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전개일 것이다. 잔뜩 꾸미고 벌려 기대까지 갖게 만들어 놓고는 결국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강영걸(유아인 분)과 이가영(신세경 분)이 굳이 그 고생을 해가며 미국까지 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모든 것이 원점이다.
이가영이 뉴욕패션스쿨에 입학하고자 했던 것도 결국 1년도 채 다니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강영걸이 뉴욕에서 이루어낸 작은 성공조차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이가영은 정재혁(이제훈 분)을 만났다. 강영걸 또한 최안나(유리 분)를 만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 굳이 미국이 아니었어도 상관없는 것 아니었겠는가. 미국이 아니었어도 강영걸은 전과자가 될 수 있었고 이가영은 더 비참한 처지에 놓일 수 있었다. 1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참하고 비루한 처지인데 뉴욕패션스쿨에 잠시 입학했었다는 사실이 무에 중요한가?
아니 좋다. 기왕에 만나는 것 뉴욕도 괜찮을 수 있겠다. 동대문 짝퉁공장에서 일하는 재능이 엿보이는 일개 여공이 아니라 뉴욕패션스쿨에 그것도 장학생으로 당당히 입학한 가능성을 인정받은 재원이다. 같은 만남이더라도 전혀 차원이 다른 만남이다. 강영걸 역시 고작 동대문 짝퉁업체 사장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상대로 계약을 따낸 일약 능력있는 사업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비록 당장은 한심하고 보잘 것 없지만 그것이 그들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러기까지 너무 일을 복잡하게 꼬아 놓았다. 지나치게 복잡하게 꼬아놓은 과정 탓에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로서 완결되어 버렸다. 기대가 생겼다.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차라리 그냥 떠나느니만 못했다. 어차피 사채업자 황태산(이한위 분)에게 쫓기는 것 무작정 이가영을 쫓아 뉴욕으로 떠난다. 설사 사건을 일으키려 하더라도 선상반란과 같은 지나치게 극적이고 작위적인 설정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밀입국 과정에서의 사소한 헤프닝 정도로 족했다. 딱 강영걸이 이가영 앞에 허세를 부리기에 좋을 정도로만. 쫓기는 입장이면서도 크게 개의치 않고 자신의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정도로만. 그러나 지나치게 일을 키워 버린 탓에 강영걸이 이가영 앞에서 보인 허세도, 그의 의욕적인 사업추진도 모두 민폐에 무모한 만용이 되어 버렸다. 어째서 그는 이가영이 옆에서 걱정해 줄 때 순순히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는가?
위험하다. 이가영은 상관없다. 어차피 이가영에게 고난은 예정되어 있었다. 어려서 그녀의 부모가 세상을 떠난 그 순간부터. 조순희(장미희 분)의 탐욕에 엮여 그녀의 공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바로 그때부터. 조순희에게조차 내쫓긴 이상 그녀는 맨몸으로 거친 세상과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그녀가 세상과 맞서 이기는 방법은 오로지 인내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밖에는 없다. 눈물은 흘려도 주저앉지는 않는다. 눈물조차 홀로 삼키며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간다. 강영걸로 인한 어려움이야 그런 그녀의 삶에 있어서 한 차례 스치고 지나가는 풍파와 같을 것이다. 살면서 그 정도 위기야 누구나 겪는 것이다.
그러나 강영걸은 다르다. 바로 강영걸 자신이 그 원인이 되고 있다. 어차피 강영걸이 이가영에게 건넨 유학자금이라는 것도 이가영의 디자인을 몰래 팔아 챙긴 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까지 쫓아가 기숙사에서 편하게 공부에 전념할 수도 있었을 그녀에게 따로 아파트를 빌려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곤란한 처지로 내몰고 말았다. 그러고서도 큰소리다.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는 이가영에게 화를 내고,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정재혁의 도움을 받은 것조차 비난하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이가영은 강영걸로 인해 한국으로 추방됨으로써 어렵게 들어간 뉴욕패션스쿨에서의 공부마저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한다.
고시원비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 한길로 쫓겨나고 말았다. 겨우 희망이라고 강영걸의 이름을 보고 찾아간 공장에서는 강영걸과의 사이를 오해한 사람들로 인해 온갖 비난과 심지어 폭행마저 당하고 있었다. 그것을 강영걸이 보고 있었다. 그러나 강영걸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외면한 채 도망치고 있었다. 만일 이 장면에서 강영걸이 끝까지 이가영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도망쳐 버리고 만다면 그는 그대로 말할 것 없이 쓰레기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찌질한 것은 상관없다. 한심한 것도 상관없다. 무능한 것도 그대로 좋다. 그러나 비겁해서는 안된다. 최소한 자신으로 인해 곤란을 겪는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것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다.
