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랑비 - 오랜 80년대의 촌스러움이 그립고 반갑다.

까칠부 2012. 4. 18. 08:58

처음 일본에서 드라마 <겨울연가>가 한류라는 말을 유행시키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었다. <겨울연가>에서 느껴지는 70년대 순정물의 정서가 그 무렵 예민한 시기를 보낸 일본주부들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문득 그 이야기에 공감하게 된다. 서인하(정진영 분)와 김윤희(이미숙 분)이 비오는날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카페에서 마주했을 때, 그 대사의 코드는 마치 80년대의 그것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의도한 것인지 마치 대사의 톤마저도 오래된 비내리는 멜로영화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목소리에마저 스크레치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서준(장근석 분)과 정하나(윤아 분)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티격태격거리는 모습이 마치 80년대 청춘드라마의 그것을 보는 것 같다. 괜히 관심이 있으면서 튕겨보고, 마음이 있으면서도 오해로 말미암아 허튼 자존심에 외면도 해보고, 그러다가 멀어져도 보고, 그럼에도 끝내 멀어지지 못하고 다시 만나고, 하지만 여전히 서로 솔직하지 못하다. 


물론 사랑이야기란 게 그렇다. 수백수천년전의 이야기에서도 사랑은 수줍었다. 진지할수록 수줍었고 무거울수록 엇나가고는 했었다. 많은 사랑의 이야기란 그같은 엇나가는 이야기다. 그렇게 엇갈리면서도 마치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원초적 감수성이 아직 무르익지 않은 80년대식 촌스러운 대사와 영상에 녹아든다. 그래서 예쁘다. 본능처럼 느끼게 된다.


비로소 보인다. 오랫동안 이런 종류의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잊고 있던 그리움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 그것이었다. 과거의 70년대와 그리고 지금의 2010대를 배경으로 한 80년대식 이야기와 필자가 한참 예민하던 시기에 주로 읽고 보았던 사랑이야기들이. 윤아는 청순하고 예쁘고 장근석은 괜한 폼을 잡으며 귀엽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런 것이 그저 멋져보이던 무렵이 있었다.


문득 생각한다. 차라리 정하나와 서준이 처음 만나는 순간 사랑을 느끼고 동거를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정하나가 방을 구하는 과정에서 집에서 나와 따로 살려는 서준의 의도와 만나게 된다.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이 있고 충동에 못이겨 서로 함께 살게 된다. 그러나 완전한 결합은 아니다. 먼저 몸이 만나고 마음이 이어진다. 보다 자유롭고 솔직하게 본능에 이끌리는 자신들이 있다. 언제까지나 수줍게 자신의 감정에 치이는 사랑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런 구태의연함이 드라마의 매력이랄까? 여전히 80년대 순정만화처럼 그들은 수줍어하고 어색해한다. 70년대 부모세대와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30년만에 다시 만난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하는 말과 행동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사람은 어느때든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진부할 수 있겠다. 드라마의 시청률이 그다지 나오지 않는 이유다.


기왕에 30년의 세월을 서로 대비해 보고자 한 것 보다 극단을 설정해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3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를 보다 극명하게 드러낸다. 선명하게 부모와 자식세대의 사랑이 분리되어 보여진다. 하기는 그러기에는 아이돌이라는 윤아의 현재 신분이 걸린다. 장근석의 인기에 편승해 해외수출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는 드라마다. 출발부터 한계가 있었다. 장근석과 윤아를 주연으로 선택하는 순간 드라마의 방향은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최선이다. 드라마의 재미나 완성도를 떠나 사랑에 빠진 연인은 항상 귀엽고 예쁘다. 사랑스럽다.


진부할 정도로 스테레오적이다. 절로 TV화면 위에 비가 내린다. 지직거리는 스크레치가 들린다. 오래된 컬러TV의 색이 번지는 브라운관이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그랬다면 더 어울렸을 것이다. 장점이며 한계다. 좋아하는 이유이면서 단점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이기적이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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