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동기부여 없는 승부, 긴장도 짜릿함도 없다.

까칠부 2012. 4. 9. 07:47

게임을 정의하는 세 가지가 바로 경쟁과 규칙, 그리고 보상이다. 경쟁이란 게임의 플레이 그 자체다. 나 이외의 존재와 경쟁하여 승부를 겨룬다.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승부를 겨룰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규칙이다. 방향성과 범위를 정의한다. 마지막으로 승부를 통해 주어지는 보상은 게임에 임하는 동기이자 목적이 된다. 게임의 플레이에 이유가 주어진다.


이를테면 지난 '식스팩'미션에서 중간에 멤버와 스텝들이 서로 편을 갈라 족구시합을 하는데 그 보상으로서 김국진의 소개팅을 조건으로 건 것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자의 자격> 멤버들과 스템들이 서로 편을 나누어 족구를 한다. 각각의 팀구성은 몇 명으로 하고, 몇 점을 목표로, 몇 세트에 걸쳐 시합을 하며, 그 외 세부적인 룰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그 단계에서 이기고 지고 하는 자체만으로도 동기를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 이 경우 내기가 주어진다. 스탭들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이며 김국진이 어떻게 해서든 스탭들을 꺾어야 하는 이유다. 이기고자 하는 김국진의 의지가 그래서 몇 배 더 긴장과 재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의 자격>의 이번 '남자 vs 남자' 미션에 대해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사실 결코 재미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척 재미있었다. 어느새 서로에게 익숙해진 멤버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시시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하찮은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와 행동들이 정겨운 웃음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때로 왁자하게 웃을 수 있기도 했었다. 자신들의 이름을 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신화의 여섯 멤버 역시 만만치 않은 웃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짓궂은 농담과 스스럼없는 어울림과 우발적이면서도 자연스런 헤프닝들. 그러나 절박함이 없다.


어찌되었거나 승부다. <남자의 자격> 3주년 특집으로 그동안의 베스트미션을 '신화'의 멤버들과 대결을 통해 보여준다. '자전거 여행'편에서 보여졌던 다인승자전거경주와 '무인도'미션과 연계된 뗏목만들기 서바이벌과 '월드컵'미션에서 이어진 족구, 과연 신화와 <남자의 자격> 멤버들 가운데 누가 승리할 것인가? 젊고 건강한 신화의 멤버와 평균연령이 10살 이상 높은 <남자의 자격> 멤버 사이에 진검승부가 펼쳐진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무엇을 목적으로, 도대체 무엇을 얻고자 저들은 저토록 치열하게 승부를 겨루고 있는가? 저들로 하여금 승부에 집착하도록 만드는 이유란 무엇인가? 아니 승부에 대한 간절함이나 집착이 있기는 한 것일까?


다인승자전거경주를 벌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경규와 김태원이 이기기 위한 모략을 짠다. 이경규는 신화 멤버들의 자전거 앞에 드러눕고, 김태원은 공기저항을 높이려 우산을 들고 끊임없이 뒤에서 신화멤버들을 교란시킨다. 마지막에는 신화멤버들이 절묘하게 피해 지나간 장애물을 김태원이 직접 자기 손으로 쓰러뜨리기까지 한다. 그렇게까지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승부에 집착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럼에도 누가 이겼는가 결과를 발표하는데 전혀 아무런 긴장도 흥분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신화가 <남자의 자격> 멤버들보다 1분 이상 빨리 들어와 이겼다.


뗏목만들기 서바이벌 역시 다르지 않았다. 주어진 재료만을 가지고 뗏목을 만들어야 한다. 뗏목을 만들어 미리 만들어 놓은 반환점을 돌아 골인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승부의 배경은 작년 치러졌던 '무인도'미션에서 이어진다. 무인도에서 주어진 재료만을 가지고 뗏목을 만들어 탈출해야 한다. 다만 단지 뗏목을 만들어 탈출하는 것만이 아닌 그것을 승부로써 겨루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다. 어째서 무엇때문에 그들은 승부를 겨루어야 하고, 그 결과로써 각자에게 무엇이 돌아가는지. 


