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드라마를 보는 순간 문득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극본 이환경'이라는 자막에서 일단 드라마의 의도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이환경이라는 작가의 성향은 익히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는 터였다. 그리고 홈페이지를 보는 순간 납득하고 말았다. 그런 드라마였구나.
우스웠다. 일본의 쇼군막부보다 500년이나 앞선 고려의 무신정권이라. 물론 고려의 무신정권이 일본의 막부정권과 유사하기는 하다. 결국 불만을 품은 무신세력이 기존의 문벌귀족을 몰아내고 무력으로 정권을 잡았다. 왕권의 위에서 힘으로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정작 일본 최초의 막부는 최충헌이 정변을 일으켜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기보다 전인 1192년 겐지의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세이이다이쇼군으로 임명되어 가마쿠라에서 막부를 열면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일본의 막부가 그리 부러워서 일본보다 빨랐다 주장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그조차도 4년이나 늦었던 셈이다. 아니 무엇보다 막부체제라는 것이 그렇게 누가 더 빨랐느니 다툴만한 것이나 되던가? 일본이 부러우니 막부까지 부럽다.
어째서 군인이 정치를 하면 안되는가? 어째서 문민통제가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준 예가 다름아닌 고려의 무신정권이었다. 바로 최충헌의 최씨정권이었다. 정작 몽골에게 쫓기던 거란이 압록강을 건너 고려까지 침략해 왔을 때 그것을 맞아 싸운 것은 고려의 정예가 아니었다. 가장 저예는 최충헌의 사병이었고 그 다음이 고려의 중앙군이었는데, 그러나 그것들은 최충헌과 고려의 무신들에게 그들의 권력 그 자체였다. 그들의 수중에 있던 무력이야 말로 그들이 권력을 쥐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힘이 만에 하나라도 축나게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심지어 그래서 최충헌은 보다못해 나가 싸울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해 오는 문인들을 유배보내고 있었다. 나가 싸우기 싫다 해서 유배보낸 것이 아니라 나가 싸우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자신의 품을 벗어나겠다고 하니 유배보낸 것이었다.
몽골이 침략해 온 이후로도 그러한 행태는 계속되고 있었다. 30년간의 대몽항쟁이라고 하지만 정작 강화도로 도망쳐 있던 최씨정권이 몽골과의 전쟁을 위해 한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몽골과 적대하겠다 강경한 입장을 결정한 것은 최우이고 그 후손들이었지만 그러나 정작 그의 사병이나 강화도의 고려 정규군이 몽골군과 직접 맞싸우는 일은 이후 몽골군이 강화도 조정의 물적 기반이 되어주고 있던 경상도와 전라도를 공격하기까지 거의 전혀라 해도 좋을 정도로 없었다. 오죽하면 당시 최씨정권의 사병이던 야별초까지 스스로 나가 싸우겠다 요청하고 있었겠는가. 그러나 허락하지 않았다. 최씨정권의 사병이란 오로지 최씨정권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했으므로.
군사력이 곧 권력의 기반이 된다. 그래서 권력을 위해 군사력을 증강한다. 군인이 권력을 쥐고 있던 시절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었다. 무력이 기반이 되므로 무력을 확보하려 한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무력을 사적으로만 사용하려 한다. 그 무력을 담당하는 무신들은 오로지 권력만을 신경쓰며 그 무력을 개인의 안위와 영달만을 위해 쓰려 한다. 고려 본토에서는 백성들이 몽골군과 절망적인 항전을 이어가며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최씨정권의 사병들은 오로지 최씨정권만을 위해 반란군을 진압하고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일에만 동원되고 있었다. 물론 유럽에서도 그래서 국왕이나 영주의 사병인 용병을 위해 자신들의 백성을 약탈의 대상으로 제공하고 있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백성이나 나라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이고, 그 권력의 기반이 되어주는 무력이다. 겉으로 보기에만 무력이 강해지는 듯 보일 뿐이다. 실상 그렇게 강하지도 못하다. 지켜야 한다는 사명이 아닌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군대란 결코 강해질 수 없다.
더구나 가장 놀라웠던 최충헌(주현 분)의 캐릭터 설명에서 '사욕이 없었다'라고 쓰여져 있던 부분, 최충헌의 아들 최우(정보석 분)가 권력을 물려받고 가장 먼저 한 것이 최충헌이 부당하게 모은 보물과 재산, 백성들을 왕실과 조정, 민간에 돌려주는 것이었다. 사욕이 없던 최충헌이 그러면 어떤 국가적 사명감으로 그와 같은 부정을 저질렀겠는가? 사직을 바로잡으려 했다던 최충헌이 명종과 신종, 희종을 폐위시킨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겠는가? 그의 아들 성을 낳은 수성댁주 임씨 또한 정적이던 송흥윤을 죽이고 빼앗아 첩으로 삼은 이였다. 갑자기 필자가 아는 역사가 역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에 기록된 최충헌은 전혀 다른 인물이었던 것일까?
