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확실히 이래서 드라마는 출생의 비밀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단번에 입장이 역전되고 만다. 일방적으로 우위에 있던 홍세나(정유미 분)와 박하(한지민 분)가 박하가 기회를 찾는 순간 박하의 생모로 추정되는 장회장(나영희 분)이 나타나며 입장이 완전히 역전되고 만다. 이제는 박하가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 절대 밝혀져서는 안되는 거짓된 삶 속에 있는 홍세나와는 달리 박하의 우위는 마침내 밝혀진 현실 위에 있다. 이제는 홍세나가 당할 차례다.
어쩌면 왕세자 이각(박유천 분)이 우용술(정석원 분), 송만보(이민호 분), 도치산(최우식 분)등과 함께 수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로 오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겠는가. 물론 정당한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박하가 마침내 홍세나에게 독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렵 홍세나가 서툴지만 순수한 이각의 진심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의 죄와 마주하며 눈물을 흘리는 홍세나와 그런 그녀에게 당당히 분노를 드러내는 박하의 모습에서 어쩌면 과거에 있었을 어떤 비극을 예감하게 된다. 과연 언니에 의해 얼굴에 상처를 입고 자신의 것이었어야 할 왕세자의 자리마저 빼앗기고 만 당시 세자빈의 동생에게 있어 언니인 세자빈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마음이 깊어졌다. 오해도 깊어졌다. 그동안 함께 해 온 시간들이 있었다. 시간과 더불어 감정이 쌓여 왔다. 진심을 털어놓았고 진심으로써 보답받았다. 그토록 간절히 꿈꾸던 열대의 섬과 함께 그는 미국으로 떠나려는 그녀를 붙잡아 세우고 있었다. 간단이 보이는 이각의 진심어린 배려는 외로운 처지의 박하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바람은 착각을 부른다. 이각의 진심이 자기에게로 향하고 있다고 믿는 순간 그의 마음이 전혀 엉뚱한 곳에 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도 그녀가 진심으로 분노하고 증오하는 이제는 언니조차 아닌 홍세나에게로.
사실은 억지였다. 이각과의 데이트 도중 공원 벤치에 앉아 무심코 묻던 홍세나의 말에서 그녀의 감추어진 진심을 보게 된다. 상처였을 것이다. 어디사냐? 부모님은 뭐하시냐?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었으면 싶지만 절대 그럴 수 없으리라는 절망이다. 어느날 어머니가 재혼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재혼상대가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낳아준 부모야 선택할 수 없지만 어머니의 선택에 의해 생기게 될 가족이라면 조금은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편모슬하라는 것, 그리고 재혼한 가정이라는 것, 더구나 그렇게 새로 생긴 가족의 외형적인 부분들이 주위의 수군거림과 어울려 개인에게 입히게 될 상처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자세한 묘사는 없지만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그리고 그다지 상관없다는 이각의 반응에 놀라는 홍세나의 모습에서 그녀가 그동안 겪어왔을 상처를 짐작하게 된다.
아무도 없이 혼자서 보내는 시간들이 좋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공원에 혼자 앉아 즐기는 여유가 행복하다. 그만큼 바쁘게 살아왔다. 그만큼 각박하게 살아왔다. 삶의 치열함은 때로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상처가 치유된 자리에 단단한 껍질을 만든다. 허세처럼 둘러쓰고 억지스럽게 강한 척 버틴다.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상관없어. 홍세나에게 껍질이란 그녀의 거짓된 삶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그토록 걱정하면서도 그것을 내색할 수조차 없는. 그런데 마침내 박하와 그녀로 인해 낱낱이 드러나게 된 자신의 죄와 마주하니 마냥 두렵다. 그녀는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며 발악을 해 본다. 하지만 더 이상 박하는 그녀의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렇게 지금껏 견디고 버텨왔음에도. 거짓의 껍질이 모조리 벗겨진 그녀는 아이보다도 약하다.
