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난폭한 로맨스 - 저조한 시청률의 이유, 로맨틱 코미디의 코미디란 판타지의 코미디다!

까칠부 2012. 2. 10. 08:01

코미디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실을 조롱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웃도록 만든다. 현실이 하찮거나 아니면 현실 밖의 도저히 웃을 수밖에 없는 또다른 현실을 만나거나. 로맨틱 코미디의 코미디는 이 가운데 후자다.

 

문득 잊고 있었다. 로맨스란 로망이다. 로망 또한 판타지다. 코미디 또한 판타지다. 사랑이라고 하는 판타지에 일상에서는 누릴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라는 판타지를 더한다.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다투고 마음껏 갈등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서도 마침내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그러한 행복에 대한 믿음을 사람들은 로맨스를 통해, 판타지를 통해 보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다. 로맨틱 코미디란 꿈의 다른 말이다.

 

역설일 것이다. 필자가 드라마 <난폭한 로맨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와는 반대다. 아니 근본적으로는 같다. 다만 행복으로 가는 과정에서의 지독스러울 정도로 음울한 현실들이 필자로 하여금 그것을 마치 현실처럼 느끼도록 만든다. 유은재(이시영 분)가 느끼는 자격지심과 박무열(이동욱 분)이 갖는 고독과 진동수(오만석 분)의 좌절과 오수영(황선희 분)의 열등감, 고재효(이희준)의 질투와 서윤이(홍종현 분)의 증오와 김동아(임주은 분)의 두려움 역시 필자 또한 언젠가 한 번 쯤은 느껴보았을 감정들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몇 번이나, 그것도 무척이나 간절하게. 여전히 그러한 감정들의 필자의 일부분으로 화인처럼 남아 있다. 그것을 일깨우고 만다.

 

평소 스스로 여자라고 하는 자각조차 거의 없이 살아왔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제 와서 후회가 된다.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어째서 나는 여자답지 못했었는가? 후회가 생기고 자기에 대한 혐오가 생긴다. 두려워지고 불안해진다. 차라리 도망치고 말자. 혹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야구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살이에 서툰 그저 외로운 바보일 뿐이다. 굳이 조연인 진동수와 오수영을 끌어들일 것까지도 없다. 중요한 것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꿈을 담당해야 할 주인공 둘이 이처럼 상처투성이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투사해야 한다. 스스로 이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실이 아니다. 꿈이다. 현실에서 누리지 못하는 꿈을 보여주어야 한다. 비록 유은재 자신은 여성시청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이입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캐릭터로 있더라도 최소한 그녀의 상대인 박무열 만큼은 완전무결한 꿈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바로 얼마전 종영한 MBC의 드라마 <나도 꽃>이 실패한 이유였다. 물론 남자주인공은 매우 멋있고 매력도 있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 너무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동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연민의 대상이었다. 그런 것은 차라리 멜로에 어울린다.

 

<난폭한 로맨스>도 그런 점에서 로맨틱 코미디라기보다는 멜로의 전형성을 닮아가고 있다. 당대 최고의 프로야구 스타플레이어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하는 화려한 수식어는 어느새 박무열이 갖는 격정과 비극 속에 가려지고 묻혀 버린다. 오히려 고난의 연속이다. 스타플레이어로서의 박무열의 모습을 보기도 전에 박무열이 겪는 고난을 통해서 오히려 그를 연민하고 동정하게 된다. 유은재가 박무열에 이끌리는 것도, 그리고 그녀가 박무열로 상처받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유은재 자신도 우울한데 박무열은 더 우울하다. 현실도 고단한데 드라마는 더 고단하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강종희(제시카 분)와 같은 라이벌 캐릭터의 존재는 그야말로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라이벌이 있음으로 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이 더 간절해진다. 보다 드라마틱하게 서로의 마음이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이번 <난폭한 로맨스> 12회에서 강종희가 박무열에게 다시 시작해 보자 말하는 것이 바로 그래서다. 이제까지 막연하게 과거에 기억에 의지해 강종희에 집착하던 박무열이 그를 계기로 강종희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게 된다. 유은재 역시 강종희의 존재를 의식하며 더욱 박무열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키워간다. 그런데 어째서 강종희의 캐릭터에 대해 시청자 가운데 그토록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일까?

 

너무 우울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또 다른 현실에서의 기쁨과 행복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들을 드라마에 이입함으로써 누르며 즐거울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박무열을 동정하고, 주위 등장인물들을 연민하는 사이 어느새 유은재마저 불쌍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현실도 고단한데 드라마속 인물들도 고단하다. 현실도 우울한데 드라마속 상황도 우울하기만 하다. 그런데 거기에 강종희라고 하는 우울함이 더해진다. 피곤해진다. 물론 말했듯 필자의 경우 그러한 극도의 우울함 속에서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커지고 선명해질 이후의 기쁨과 행복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우울함만을 기억하며 지내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지쳐버리게 된다.

