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흥미로운 대비일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 현존하고 있는 왕실과 그같은 특권적 신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 북한의 그것도 엘리트군인, 여기에 어쩌면 현대사회에 있어 진정한 왕이라 할 만한 다국적거대자본의 지배자가 나타난다. 강봉구(윤제문 분)가 아버지를 죽이고 군산복합체 클럽M의 회장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오버랩되는 대한민국 왕실의 모습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그 어느 왕실보다도 더 강력하고 그러면서도 무책임하다.
대한민국의 국왕 이재강(이성민 분)이 그토록 WOC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나라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전쟁의 위협을 줄이고 나아가 장차 통일까지 이룬다. 그를 위해 이재강은 동생인 이재하(이승기 분)를 억지로 속여 WOC에 출전하도록 떠밀고 심지어 남북한간의 화합을 위해 북한 여성과의 결혼까지 추진한다. 그것이 국왕된 자로서의 당연한 책임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국왕 자신은 물론 그의 동생인 이재하조차 국가의 이익과 그에 대한 책임 앞에 자신이란 없다.
그에 비해 강봉구는 어떠한가? 그가 대표하는 다국적군산복합체란 어떤 존재인가? 현대의 자본이란 어쩌면 전근대의 유목민을 연상시킨다. 가축을 먹일 풀을 찾아 끊임없이 떠돈다. 이익이 있는 곳을 찾아 한 자리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떠돈다. 그러다가 틈이 보이면 얼마든지 약탈자로 돌변한다. 어차피 한 곳에 머물려 하지 않기에 굳이 살려두거나 남겨둘 필요가 없다. 몽골의 침략자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와 시체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클럽M에 대해서도 그 앞에 '다국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무엇에도 속하려 하지 않고, 무엇도 위하지 않는다. 자본은 오로지 자본 자신만을 위한다.
필요없어지면 얼마든지 정리해고등의 방법으로 구성원을 떨궈낼 수 있다.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당장에라도 등돌리고 더 큰 이익을 찾아 떠나가게 된다. 이익이 있다면 염치불구하고 양심과 도덕마저 무시해가며 이익을 탐한다. 그나마 국가에 속해 있을 때는 국가의 통제라도 받는다. 그 나라의 법과 제도의 통제와 간섭을 통해 폭주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적을 뛰어넘었다. 국경을 뛰어넘었다. 그들은 누구로부터도 통제되어지지 않는다.
어째서 왕실인가. 어떻게 시민의 권리가 크게 신장되어 더 이상 왕이며 귀족 같은 특권적 신분이란 것이 의미가 없어진 현대사회에조차 그와 같은 특권적 신분의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한가? 이재강이 그토록 남북한의 화해협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의 아버지 때문이다. 이재강의 아버지가 품었던 남북한의 화해협력이라는 뜻을 이재강이 이어받은 것이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이 바뀌면 이제까지의 전략과 정책마저 손바닥뒤집듯 바뀌기 일쑤다. 임기마저 짧은 전문경영인에게 오너경영에서와 같은 수십년을 내다본 장기적인 계획이란 무의미한 것과도 같다. 보다 강한 책임을 갖는 특별한 신분을 원한다. 비록 현실에서는 아닐지라도 머릿속으로는 간절히 바란다. 흔히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다. 노블리스란 말 자체가 특권적 신분과 지위를 의미한다.
그래서 대비된다. 오히려 권력보다 의무가 더 많은 대한민국의 국왕과 의무란 거의 없이 권력만을 가지고 있는 클럽M의 회장과, 강봉구의 마술쇼는 그런 점에서 '지록위마'의 고사를 연상시킨다. 모두가 강봉구의 마술쇼를 감탄하며 즐긴다. 진실을 말하는 자에게는 제제가 가해진다. 설사 그 비밀을 알더라도 입다물고 침묵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강봉구는 이재강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그가 이재하를 볼펜으로 찍은 것은 그에 대한 부러움일 것이다. 현대인의 모순을 보여준다. 돈이 많으면 왕이지만 그러나 진정한 왕이 되고 싶다. <뿌리깊은 나무>의 정기준을 떠올리게 된다. 간격도 간격이지만 그 톤이며 내용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 이유야 어떻든.
다만 아직은 멀었다. 강봉구가 전면에 등장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머지는 이재하와 김항아(하지원 분) 사이의 사랑싸움이다. 물론 아직까지 사랑이라 할 만한 어떤 감정도 두 사람 사이에는 없다. 김항아에게 이재하란 도무지 군인으로서 자격미달인 골치덩이에 불과할 뿐이고, 이재하의 입장에서는 밉기 그지없는 북한의 장교로서 자신을 강요하는 하나하나가 밉상이다. 그래서 서로 속이고 골리는 가운데 조금씩 서로의 거리를 좁혀간다. 물론 두 사람의 사이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황을 뒤바꿀 특별한 계기가 필요할 것이다. 뺀질이 이재하가 군인으로 거듭나고 여성적인 부분이란 거의 없다시피 한 김항아가 여성을 되찾는 순간이다.
설득력이 부족하다. 내용이 너무 허술하다. 판타지가 갖는 약점 가운데 하나다. 판타지란 허구다. 허상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마치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사기를 친다. 거짓은 원래 진실속에 묻는다. 과연 드라마에서와 같은 상황이라면 실제 어떤 상황이 벌어지게 될까? 대한민국의 국왕을 맞이하는 북한이나 북한의 인사들을 맞이하는 대한민국, 물론 덕분에 드라마에서도 대한민국과 북한은 서로 첨예하게 대치하며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왕제인 이재하와 엘리트교관인 김항아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해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고민의 흔적을 찾지 못한다. 그저 보통의 남녀가 서로 아옹다옹하며 다투는 이야기다. 설정이 특별하니 그같은 뻔한 로맨스의 묘사가 짐짓 지루하기까지 하다.
물론 그저 설정만 특이할 뿐인 뻔한 로맨틱코미디를 추구한다면 그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깝다. 기왕에 이렇게 멋지게 설정해놓고 그것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흔한 로맨틱코미디를 보려 할 것이면 굳이 왕실과 북한이 들어가 있지 않아도 좋다. 왕제는 왕제답게 엘리트군인은 엘리트군인답게, 하지원의 연기는 그런 점에서 대단하다. 하지만 집중하며 보기에는 아주 약간이 부족하다. 리얼리티라 부르는 부분이다. 판타지인 것은 알지만. 아쉽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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