하기는 그래서 최우의 친동생인 최향(정성모 분)이 그토록 모질고 비열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다 아랫사람들이 잘못한 것이다. 모두가 주위에서 제대로 못한 탓이다. 그래서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부당하게 비난을 듣고 있다. 그러나 김덕명(안병경 분)을 곁에 두고 있는 것도 그러한 최향의 행동을 용납하고 있는 것도 다름아닌 최충헌 자신이라는 것이다. 아랫사람은 자신이 모시는 윗사람을 닮게 된다. 하지 말라면 하지 않고 해도 된다면 해도 된다. 누구의 탓일까?
아무튼 한참을 웃었다.
"최충헌은 나름대로 의욕과 포부를 가지고 혁명을 일으켜 어지럽던 나라를 안정시키기는 했으나 100여년동안이나 황폐하게 방치되었던 나라살림을 단번에 회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의 개혁정책은 지나친 강압정치와 더불어 기존 세력들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왔는데, 승려들 또한 그 불만 세력 가운데 하나였다."
최충헌이 난을 일으켜 이의민을 제거하게 된 계기부터가 동생 최충수와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과의 사소한 충돌 때문이었다. 당시 최충수가 기르던 비둘기가 이지영의 집 담장을 넘어갔는데 그것을 찾으려다가 오히려 두들겨 맞기만 한 것이 이의민에게 반감을 갖게 된 시초였다. 어차피 하극상의 시대였고 제각기 무신들이 실력을 키워 힘으로써 권력을 탈취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그 일을 계기로 난을 일으켜 이의민을 제거하고 권력을 쥐게 된 것이었다.
시작은 좋았다. 이의민이 모아놓은 부정한 재물들을 배성들에게 나누어주고, 왕에게는 봉사십조를 올려 개혁정치를 펴도록 권하고 있었으니. 그러나 최충헌 자신조차 자신이 내놓은 봉사십조를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관과 민의 재산을 약취하여 토지를 겸병하여 대농장을 거느리고 있었다. 인사권마저 마음대로 하여 자신의 일족과 측근들로 조정을 채우고 자신에게 거스르는 왕들은 마음대로 갈아치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고려사 반역열전에 실리고 있었다. 정중부와 이의민의 경우를 보고 나름대로 경대승을 본받으려 한 모양이지만 그 역시 그 시대의 수많은 난신적자 가운데 하나였다. 성공한 난신적자였고 덕분에 근 60년을 고려는 최씨의 지배 아래 있었다.
차라리 최충헌이 왕이 되었다면. 왕에게 나라란 자기 재산이다. 백성 또한 자신의 소유다. 따라서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거란이 쳐들어왔을 때도, 몽골과 싸울 때도, 만일 최충헌이 왕위에 올라 최씨왕조가 이어졌다면 최소한 나라와 백성을 지키려 사병이 아닌 정규군을 적들과 싸우도록 내보냈을 것이다. 하다못해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일찌감치 항복을 했을 것이다. 무인정권이 끝까지 몽골과 싸우려 한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설명하고자 한다. 왕이 아니었기에 나라도 백성도 그의 것이 아니었고, 단지 자신의 재산과 권력만 지킬 수 있으면 좋았다. 정통성 없는 권력의 한계다. 그런데 그런 최충헌에게 개혁이라니. 그에 맞서는 이들은 모두 기존 세력들인가.
그러면 어째서 불교의 승려들은 최충헌을 제거하기 위해 창을 거꾸로 들었는가? 이미 이의방 때에도 여러 사찰의 승려들이 이의방을 제거하기 위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극중 고려 고종의 전전대인 희종대에도 내시 왕준명의 주도 아래 승려들이 최충헌의 암살을 모의한 적이 있었다. 그 일로 희종이 폐위되고 명종의 아들인 한남공 정이 왕위에 올라 강종이 되었다. 강종의 아들이 고종이다.
원래 대대로 고려의 국사는 왕실에서 많이 나왔다. 천태종으로 유명한 대각국사 의천이 바로 문종의 아들로 순종과 선종, 숙종의 세 임금의 아우였다. 왕자 가운데 한 사람은 출가시켜 그로 하여금 불교와 왕실을 잇도록 한다. 많은 절을 새로 창건하고 막대한 재물을 시주하고 더불어 불교에 대한 많은 특혜를 주었다. 대신 불교는 왕실을 정신적으로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공생관계였다. 당연히 당시 고려의 승려 가운데에는 친왕파가 많았다. 그런데 왕을 능멸하려는 무인정권에 대한 감정이 좋았겠는가?