 

드라마의 흥미를 더하고 있는 스릴러 역시 여기에 한 몫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드라마에 스릴러라는 음험함까지 더해진다. 그렇다고 그것을 남자주인공인 박무열이 주도적으로 해결에 나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박무열은 한심할 정도로 협박범에게 휘둘리며 매번 궁지로 내몰리고 있었다. 유은재와 김동아, 김태한(강동호 분)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협박범으로부터 박무열을 지키고 범인을 찾으려 애쓰는 사이 그는 안전한 곳에 숨은 채 유은재의 속이나 썩이고 있을 뿐이다. 드라마의 분위기는 갈수록 음울해지는데 그렇다고 정작 남주인공인 박무열의 남성으로서의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 성공한 드라마에서는 거의 항상 '앓이'할 수 있는 대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시작부터가 사실 많이 아쉬웠었다. 차라리 거기에서 박무열이 오수영과 실제 불륜의 관계였다면 어땠을까? 막장 논란이 일었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화제는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보다 오만하고 거만하게.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답게 남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맛이 있었어야 했다. 그것을 밑에서 올려다 보는 맛도 쏠쏠하다. 유은재에게 일방적으로 보호받기보다는 그러면서도 유은재를 휘두를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유치함보다는 화려함이나 고상함이 더 어울렸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유은재가 박무열에게 흔들리는 사이 강종희가 나타났어도 지금과 같이 반발이 심했을까? 유은재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유은재를 지켜주기도 한다. 남성적인 매력을 어필한다. 유은재 역시 여성성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이번 12화는 늦은 감이 있었다. 유은재와 박무열이 복싱을 한다. 그동안 오히려 박무열보다 더 강하게만 보였던 유은재였다. 유은재보다 한심할 정도로 약하게만 보였던 박무열이었다. 그러나 유은재는 스파게티 소스의 병을 따기 위해 한참을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을 보는 박무열의 표정이 우습다. 박무열을 얕잡아보고 시작한 복싱이지만 남성과 여성이라고 하는 성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유은재는 일방적으로 내몰린 채 박무열에게 일격을 당할 뻔하는 치명적인 위기로까지 내몰린다. 박무열의 눈에 비로소 유은재가 여자로 보이는 순간이다. 남자인 자신보다 한참 약한 그녀가 그를 겁먹은 눈으로 올려다 보고 있다. 그 순간 박무열은 내뻗으려던 주먹을 멈추고 유은재에게 한 방 제대로 얻어맞고 쓰러지고 만다. 유은제에게 KO당했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조금만 더 일찍 유은재의 여성성을, 박무열의 남성성을 드러내 보여주었다면. 여성시청자들은 여성인 유은재에 이입하고, 남성시청자들은 남성인 박무열에 이입해 볼 수 있게 되었을 터다. 여성의 입장에서 유은재의 상대인 박무열을 볼 수 있고, 남성의 입장에서 박무열의 상대인 유은재를 볼 수 있게 되었을 터다. 바로 그로부터 판타지는 시작된다. 그러나 드라마 초반 유은재가 드레스를 입는 순간에조차, 박무열이 자신의 몸을 노출하는 그 순간에마저 그들은 여성도 남성도 아니었다. 박무열앓이는 커녕 주인공 가운데 유은재만이 남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녀에 대한 연민에 동조한다.

 

하기는 그러니까 그 어느 드라마에서보다 주변인물들의 비중이 커져 있는 것일 게다. 주인공인 유은재와 박무열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끌고가지 못하다 보니 주변인물들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연이었을 진동수와 오수영, 김동아, 김태한, 서윤이, 고재효 등이 오히려 주인공들보다 더 비중을 가지고 드라마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조연들의 캐릭터가 강화되었지만 대신 그로 인해 주인공의 캐릭터는 약화되었다. 결코 장점이 아니다. 주인공이 주인공인 이유는 그들이야 말로 드라마를 지탱하는 기둥이고 대들보인 때문이다. 주인공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드라마는 산으로 가기 쉽다.

 

필자가 좋아하는 부분들이다. 한심한 남녀주인공, 그리고 그 주위에 포진한 역시 하나씩 결점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돕는 주변인물들, 더구나 우울한 분위기를 더욱 음울하게 만드는 주인공을 위협하는 스토커라고 하는 스릴러의 요소까지. 비극에 동조하고 그러면서도 행복한 결말을 기대한다. 인내심이 강하다. 그보다는 주변 인물들에게까지 관심을 넓힘으로써 다양한 감정을 안은 채 일주일을 견딜 수 있다. 그것을 즐겨한다. 그러나 로맨틱코미디로서는 낙제점이다. 오히려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그냥 '드라마'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수도 있겠다.