한 축이 무너진다. 그나마 지난회차까지 강영걸에 좋게 보고 있었던 필자조차 눈쌀을 찌푸리고 있었다. 고작 그런 정도밖에 안되는가? 정의감은 없더라도 최소한 책임감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굳이 착하기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염치라는 것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주인공으로서 시청자가 이입할 여지가 생긴다. 무어라도 시청자 자신보다 나은 부분이 있어야 인정도 하게 되고 주인공으로써 동경이라는 것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강영걸은 너무 형편없다. 너무 일을 크게 벌린 때문이다. 일을 크게 벌린 반동을 모조리 강영걸이 뒤집어쓴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이가영은 이제까지보다 더한 불행을 혼자서 감내하는 비운의 여주인공이 된다. 모든 원인을 강영걸이 제공하는 셈이다. 그래도 주인공이다.
드라마는 뭐니뭐니해도 주인공이 멋있어야 한다. 최소한 시청자보다 나은 부분이 있어야 한다. 잘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정도 한다. 그래야 동경이라는 것도 갖게 된다. 주인공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고, 그렇기 때문에라도 주인공의 실패에도 함께 좌절하고 절망한다. 그럼으로써 더욱 주인공의 성공과 승리를 바라며 응원하게 된다. 정작 주인공이 성공하고 승리까지 거두었는데 아무런 성취감도 없어서야 무슨 드라마이겠는가? 그 과정에서 아무런 기대도 흥분도 안타까움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드라마가 아닌 것이다. 재미가 없다. 강영걸이 바로 그 길로 가고 있다. 여기에서 한 발만 삐끗 헛딛으면, 아니 당장 버스에서 내려서 이가영을 구하러 가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 위험이 있다.
정재혁 역시 굳이 미국으로 떠났어야 했었을까? 미국에서 그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자체명품브랜드 런칭은 끝내 실패로 결론지어지고 말았다. 그와 함께 한 것이 디자이너 최안나였다. 그들은 실패했다. 정재혁의 아버지 정만호(김일우 분)의 말이 절대 옳다.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능력은 매출이 말해준다. 디자이너로서의 최안나는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햇다. 사업가로서의 정재혁 역시 제대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전략을 내놓지 못했다. 그 결과가 실패다. 고작 옛사랑을 만나 다시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50억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을 날리고 말았다. 다시 일어서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굳이 이가영과 강영걸과 만나며 그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었는가. 이가영과는 이미 과거의 인연이 있고 강영걸과도 한국에서 맞부딪힌 적이 있었다. 설사 만나다러도 단순히 지나치는 정도가 좋았다. 역시 너무 넘쳤다.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지나치게 디테일하게 모든 이야기들을 담아내려 한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다.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다. 물론 사람이 살다 보면 이루 말하지 못할 다양한 일들을 겪게 된다. 어쩌면 누군가는 드라마속 주인공들보다 더 다양한 많은 일들을 겪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들의 이야기조차 드라마로 만들 때는 최대한 간략하게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는 구조로서 정제해낸다. 사소한 부분은 떨구어낸다. 번잡스러운 부분은 생략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만 남겨 그것을 살리기 위한 기술을 발휘한다. 그것이 편집이고 창작이다. 과연 지금까지의 장면들이 그를 위해 필요한 내용들이었던가.
아무튼 배신감마저 느꼈다. 미국에서 경찰에 쫓겨가면서도 꿈을 이루려는 강영걸이 좋았다.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쫓는 강영걸의 모습에서 동경의 감정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의 성공을 바랐다. 막영히 강영걸을 돕는 이가영 또한 강영걸과 함께 성공하기를. 하기느 정재혁이 강영걸과 이가영의 존재를 절실히 느끼기 위해서는 그만한 계기가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정재혁을 위한 미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느닷없이 정재혁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그들이 정재혁의 위기에 다시 나타난다. 강영걸의 오해는 그가 정재혁 앞에 다시 나타나기 위한 계기였을 것이다. 주인공은 정재혁이었을까?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정재혁을 중심에 놓고 보았을 때 드라마는 한결 정돈된다. 그렇더라도 과연 미국까지 가야 했던가는 의문으로 남는다. 정재혁이 주인공이었다면 단순한 과거회상만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갖는 기대라면 경찰에 체포되기 전 강영걸이 이가영에게 보여준 어쩌면 그녀가 처음으로 가져 본 장밋빛 희망이라는 것일 게다. 매일같이 고기를 먹게 해주겠다. 마침내 이가영의 디자인으로 계약을 따냈다. 기회를 잡았다. 비록 한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꿈이었지만, 그러나 지금껏 바로 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하는데만 급급하던 그녀에게는 처음으로 가져본 꿈이며 희망이었을 터다. 고시원에서마저 내쫓긴 최악의 절망에서도 그녀가 강영걸의 이름을 발견하고 바로 달려간 이유였다. 그것이 그녀의 불행이겠지만 강영걸이란 그녀가 처음으로 가져본 꿈이고 희망이었고, 그녀가 처음으로 기대본 타인이었다. 정재혁이 그 뒤를 잇는다.
어쨌거나 아슬아슬하다. 위험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여기에서 강영걸은 다시 한 번 더 나가려는가? 돌아올 길이 멀어질 수 있다. 이가영의 비극 역시 너무 깊어지면 시청자 입장에서 불쾌해질 수 있다. 타인의 불행을 보며 기뻐하는 것도 어지간한 악취미다. 우려를 갖는다. 일단은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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