승자에게 돌아갈 보상과 패자가 감당해야 할 패널티가 확실한 동기부여를 해준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마지막 순간 골인지점을 향해 달리는 각 팀의 멤버들에게 응원을 보낼 이유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힘들게 뗏목을 만들어 애써 노를 저어 골인지점으로 향하는데 어째서 아무런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뗏목을 완성할 때도 마지막 골인지점을 통과할 때도 그냥 무덤덤히 지켜보고 있었다. 뗏목이 만들어지는 동안에도, 그리고 뗏목이 골인지점을 통과하는 그 순간에도, 그러나 승부이기에 느껴져야 할 짜릿한 긴장감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누가 이기든 지든 상관없다.


하기는 승부에 임하는 자신들부터가 그러했다. 마냥 유쾌했다. 여유가 넘쳤다. 승부에서 이기고 나서도 그들의 환호는 어색하고 동떨어져 있었다. 졌다고 아쉬워하거나 하는 것도 없었다. 예능이기에 여유를 부릴 때는 부리더라도 그 순간 만큼은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최선을 다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이 느끼는 절박함이나 치열함을 시청자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보상이며 목적이었을 텐데 그것이 없었다. 작가의 직무유기를 의심하게 된다. 그냥 일단 경쟁만 시켜놓으면 재미는 알아서 따라온다고 생각한 것일까?


게임이 아닌 놀이였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게임은 자신이 가지는 보편적 구조로 인해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입하고 투사함으로써 타인 역시 당사자가 되어 게임에 동참할 수 있다. 그러나 놀이란 오로지 놀이에 참가한 당사자 사이에서만 그 관계 속에 머문다. 당사자들은 무척 재미있는데 나머지는 철저히 타자가 되어 그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재미를 느낄 수는 있지만 확실히 전자의 긴장이나 흥분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즐거움과 희열의 차이다. 서로 경쟁을 하며 왁자하게 떠들고 이야기도 만들고 있지만 어느 한쪽편에 속해 그들과 그 짜릿함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철저히 그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이야기였다.


그나마 족구는 분량까지 길었다. 무엇을 목적으로, 어떤 보상을 얻고자 그리 치열하게 겨루는가 하는 이유조차 없이 2세트가 끝나고 3세트를 다음주로 넘기는 여유마저 보이고 있었다. 어지간히 큰 보상을 걸고 승부를 겨루었더라도 4주면 충분히 지겨워지고도 남을 시간인데 목적없는 경기가 한 주 결방 이후 4주째까지 이어지려 하고 있다. 순간은 우스운데 정작 끝나고 나니 지루하다는 생각이 앞선 것은 바로 그래서였다. 승부의 이유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다인승자전거경주에서 신화의 차례가 돌아오기 직전 이경규가 말한 것처럼 <남자의 자격> 그 자체를 상품으로 걸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신화가 이긴다면 한 주 <남자의 자격>은 신화의 것이 된다. 신화가 주인공이 되어 <남자의 자격>의 미션을 수행한다. 그리고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승리하면 신화의 멤버들은 멤버들이 제시한 벌칙을 <남자의 자격>을 통해 인증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남자의 자격>에 신화가 한 주 더 나오게 되는 셈이다. 의미는 다르지만. 하기는 신화는 이미 자신들의 이름을 딴 버라이어티를 하나 하고 있다. 다만 의미는 부여할 수 있다. 아니더라도 다양한 다른 조건들을 걸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시청자에게도 동기를 부여한다.


지루해서 혼났다. 부분부분은 재미있었다. 장면장면은 웃기기도 했었다. 신화는 예능에서 믿고 본다. <남자의 자격> 멤버들은 프로그램의 주인들이다. 다만 그 이상을 넘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 길었다. 나머지까지 있었다. 이유를 생각한다. 더 재미있을 수 있었다. 많이 못미쳤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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