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한다. 과연 남주인공이 이승기(이재하 역)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여주인공이 하지원(김항아 역)이 아니었다면 과연 시청자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김항아는 그래도 낫다. 김항아의 캐릭터는 상당히 평이한 편이다. 군인으로서는 최고지만 연애에는 서툴다. 군인이라는 직업만 바꾼다면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일 것이다. 프로페셔널한 모습과 대비되는 백치스러운 순수함이 얼핏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단골이다.
그러나 이승기가 연기하는 이재하는 아니다.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생일선물까지 바꿔치기해가며 동료끼리 싸움을 붙이나? 그렇지 않아도 바로 얼마전까지 첨예하게 대립하던 남북한의 장교들을 두고서 말이다. 결국 그것이 시비로 번지고 서로 총을 꺼내 겨누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음에도 이재하는 전혀 아무런 반성은 커녕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한 마디로 철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며 행동하는 것이 아이같다. 북한의 장교가 한국의 대중문화를 즐기고 있는 것을 보니 어느새 마음 한 구석에 우월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것이 아이돌이라는 사실에 놀리고 비웃고 싶어한다. 고작해야 대중문화인데 적대적이던 북한의 장교가 그에 빠져 있다.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마음도 없고, 같은 팀원으로서 배려하는 마음 또한 없다. 북한에 대한 맹목적 적개심과 불신, 그리고 유아적인 이기와 에고로 가득차 있다. 트러블메이커다.
아마 최종평가를 대신해 국왕의 제안으로 실시한 남북한의 무력충돌이라는 상황에 대한 대처 역시 그러한 이재하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고작해야 왕제다. 이재하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지 않던가.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국가에 있어 왕실이 갖는 가치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없다고. 과연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해서 국왕도 아닌 고작 왕제를 구하기 위해 국가의 소중한 영토를 떼어주는 일이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 그런 상황이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왕제가 살아 있어야 땅을 가지고 협상이라도 한다. 왕제가 그것도 북한에 체류중에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사망했다면 더 이상 평화적인 종전은 물건너간 것이다. 전장에서 싸우다 죽는 것과 불의의 기습을 받아 죽는 것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무엇보다 김항아를 비롯해 이재하 등의 탈출을 돕고자 나서고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생환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선택해 생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도 마치 할복을 앞둔 사무라이처럼 혼자서 심각하다. 도취되어 있는 것이다.
포로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억지로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필요는 없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다. 더구나 북한군 군관들이 그의 탈출을 돕겠다 나서고 있지 않던가 말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왕족답게 포로가 되기보다 아름답게 산화하기를 꿈꾸는 이재하의 도취는 그같은 북한군 군관들의 도움마저 거절한 채 오히려 그들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이어진다.
아닌 척 하면서도 이 얼마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가? 왕이 그를 야단치는 것은 바로 그로 인해 WOC 남북한 단일팀의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었다. 이재하가 그 단초를 마련했고 마침내 그 끝을 보고 말았다. 과연 자신을 믿지 않고 마침내 방아쇠까지 당긴 상대를 끝까지 믿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란 몇이나 될까? 그런데도 그것을 이재하는 자신의 행군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치는 사고에 비해 수습하는 방식이 역시 아이같다.
아마 분명 이재하도 마음을 고쳐먹게 되는 계기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무책임하게 안일하게 제 감정에 취해 행동하던 것을 스스로 자제할 줄 알게 되는 계기가 찾아오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이재하란 어쩌면 클럼M의 총수 김봉구(윤제문 분)보다 더한 트러블메이커일 것이다. 그런 주제에 뻔뻔하기까지 해서 반성은 커녕 수습을 위한 노력조차 거의 않는다. 때로는 파트너인 김항아조차 그를 통제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에까지 이른다.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야 한다. 이승기는 매력적이다. 아마 그것이 이재하의 캐릭터를 지탱해주고 있을 것이다. 배우는 매력적인데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다. 캐릭터가 전혀 매력적이지 못한데 배우의 매력이 그것을 살려준다. 하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왕이며 클럽M의 김봉구며 소녀시대를 두고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심과 공화국에 대한 열렬한 애국심을 드러내던 리강석(정만식 분) 역시. 배우가 드라마를 살리고 있다.
심지어 이재하와 김항아의 관계마저 하지원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다지 설득력은 없는데 그러나 하지원의 표정에서 어느새 납득된다. 그래서 이들은 커플이 되는구나. 조금씩 다가가는 역사가 하지원을 통해 완성된다. 배우에게 많은 빚을 지는 드라마다.
마치 보모를 보는 것 같다. 연인이라기보다는 보모와 아이와도 같다. 하지원이 훨씬 성숙한 매력이 있기는 하다. 이재하의 캐릭터의 문제다. 너무 길다. 지친다. 설정이 넘친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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