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죄를 지음으로써 받게 되는 가장 큰 징벌이란 다름아닌 스스로의 자존에 새겨진 커다란 낙인일 것이다. 스스로 당당하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존경받고 싶다. 가치있는 존재이고 싶다. 그러나 죄를 저지르는 순간 그는 그러한 자격을 잃게 된다. 그는 가치가 없다.
하기는 그래서 이용배(이원종 분)는 염치가 없다. 김선우(엄태웅 분)의 아버지가 그에 의해 죽었다. 그 죽음을 은폐한 것도 이용배 자신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이장일(이준혁 분)이 김선우를 해친 사실을 알면서도 오히려 김선우에게 따져묻는다.
"네가 내 아들 죄 짓게 했냐? 그러면 안 뒤야!"
아들을 위해서. 이용배라고 하는 자신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렇게 살아왔다. 비루하게. 비겁하게.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든 것을 아들 이장일에게 걸려 한다. 아들 이장일만이 가치가 있다. 그를 위해 얼마든지 자신의 존엄도 양심도 저버릴 수 있다.
많이 보게 된다. 자식이 죄를 지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죄로 인한 피해자와 혹은 가족에게 너무도 오만하고 당당하다. 서슴없이 모욕주고 거리낌없이 위협을 가한다. 자기란 아무런 가치가 없으니까.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자기 자식에게 모든 것을 떠넘긴다. 자신의 양심도. 존엄도. 자신은 쓰레기가 되더라도 자식만 잘되면 좋다. 눈물겨운 부모의 마음이다. 자식이 자신의 존엄 대신이다.
이장일이 죄를 지은 까닭 역시 마찬가지다. 첫째는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아들이기에 아버지가 벌을 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김선우를 저지하려 그를 폭행하고 바다로 밀어넣는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다. 살인자의 자식이 될 수는 없다. 더 높은 곳에서 더 큰 힘을 가져야 하는데 살인자의 자식이란 굴레는 그에게 족쇄가 될 터다.
처음에는 우발적이었다. 도무지 말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말려야 하는데 도무지 말을 듣지 않으니 말릴 방법이 없다. 그런데 그런 그의 앞에 바다에 떠밀려 온 굵은 나뭇가지가 보인다. 충동적으로 그것을 집어들고 김선우의 머리를 내리치고 말았다. 과연 눈앞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있는 김선우를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겠는가?
가장 먼저 쓰러진 김선우에 놀라고, 다음에는 그런 김선우를 바다에 빠뜨린 자신에 놀란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그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혹시라도 경찰이 찾아올까 거울앞에서 연습하고 있는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김선우가 그에게 보낸 선물이 도착한다. 금줄(박효준 분)로부터도 다름아닌 김선우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가를 이미 들었었다. 비교가 된다. 올곧게 친구로서 자신에 대한 우정을 보이던 김선우와 그런 김선우의 우정을 배신한 자신.
그것은 모멸감일 것이다. 자괴감이다. 비참한 것이다. 어느 정도는 얕잡아 보았다. 고작해야 싸움이나 조금 할 줄 아는 사고뭉치에 불과했다. 그에 비하면 타고난 머리도 좋고 악착같은 의지로 좋은 성적에 좋은 대학으로 그의 장래를 보장되어 있었다. 학교다닐 때는 김선우의 싸움실력이 그를 지켜주었지만 이제는 그가 김선우를 지켜줄 차례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양심에 있어 그는 김선우에 미치지 못했다. 부끄럽다.
물론 그나마 아버지 이용배에 비해서는 한참 낫다 할 것이다. 이용배에게는 그나마의 부끄러움조차도 없다. 이용배가 유일하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혹시라도 자신의 죄가 들통나 자기와 자기의 아들이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정도다.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 아는 이가 없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다. 바로 자신을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는 이장일과 비교되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그런 이장일이 경계에 섰다. 앞을 보지 못한다. 이장일을 알아보지 못한다. 기억마저 혼란스럽다. 김선우가 이장일의 죄를 털어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대로 묻으면 된다. 이대로 묻고 나면 없었던 일이 된다. 없었던 일처럼 잊은 채 그저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인간으로 남는가? 아니면 괴물이 되는가? 안타깝게도 일반적으로 후자를 현명하다 말한다. 이장일은 현명할 것인가?
