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유방과는 다른 전혀 다른 입장에서 보는 것이라 더 의미가 있을 지 모른다.

 

유방이 백여치를 따라 저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백여치라고 하는 기득권을 등에 업고 그 또한 기득권에 편입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유방이 백여치를 자신이 있는 세상으로 끌어들인다. 그런 점에서 차우희(홍수현 분) 역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서 최항우가 있는 기득권의 세계로 편입되어가는 모습도 드라마의 주제를 위해 필요할 것이다. 백여치는 유방으로 인해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하던 세상을 보고, 차우희는 도리어 최항우를 통해 그저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삶을 접하게 된다. 드라마가 너무 길어질까? 어쨌거나 최초의 샐러리맨의 일상을 보여준다고 하는 의도에 유방의 캐릭터가 모순되지 않게 자기 역할을 찾아가고 있다. 조금 멀리 돌아온 감은 있지만 지금의 공장직원들을 위해 단식가지 하는 모습은 과연 유방이라는 생각이다.

 

드라마의 미덕일 것이다. 진지하지만 가볍다. 무겁지만 유쾌하다. 상당히 묵적힌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 방식은 한없이 경쾌하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단지 코미디로서 웃으며 즐길 수 있다. 전혀 관심없는 사람도 기업을 배경으로 한 활극으로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 드라마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주제도 있다. 그동안 주제의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드라마를 포기하지 않고 빠짐없이 지켜본 이유였다. 재미있다.

 

유방과 차우희의 관계가 궁금하다. 과연 백여치와는 어떻게 발전되어갈까? 차우희와 최항우와의 관계는? 반전이 있을 것 같다. 최항우 역시 회사라고 하는 권력의 희생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박범증(이기영 분)과 모가비(김서형 분)의 만남은 아마 그를 위한 복선일 것이다. 이제 절반 왔다. 길었던 절반인 만큼 나머지를 기대해 본다. 제작진에 대한 신뢰가 쌓여간다.]

 

참 살벌하다. 하지만 현실은 더 살벌하다. 우스꽝스러운 가운데 그럴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란 참으로 스산하기까지 하다. 말리는 아내를 뒤로 하고 직원들을 위해 묵묵히 걸어가는 오광 공장장의 모습에서. 그리고 그와 목숨을 걸고 함께 하려는 유방에게서. 무겁다.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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