홍세나가 떨어뜨린 악세사리에서 이각의 마음을 오해했음을 안다. 아마 박하가 이각에게 진심이었다면 그 또한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과거 홍세나가 자기에게 저지른 일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엇갈린 진심과 더해지며 비극을 고조시킨다. 장회장은 아마도 박하의 어머니일 것이고, 지금까지 용태무(이태성 분)와 손잡고 용태용의 할머니 여회장(반효정 분)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 홍세나가 박하에게 보인 눈물이 진심이었다면, 그리고 이각에게서 느낀 감동이 그녀의 진심이었다면, 그렇다면 결국 박하 또한 여회장과 맞서려는 어머니와 함께 이각과 대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언젠가 이각 또한 홍세나의 실체를 알게 되겠지만, 아니 어쩌면 홍세나의 실체를 알게 되고서도 그는 용서하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의 세자빈의 죽음과 지금의 상황이 상당히 유사점이 있지 않겠는가. 죽은 사람이 세자빈이 맞자면 가장 유력한 동기를 가진 사람이 있다.
과연 박하는 홍세나에 대한 분노를 적의로 바꾸려는지. 장회장의 의도와 맞물려 박하와 이각이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되려는지. 의외로 용태무가 사람이 좋다. 경영권에 욕심을 내는 탓에 여회장과 용태용과 서로 대립하며 악역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어차피 그런 정도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비록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온 아들이지만 그의 친할아버지가 바로 회사의 창업주였다. 어차피 용태용의 죽음도 사고였다. 용태무가 그 사실을 숨기려 드는 이유는 단지 그 뒷감당을 자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미안해 할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그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 홍세나를 대하는 것이나 박하를 대하는 것이나 용태용을 대할 때와는 다르게 깍듯하고 반듯하다. 해피엔드로 결론지어지게 될까? 이각이 결국 과거로 돌아가게 되면 현재에 남는 것은 용태무가 될 터다. 그는 아직 충분한 악역이 아니다.
조금은 산만하다. 이각과 그 신하들의 좌충우돌하며 회사에 입사해 적응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그것이 너무 나열식으로 구성된 탓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단지 회장의 손자가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 입사시험에서 0점을 맞았음에도 입사가 허락되더라는 부분에서는 족벌경영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차라리 용태용의 경우라면 기억이 불완전하므로 그럴 수 있다 하겠다. 하지만 멀쩡한 청년 셋이 입시시험에서 단 한 문제도 풀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아마 우용술 등에게는 현대의 신분증이 아직 터임에도. 입사하는 과정도 억지스럽고 그렇다 보니 입사하고 나서 적응하는 과정도 부자연스럽다. 당연히 유기적인 연결보다는 각각의 장면의 묘사가 주를 이루게 된다. 이런 재미있는 장면도 있다. 딱 그 장면만 재미있다.
차라리 이각이 용태용이 되어 회사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이들의 도움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한 번 보기만 하면 모두 외워버린다. 무술의 고수다. 여성과 친하고 사교성이 좋다. 이각은 왕세자로서의 리더십만 보이면 된다. 조금씩 이들 세 사람의 능력이 드러나는 가운데 기업의 내부사정과 맞물려 연착륙하게 된다. 결국은 기업의 내부갈등도 왕실과 조정의 치열한 정치싸움과 다를 바 없다. 너무 성급하다. 이각이 용태용이 되는 과정이나 이각의 신하들이 회사에 입사해 사원이 되는 과정 역시 지나치게 서둘러 진행된다. 드라마보다는 설정이 앞선다. 아쉬운 부분이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박하의 생모로 추정되는 장회장의 존재와 그 장회장과 손잡고 여회장과 맞서려는 용태무 부자, 그리고 왕고모(박준금 분)과 내연관계에 있는 용태용의 응원군 양택수(이문식 분)의 등장, 무엇보다 박하와 홍세나, 박하와 이각, 홍세나와 이각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되어갈 것인가? 용태무와 홍세나의 관계에도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과거에 발휘되던 이각의 신하들의 역량이 현대사회에서 펼쳐질 모습도 기대한다. 재미있지만 아쉽다. 아쉽지만 재미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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