차라리 김선우가 앞을 볼 수 있었다면. 앞을 볼 수 있어서 이장일을 알아보고 그를 욕하고 비난했더라면. 아니면 아예 죽어 사라졌어도 좋았을 것이다. 굳이 자신을 돌아볼 필요 없이 스스로 죽어 영영 보이지 않게 살아간다. 죄책감이야 잠시 일깨우겠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지은 죄 앞에 기로에 놓여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김선우가 기억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이장일에 대한 미련도 한 몫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장일은 그의 친구다. 가장 친한 친구라 여겼었다. 아버지가 죽고 그에게 누구보다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배신당했다. 그에게 맞아 기절한 채 바다에 빠뜨려짐으로써 하마트면 죽을 뻔하고 있었다. 분명 이장일은 아버지를 죽인 범인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인정하기 싫다.
이장일이 최수미(임정은 분)를 거부하며 모욕을 준 것 또한 최수미에게 깊은 죄책감이라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성한 곳 없이 상처투성이였을 그녀 자신의 자존이었다. 사이비 박수무당의 딸이라는 이유로 친구 하나 없이 따돌림당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김선우란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데 그런 성치 않은 그녀의 자존심에 이장일은 간절함에 더해 더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그녀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장일을 놓칠 수 없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오로지 한지원(이보영 분)만이 그늘이 없다. 그녀는 강하다.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기대지도 않고 무작정 탓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강함은 이장일에게는 독이다.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이장일과 이용배의 비루함과 비겁함을 위한 변명이 되어 버린다. 어떻게 해도 아버지다. 어떻게 해도 아들이다. 잘못한 것이 없다. 그는 잘못이 없다. 자신을 위한 거짓말이다. 아니 그가 자학하는 모습조차 어쩌면 자기를 위한 기만이었을 것이다.
김선우가 임원한 병실을 찾는 진노식(김영철 분)의 속내 또한 자신도 알지 못하도록 무척 복잡할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했다. 자신의 아들이 아닌 문태주(정호빈 분)의 아들일 것이라 애써 강변하고 있었다. 그렇게 납득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 그로 인한 그의 모든 행위들이 정당화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김선우가 정작 다쳐서 입원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진노식의 다음 대사까지에는 결코 짧지 않은 여백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슨 뜻이었을까?
김선우가 위독하다는 말에 혹시나 죽을 경우를 대비해 이용배에게 그 장례나 잘 치러달라 부탁한다. 김선우가 다시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는 어느새 병원까지 직접 찾아가고 있었다. 하필 문태주가 자신의 아들을 찾아야겠다며 김선우를 찾아나선 바로 그 시점이었다. 이제와 돌이텨 보니 정작 그가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내도, 자식도, 가족도, 그나마 손에 넣은 부와 권력은 가족간의 거리를 더욱 첨예하게 벌리는 역할이나 할 뿐이다. 아내의 악의없이 매몰찬 한 마디에 조금은 상처입고 만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돌아갈 수 없다. 그 끝이 무엇이든 이대로 달려갈 뿐이다.
이장일의 미래일 것이다. 그가 앞을 못보게 된 김선우를 외면하게 되었을 때 그 또한 다시 되돌아가기에 너무 먼 길을 나서게 된다. 그는 그때에도 다시 원래의 자리로 한참을 돌아갈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누구보다 이장일의 배신으로 인해 상처입은 김선우에게도 구원이 될 것이다. 이장일을 지키기 위해 김선우를 외면한 최수미를 위한 구원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이제서야 최수미와 김선우가 오랜 친구사이같다. 김선우를 찾는 최수미의 모습이 스스럼없고 격정적이다. 김선우가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그에게 달려온 것이 최수미, 최광천(이재용 분) 부녀다.
아역연기자에서 성인연기자로 넘어갔다. 훌륭했다. 아역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 더구나 임시완은 이제 겨우 드라마 두 편 째일 것이다. 제대로 훌륭하게 소화해 바통을 넘긴 캐릭터와 이야기를 성인연기자들이 이어나간다. 엄태웅의 연기가 존재감을 발한다. 재미있다. 기대가 더욱 크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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