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무리수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왕세자다. 장차 왕위를 물려받을 귀하신 몸이다. 그렇다면 그에 어울리는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왕세자의 신분으로 그럼에도 고작 재벌3세의 행세를 하려는데 환생이란 너무 설득력이 부족하지 않은가.
차라리 박하(한지민 분)의 옥탑방을 지키기 위한 목적에서 그랬다면 오히려 더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홍세나(정유미 분)로 인해 가게중도금을 치를 수표를 잃어버린 박하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려는 그녀를 잡고자 딱 한 번 자존심과 양심을 접고 거짓말을 한다. 의도적으로 그리하려 해서 그리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상황에 떠밀려 어느새 용태용이 되어 있었다.
마침 박하가 가지고 있던 용태용의 핸드폰은 딱 적당한 소품이었을 것이다. 한지민이 우연히 흘린 것을 왕세자 이각(박유천 분)이 줍는다. 돌려주기 위해 가지고 있던 것을 혹시나 싶어 이각을 눈여겨보던 여회장(반효정 분)에게 들키게 된다. 아니라고 솔직하게 밝히려 해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가운데 박하의 어려운 처지가 그로 하여금 용태용이 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눈이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한 번 용태용이 되고 나니 이제 와서 거짓말이라 털어놓기도 민망하다. 상황에 이끌린다.
세자빈과 꼭닮은 홍세나와의 만남이 그 계기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세자빈과 꼭닮은 홍세나가 여회장의 비서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만나려 하는 와중에 다시 여회장과 엮이게 된다. 이각은 홍세나에게서 세자빈의 모습을 발견하고 계속 다가가려들고, 용태무는 그런 홍세나를 이용해 이각의 비밀을 캐려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용태용이 된 이각은 용태무가 간직한 검은 속내와 비밀들을 찾아내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세자빈살인사건에서의 감춰진 내막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헤프닝이 이어진다.
그런데 환생이란다. 명확하지도 않은 사실에 이각은 확신을 갖는다. 그리고 명확하지도 않은 추론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용태용은 이각의 환생이 분명하니 이각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은 용태용의 육신이 해를 입었다는 뜻이다. 용태용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하고 그와 세자빈의 죽음과의 연관성까지 찾으려 한다. 그러나 자본 비장하기까지 한 그같은 전제가 용태용이 사실은 이각의 환생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외모가 닮았다고 해서 영혼까지 닮는 것은 아니다. 환생이란 외모까지 그대로 간직한 채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같은 추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같은 추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것도 판타지인 드라마의 속성상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래서 더 재미있을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이 문제였다. 기왕에 서로 닮은 외모로 인해 홍세나를 세자빈의 환생으로 의심하고 있었다면 그것이 확신으로 바뀌는 계기가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사건이 중첩되는 가운데 철저히 드라마를 통해 오해이든 사실이든 결론을 내린다. 드라마다.
오히려 용태무가 이각을 용태용이라 오해하는 편이 더 나았을수도 있다. 용태무가 오히려 이각이 용태용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내몰기 위해 악의와 집착을 보인다. 그를 돕고 있는 홍세나로 인해 그는 더욱 위험에 빠지게 된다. 아직 홍세나와도 관계가 설정되어 있지 않고, 용태무에 대해서도 워낙 확신이 강한 탓에 혼란만 가중된다. 처음으로 왕세자가 왕세자로 보이지 않는다. 선을 넘은 때문이다. 그만한 품위와 격위와 격식이 보이지 않는다.안타깝다. 아쉽다.
이각과 박하의 본격적인 로맨스가 시작된다. 그보다는 아직 우정이상이다. 오래도록 함께 부대끼며 지내왔으니 - 더구나 이각은 아직 세자빈을 잃은지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그냥 안쓰럽다는 연민이다. 도움을 주고 싶다는 호의다. 그래서 한참 수다를 떨고 그 수다를 들어준다. 열대의 섬에서 쉬고 싶은 박하에게 이각은 트럭에 실린 열대해수욕장의 사진으로 그를 설득하고 있다. 고백하는 연인도 아니고 몸으로 트력까지 멈춰세우고는 그대로 트럭을 타고 쫓아가 버스에서 박하를 따라잡는다.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는 죽은 세자빈의 생각 뿐이다. 조금은 답답하다.
용태무가 빼돌린 핸드폰이 홍세나의 집에서 다시 홍세나와의 박하의 어머니 공만옥(송옥숙 분)에게로 가는 과정이 참으로 얄궂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 어머니와 가족에 대해 숨기고, 용태용의 핸드폰을 가져와 몰래 감춘다. 모든 것이 거짓인 가운데 심지어 부숴버리려 했던 핸드폰이 용태무의 손으로 공옥순에게 건네가 멀리로 보내진다. 마이너스에 마이너스를 곱하면 플러스가 되던가? 역에 역을 곱하면 순이 되고 정이 된다. 서로에 대한 기만이 진실에 대한 단초를 남긴다. 비로소 용태용이 아니더라도 용태무의 과거의 행적은 드러나고 말 것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라고 반드시 머리를 자르지 않고 계속해서 기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는 것은 그만큼 제 몸을 아끼고 보살피라는 뜻이지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톱을 깎는 등의 행위에까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같은 이데올로기가 강조된 것은 외세에 의해 단발령이 내려지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지나치게 과장되었달까?
정유미의 박하에 대한 감정을 이해한다. 그보다는 그가 어째서 무리하게 자신의 가족관계며 모든 것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려 하는가 충분히 이해된다. 이미지인 것이다. 이상화된 이미지를 쫓는다. 현실에 없는 것으로써 현실로 삼는다. 자기가 가지고 싶은 가족을 상상속에 만들고 그것이 진실인 양 사람속에 숨는다. 그것을 해치는 것은 적이다. 어머니 공옥순도, 여동생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박하도, 그보다는 서로 거짓으로 만난 용태무에 충실하려 한다.
몇몇 부분에서 연기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호흡을 잡지 못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각의 캐릭터가 명확하게 와닿지 않는다. 아마 이또한 한 가지 문제일 것이다. 왕세자일 뿐 이각이라고 하는 개인을 드러낼만한 에피소드가 없었다. 구체적인 묘사없이 마냥 설명으로만 때우려 하니 무리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결국 이각은 박하를 직접 쫓아가 붙들어 세운다. 이각의 신하들은 여회장의 집에서 여전히 좌충우돌이다. 벌써 두 명이나 기절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용태무가 안도하는 가운데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네 사람이 머리를 깎았다. 본격적으로 가려 한다. 재미있다.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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