 

이시영의 여자임을 포기한 유은재의 캐릭터 연기는 훌륭하다 못해 넘쳤다. 연민하게 되고 동정하게 된다. 남자인데도 여자인 유은재에게 자꾸 이입하게 된다. 주눅들어 눈물만 그렁한 그 큰 눈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가. 내내 웃다가 어느새 그녀를 따라 우울해진다. 그에 비하면 역시 말한 그대로 박무열은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남자로서 멋있다 여길만한 모습을 아직까지 전혀 보여주지 못한 때문이다. 오만석과 황선희, 임주은, 강동호, 이희준, 홍종현 등 주변인물들 역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여러 다양한 색으로 드라마의 빈 부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실상 유은재와 주변인물들 때문에 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역시 로맨틱 코미디란 남녀주인공의 사랑을 보자는 것일 텐데. 문제일 것이다.

 

어쨌거나 오수영의 마음고생이 심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타고난 재능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데 강종희의 제멋대로인 행동에 다시 한 번 상처를 입는다. 동정해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걱정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었다. 가만 지켜보고만 있어 주었어도 그녀는 스스로 알아서 다시 일어섰을 것이다. 자괴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마음을 누구도, 어머니도, 아이도, 심지어 남편마저 몰라준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여기는 것보다 더 큰 오해가 어디 있을까?

 

사람이 다투는 이유는 서로를 믿기 때문이다. 사람이 서로 오해하는 이유는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수영이 강종희에게 느끼는 자괴감과 분노가 그러하다. 강종희를 알았다 여겼는데 그것이 전혀 터무니없는 오해였다. 그리고 그런 오수영에게 진동수는 남편으로서 그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여기며 배려하는 말을 건넨다. 오히려 더 서럽고 외롭다. 진동수는 이미 더 이상 오수영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 그런 때 그녀에게 배달된 눈 부위가 훼손된 강종희의 사진은 또다른 어떤 비극을 예고하고 있는가?

 

강종희는 지난 회차에서도 말했듯 지독스런 에고이스트다. 그녀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다. 박무열을 사랑하는 동안에도 박무열을 사랑하는 자신을 더 사랑한다. 고양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동안에도 고양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자신을 더 슬퍼한다. 그녀는 과연 박무열을 사랑하고 있을까? 하지만 최소한 유은재를 좋아하는 박무열을 보고 싶지는 않다. 박무열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불안하고 초조해서 그녀는 박무열에게 고백한다. 계기가 될 것이다. 조금 멀리 돌아가게 됨으로써 더 급히 서두르게 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그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닌 것을 알게 되거나. 그녀 역시 필사적이다. 박무열에게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어째서 유은재는 자신의 새로운 사랑을 소개하는 자리에 과거 사랑을 쫓아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데리고 나온 아버지에게 그토록 원망어린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던가. 사랑이란 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대상이란 바뀔 수 있다고 여겼다. 박무열이 과거 아무리 간절하게 강종희를 사랑했어도 사랑이란 결국 움직이는 것이라 그렇게 스스로를 믿고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십년 한결같던 사랑이 지금도 여전하다니.

 

아버지에게서 박무열을 본다. 어머니에게서 강종희를 본다. 끝내 절망하고 마는 자신을 본다. 그때 박무열은 찾아온다. 강종희와 마찬가지로 박무열에게 자신의 신발끈을 묶어달라 하는 것은 강종희에 대한 경쟁심리다. 끝내 한쪽 신발끈을 다 묶지 않는 것는 이후 여지를 남기고 싶어 하는 박무열의 마음이다. 양쪽 신발끈을 다 묶어 주어 이대로 유은재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지 않다. 이미 박무열은 강종희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전같지 않음을 스스로 진동수에게 고백하고 있다. 과거 그가 생각한 미래에는 강종희가 함께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난 꿈이다.

 

김동아는 역시 꿈에서 깨어나기를 포기했다. 김태한의 전화를 받지 않고 도로 침대에 누운 장면 그대로 그녀는 여전히 김태한이라고 하는 현실과 마주하기를 포기한다. 정확히는 두려워한다. 그를 사랑하게 될까봐. 그를 사랑해서 자기가 자기가 아니게 될까봐. 사랑하지 않는다면 상처받을 일도 없다. 그러나 사랑했기에 김태한은 김동아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서로 정반대편에 선 두 남녀의 사랑은 어떻게 풀어져갈 것인가.

 

그러나 어찌되었거나 드라마는 재미있다. 시청률이 어떻고 이전에 필자는 이런 드라마를 무척 좋아한다. 방송국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따라서 이대로만 계속 마지막까지 갈 수 있었으면 간절히 바란다. 유은재에게도 봄날이 찾아오려 하고 있다. 박무열에게도 봄바람은 찾아와 불고 있다. 강종희는 과연 울게 될 것인가? 가정부의 음모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황선희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된다. 가정부의 악의에 대해 황선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이제 겨우 2주 남았다. 벌써 많이 왔구나 생각은 했지만 어느새 2주밖에 남지 않았다. 여유는 충분하다. 엔딩의 완성도를 높이기에 딱 적절한 분량이다. 어떻게 사건들을 해결해 갈 것인가? 어떻게 갈등들을 봉합해 갈 것인가? 기대가 크다. 딱 지금만 같으면. 흥미롭다. 다시 한 주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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