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할 정도다. 어쩌면 저리도 답답할 수 있을까?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좋아한다는 한 마디를 못한다. 기회가 있는데도 한 마디를 하지 못해 오히려 상대를 밀어내고 만다. 그리고 후회한다. 변명한다. 사랑보다 우정이라고.
과연 이동욱(김시후 분)과의 우정 때문이었겠는가? 어쩌면 그것은 핑계였을 것이다. 첫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다. 자기의 감정임에도 그것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있는대로 휘둘리고, 제멋대로 떠밀리다가는, 멋대로 오해하고, 미처 알지도 못한 채 겁먹고 도망친다. 술김에 겨우 고백하고 고백하고 나서도 지레 포기하고 마는 서인하(장근석 분)의 친구 김창모(서인국 분)같이.
어차피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없는 살림에 형제만 다섯이다. 그런데 정작 그가 좋아하는 백혜정(손은서 분)은 전혀 아쉬움이란 모르고 자란 집안 좋은 외동딸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설사 그녀의 마음을 얻더라도 그녀를 만족시켤 자신도 그에게는 없다. 그래서 물러난다. 비겁한 변명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상처입고 싶지 않다.
이동욱은 서인하의 친한 친구다. 사랑 때문에 그와의 우정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와 어색해지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 이전에 그로 인해 자기가 상처입는 것이 두렵다. 이동욱과 다투고 이동욱으로부터 비난받는 것이 두렵다. 김윤희를 사랑할 수 있을까도 자신이 없다. 당시는 그랬다. 아직 이성을 사귀는 자체가 무척 특별한 일로 여겨지던 시절이다. 아직 어렸을 적 많이들 그러지 않던가. 연애의 역사란 의외로 그다지 오래지 않다. 순수하기에 갖는 비겁한 이기다.
그래서 상처입히고 만다. 상처받기 싫어 오히려 상처를 준다. 모두가 그러기를 바란다고 했다. 모두가 그러기를 바라고 있으니 그러겠노라 했다. 김윤희가 자기와 사귀자는 이동욱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 이유였다. 그녀 또한 상처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서인하 자신에게도 상처로 돌아온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서로가 서툰 때문이었는데도.
차리 김윤희라도 백혜정이나 황인숙(황보라 분)처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녀 역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서툴기는 마찬가지다. 단아한 겉모습만큼이나 전통적인 가치관에 많이 닿아 있던 그녀에게 있어 자신을 거절하는데 먼저 다가가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아예 모르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것을 그나마 알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진실이란 그렇게 때로 서로에게 비극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툴게 진심이 되어 서로 아파한다.
서인국의 변신이 놀랍다. 서인국이라는 이름을 분명 보기는 했는데 그 서인국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능청맞다. 아마 안경과 머리로 인해 표정의 대부분이 가려지는 것도 있을 테지만, 서툴고 촌스러운 투박한 연기가 그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설마 그 서인국이 그 서인국일 줄이야. 윤아는 여전히 수줍음과 격정의 경계를 넘나드는 선이 고운 그야말로 아가씨의 캐릭터를 십분 소화해내고 있다.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슴같다는 표현이 더없이 어울리는 외모와 절제된 듯 단정한 말과 몸짓이 김윤희라는 드라마속 인물을 현실로 끌어낸다. 보고 있는 시청자마저 스스로 서인하가 되고 이동욱이 된다. 그렇게밖에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장근석의 경우는 너무 연기를 잘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겠다. 너무 능숙해서 어쩐지 위화감마저 느낀다.
여행을 가서 모두가 나란히 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주춤주춤 따라가는 김윤희에게서 손을 내밀어 가방을 나누어드는 이동욱과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머뭇머뭇 따라오는 백혜정에게 어깨를 맡기는 서인하, 그리고 투정부리는 황인숙을 업어주고 마는 김창모, 강물 위로 부딪히는 아마도 해저물녘의 어스름한 햇살과 송창식의 노래가 더없이 정겹고 아름답다. 청춘이라는 것일 테다. 젊음이다.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이다. 오랜 추억과 같은. 그렇게 그들은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살아가게 될 것이다.
조금 - 아니 상당히 옛스럽다는 것이 문제일 수도 있겠다. 아날로그의 촌스럽고 투박한 정서가 그러나 강가 기타소리처럼 정겹게 들린다. 유치한 숨바꼭질처럼 그립기도 하다. 오히려 요즘 보기 힘든 모습들이기에 마음이 가는 것일수도 있다. 그런 영화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 노래들에 익숙하다. 대학에 들어가서 많이 실망했었다. 필자가 기대한 대학생활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어려진 듯한 느낌이었을까? 물론 이제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면 많이 달라질 것이다. 많이 아쉽다. 그래도 아직 시간은 남았다.
이미 결론지어진 이야기라는 것이 아쉬움을 더한다. 서인하와 김윤희, 그리고 백혜정, 이동욱, 하지만 어쩌면 그 시절 끝맺지 못한 이야기의 다음편일 수 있을 것이다. 대개는 그렇게 안타까운 결말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사랑하고 살아갔을까? 어쩌면 드라마는 그같은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었을까?
옛스러움이 주는 고풍스러움이 좋다. 고전적인 영상들이다. 비와 축제와 기차여행, 강가의 MT. 수줍던 고백과 어색한 나눔들. 시청률만으로는 계량할 수 없는 가치일 것이다. 최우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될 수 있다. 다만 공중파 드라마로서 그것은 치명적인 문제일 수 있다. 아쉽다. 안타깝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96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킹투하츠 - 설정이 넘친다. 분주하고 산만하다. (0) | 2012.03.29 |
---|---|
적도의 남자 - 이장일의 선택, 운명이 죄를 떠밀다. (0) | 2012.03.29 |
빛과 그림자 - 돌아온 강기태, 엇갈렸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다. (0) | 2012.03.28 |
패션왕 - 강영걸의 구속과 이가영의 전락, 아슬아슬한 한계를 넘나들다. (0) | 2012.03.28 |
빛과 그림자 - 70년대의 시즌1이 끝나고 80년대의 시즌2가 시작되다. (0) | 2012.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