물론 최충헌도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스스로 봉사십조에서도 불교에 대한 경계와 개혁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불교야 말로 왕실에 남은 마지막 힘이다. 그래서 그 불교를 왕실로부터 떼어놓고 나아가 무력화시킨다. 그같은 불만이 누적되어 있는 상황에 오합지졸들로 하여금 나가서 거란군을 맞아 싸우라 하는데 제대로 대우가 이루어질 리 없었다. 더구나 불교 승려 가운데서도 무승들은 신분이 낮은 경우가 많았다. 불법은 공부하지 않고 오로지 무술만을 전문적으로 익히던 호법승이라는 이름의 사병들이었다. 이런저런 불만들이 누적되어 터진 것이라 보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에 최충헌 역시 이전의 무인정권에서 그러했듯 강경하게 진압하고 있었다. 800의 승려가 죽고 무수히 많은 사찰이 파괴되었다.
그렇다고 당시의 사찰이 불교에서 말하는 청정도량이었는가? 불교의 사찰에서 승려들이 무술을 배워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았다. 백성들에게 고리로 이자를 놓고, 또 많은 노비를 두어 땅을 경작하게 하고, 무승 가운데서도 사찰에 속한 노비들이 많았다. 사찰 아랫마을이 그렇게 아름다운 마을이기는 매우 힘든 것이다. 불교의 승려 또한 상당한 특권집단이었다. 그래서 더욱 최충헌과 이전의 무인정권에 저항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세력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최충헌의 개혁에 저항하는 기존세력이었는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역시나 필자가 역사를 좋아하면서도 정작 역사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특히 조선 이전으로 가면 판타지가 많다. 차라리 <해를 품은 달> 같은 철저히 가상의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라면 낫다. <공주의 남자>와 같이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허구의 인물을 통해 허구의 이야기를 꾸며가는 이야기라면 오히려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전혀 엉뚱한 내용들이 나와서는 허무할 따름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 하지만 그러나 기왕에 그 시대 그 인물들로 드라마를 구성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 아닌가. 역사는 사실이다. 역사드라마는 바로 그 사실을 기반하고 있다.
어쨌거나 그래서 더욱 어색했던 것이 극중 최우가 갑옷 위에 걸쳐 입고 있던 덧옷의 디자인일 것이다. 막부라고 하는 말과 어울려 마치 일본의 그것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물론 고려와 일본은 같은 중국문화권으로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문화적으로도 많은 유사성을 갖는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일본은 당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고려는 이후로도 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전통복식에 있어서도 그 차이가 상당히 크게 드러난다. 그런데 어째서 갑옷이며 덧옷을 겹쳐 입은 모습이 일본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가? 막부라 하니 진짜 막부로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하기는 드라마 가운데 등장하는 두정갑 역시 조선 중기 이후에나 모습을 나타내는 것들이었다. 천으로 된 위에 둥근 못을 박은 두정갑은 동아시아의 여러 갑옷 가운데 가장 나중에야 나타난 가장 진화된 형태의 갑옷이다. 쇄자갑과 찰갑은 맞다. 쇄자갑이란 고리를 엮어 만든 갑옷이고, 찰갑은 철판을 이어붙여 만드는 것이다. 모두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조선 전기까지 많이 쓰이고 있다. 사소한 부분에서 오류가 드러난다. 몽골의 지배 이후에나 등장하는 소주를 이규보가 마시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몽골과는 싸우기도 전이다. 판타지가 되어 버리고 만다. 역사드라마가.
하여튼 너무 자극적이었다. 무자비한 학살과 잔혹한 고문, 사람을 찔러죽이고, 베어죽이고, 그러고도 모자라 태워죽이고, 그리고 달군 숯으로 고문을 한다. 과연 당시에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장치까지 하고서 사람을 고문했을까? 가족이 모여 함께 보기에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이었다. 다음주 예고를 보니 다시 자극적인 장면이 나올 듯하다. 시청률을 노리던가 아니면 화제성을 노리던가. 굳이 대대로 최씨일가의 노비였다는 김준으로 하여금 승려로 나오게 한 것부터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다. 드라마라는 특수성을 이해하더라도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눈길은 끌었지만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화가 나기보다는 웃음부터 났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헛웃음이 새어나온다. 아무리 픽션이라고 최충헌과 같은 인물마저 그런 식으로 미화해야 하겠는가? 드라마를 마치 실제의 역사인 양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아직 모르던 사람들에게는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 작가의 재량이라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너무 멀리 나갔다. 비판하면서 보기에는 비판할 거리가 많아 좋기는 하다.
끝으로 어째서 최충헌은 그렇게까지 정숙첨을 죽이려 했는가? 정숙첨이 최충헌에 불만을 가진 것은 맞다. 당연하다. 거란을 막으라 내보내고서는 하나같이 오합지졸들만을 내주고 있었다. 당장 전공을 세워야 하는 입장에서 불만스럽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최우의 말처럼 그가 바로 최충헌의 큰아들인 최우의 장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최충헌의 최측근으로 더구나 최충헌의 자리를 물려받을 최우의 장인이었다. 그 오만이 하늘을 찔렀다. 부정을 저지르고 전횡을 일삼았다. 최고권력자의 입장에서 가장 거슬리는 타입이다. 당연히 최우는 그를 살렸고 권좌에 오른 뒤 그를 복권시켰다. 더러운 정치싸움이다. 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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