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못하다. 왕세자 이각(박유천 분)이 용태용이 되어 버렸다. 닮은 정도가 아니다. 환생이란다. 홍세나(정유미 분)가 세자빈을 닮은 것처럼 용태용 또한 이각의 환생으로써 서로 닮아 있었던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이각이 용태용이 그랬듯이 용태무(이태성 분)에게 밀려 물에 빠지는 순간 두 사람은 시공을 넘어 하나의 기억 속에 만나게 된다. 판타지라고 너무 쉽게 가려 한다.
아무리 픽션이더라도 드라마란 현실에 기반한다. 시청자 자신이 현실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바로 개연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드라마의 각요소에 대한 유기적 연결이다. 그러나 과연 왕세자 이각이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 어디에 그같은 유기적 연결이 존재하는가. 어느날 문득 왕세자 일행을 쫓는 자객이 있어 한참을 도망치다 보니 바로 현대였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이각이 물에 빠지고 나니 바로 용태용이 되어 버렸다. 물론 이각의 기억도 가지고 있다.
처음 기대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용태용과 닮았다. 여회장(반효정 분)이 그런 이각을 보았고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게 된다. 여기에 용태무와 홍세나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며 왕세자 이각은 용태용과 각의 사이에서 점차 진실에 다가가며 자신이 안고 온 문제와 더불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조금 더 이각과 용태용이라고 하는 전혀 다른 시대에 살던 별개의 인물들이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헤프닝이 벌어지며 지금의 코믹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그런데 느닷없이 용태용이 되어 버림으로써 그 과정에서의 유쾌함은 건너뛰게 생겼다. 아쉽다.
역시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처럼 - 아니 보다 왕세자 이각을 비롯한 송만보(이민호 분), 우용술(정석원 분), 도치산(최우식 분)을 중심으로 좌충우돌하는 에피소드를 보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와 같은 복잡한 이야기구조는 개개에 대한 관심을 흐트리는 역할을 한다. 중간과정을 생략함으로써 더욱 과감하게 왕세자 일행이 활약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그만한 웃음은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신경써야 하는 번잡스러움이었을 것이다. 보다 빨리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는 게 좋다.
문득 생각한다. 어째서 홍세나는 그렇게까지 박하(한지민 분)를 싫어하는가? 차라리 돈이 욕심나서 훔친 것이라면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4천만원이라는 거액의 돈이 눈앞에 있는데 그것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물론 수표다. 수표는 현금과는 달리 자칫 잘못 손댔다가는 바로 추적당하고 만다. 그것을 홍세나라고 몰랐을 리 없다. 쓰지도 못할 돈을 무엇하러 그녀는 훔쳐내고 있었는가? 심지어 돈을 훔쳐내고는 그만한 돈을 박하가 한국을 떠나는 조건으로 내주겠다 말하고 있다.
엄마와 둘이서 살았다. 세상에 단 둘 뿐이었다. 엄마와 나. 그것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의 세계는 완결되어 있었다. 딱 그만큼까지가 그녀가 살고 있던 세계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세계로 웬 아버지라는 사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아버지에게는 딸까지 하나 있었다. 자신을 언니라 부른다. 결코 동생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다. 혼자서 쓰는 방인데 어느날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 찾아와 가족이라며 눌러앉으려 한다. 기분이 어떠할까?
박하는 단지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이 좋아 엄마이고 언니라 하지만 홍세나로서는 단 한 번도 그녀를 가족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머니의 남편이던 사람마저 죽은 이상 다시 엄마와 자신 둘 뿐인 원래의 시절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찾아와서 엄마라 부르고 언니라 부른다. 제아무리 박하가 홍세나를 언니라 생각하더라도 어차피 피도 이어져 있지 않은데 홍세나로서는 그녀의 언니가 되어주어야 할 의무도, 그녀를 동생으로 대해야 할 의리도 없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원한은 어른의 그것보다 집요하고 지독하다. 원래 자신의 것이어야 했을 것에 대한 원한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단지 박하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는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이상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용태무에게 하는 자신과 관련한 거짓말들이 바로 그런 증거일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바람이기도 하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만 이상화된 그녀의 관념 속에 어쩌면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어머니와 자신과의 관계도 그렇다. 그것을 깨려 한다면 적이다. 그것을 깨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면 마땅히 밀어내야 하는 적일 것이다. 엇갈림이었을까? 그것은 마치 전혀 엉뚱한 현대사회로 시간을 건너뛰어 온 왕세자와도 닮아 있다.
사실 그같은 역설로부터 드라마는 시작된다. 이각은 조선의 왕세자다. 그러나 이각이 지금 머물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현대의 대한민국이다. 여전히 이각은 왕세자로서의 삶과 가치관을 유지하려 하지만 눈앞에 놓인 현실이 그러한 이각의 의지를 배반한다. 이각과 닮았지만 용태용이 아니다. 홍세나와 닮았지만 세자빈이 아니다. 용태용의 자리를 대신하려 하지만 원래 그 자리는 용태무의 자리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아주 역설적이게도 거짓된 용태무와 홍세아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진실한 감정으로서 대한다. 과연 진실한가는 알 수 없지만.
바로 최악의 선택일 수 있다는 이유인 것이다. 그같은 역설에 기반한다. 용태용과 닮았지만 용태용이 아니다. 이각과 닮았지만 이각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일치시켜버린다. 이각은 용태용이다. 그 만큼의 역설이 빠지며 드라마가 단조로워지기 쉽다. 목적없는 헤프닝위주의 단순한 플롯이기 쉽다. 물론 잘 만들면 재미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은 많이 아쉽다.
조금씩 현대사회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박하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인형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 춤을 추다가 탈진해 쓰러질 정도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없었던 것일까? 조금 더 백지인채로 현대사회에 적응하며 장차의 이야기를 준비해간다. 그렇더라도 진정 환생이라면 이각과 용태용이 만날 여지는 아직도 많다. 아쉽다. 그래도 기본은 해준다. 한참을 웃는다.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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