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옥탑방 왕세자 - 옥탑방이 아닌 왕세자, 럭셔리 판타지를 그리다.

까칠부 2012. 4. 19. 09:35

처음 <옥탑방 왕세자>라는 제목을 듣는 순간 떠오른 이미지가 있었다. 장차 왕위에 오를 지고한 신분의 왕세자와 우리사회 기층서민의 삶을 대변하는 듯한 허름한 옥탑방, 어쩌면 그같은 모순과 부조화를 통해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지 않겠는가.


그런 경우들이 많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로 오게 된다. 과거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현대로 오게 되면서 우리가 사는 현실과 서로 충돌하게 된다.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통렬한 비판과 반성으로, 그렇게 우리가 지금 사는 현실의 모습들이 과거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하물며 왕세자라는 고귀한 신분과 옥탑방이라고 하는 서민적 공간의 만남이었다. 그것은 또한 얼마나 흥미롭고 통쾌한 모순과 대립을 만들어낼까?


하지만 아니었다. 비록 기업과 기업을 소유한 상층부의 이야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그것이 주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다. 여전히 옥탑방에 머무는 왕세자 이각(박유천 분)과 그런 이각을 오해하고 쫓는 여회장(반효정 분), 그리고 그런 여회장으로 인해 이각과 대립하게 되는 용태무(이태성 분)를 상상했었다. 박하(한지민 분)에게는 대한민국 기층서민의 삶을 배우고, 그러면서 다시 세자빈의 환생이라 여기는 홍세나(정유미 분)와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결국 드라마에 있어 방점은 '옥탑방'이 아니라 '왕세자'였다. 어느새 럭셔리하게 바뀌어 버린 옥탑방처럼.


옥탑방이 더 이상 옥탑방이 아니었다. 하기는 이전의 옥탑방도 서민의 주거공간이라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너무 넓었다. 너무 세련되고 깔끔했다. 필자가 아는 옥탑방은 대개가 그렇지 못하다. 좁고 허름하다. 그래서 부동산에도 가장 싸게 나온다. 도대체 박하가 사는 정도의 옥탑방이라면 월세가 얼마나 나올까? 그런데 그조차 어느새 여회장의 손자 용태용이 되어 버린 이각에 의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만다. 그렇게 화려한 집에서 살려 할 것이면 굳이 옥탑방이라는 이름을 앞에 갖다 붙일 이유가 무엇인가? 차라리 이각이 왕세자가 아니고 단지 철없는 재벌가의 손자라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해나 가겠다. 대기업의 왕세자라고.


결국 드라마는 그렇게 옥탑방이 럭셔리하게 바뀌어가듯 인물들도 리모델링되어간다.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으로 거짓된 자신을 꾸미려 하는 홍세나는 사실 홍콩의 재력가 장여사의 딸이었다. 무려 20년이나 가족과 헤어져 있다가 겨우 한국으로 돌아와서 억척스럽게 고단한 서민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박하 역시 홍세나와 같은 어머니를 둔 자매였다. 아니 그 전에 용태무의 추천으로 그녀는 더 이상 시장이 아닌 이각과 용태무, 홍세나와 같은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게 된다. 마치 이각의 돈으로 옷도 사고, 머리도 꾸미고, 승마까지 배우는 그 모습처럼. 왕세자가 옥탑방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옥탑방이 왕세자가 되는 것이다.


드라마는 판타지다. 드라마는 철저히 판타지를 추구한다. 어설픈 타협따위 없다. 적당히 눈가림하는 리얼리티란 없다. 왕세자가 옥탑방에 있으니 호박이 마차가 되듯 옥탑방 또한 왕세자에 어울리는 공간이 된다. 왕세자 자신은 물론 홍세나와 박하 역시 대기업 후계자에 어울리는 재력가의 잃어버린 딸로써 걸맞는 신분을 갖추게 된다. 모두가 꿈꾸는 것이다. 옥탑방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리모델링되듯 자신의 삶 또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리모델링될 수 있기를. 시간을 뛰어넘은 왕세자만큼이나 홍세나와 박하를 통해 그같은 꿈을 보여준다. 하필 창업주가 밖에서 낳아온 자식의 아들로써 용태용의 죽음과도 관계되어 있는 용태무라고 하는 부정한 존재는 그같은 왜곡된 무의식을 보여준다. 현실은 왜곡되어 있으며 꿈이야 말로 올바른 진실을 보여준다.


드라마가 화제속에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박유천이란 참으로 멋진 남자일 것이다. 그런데 왕세자라는 고귀한 신분이 덧씌워진다. 더구나 대기업의 후계자이기까지 하다. 그의 시대착오적인 모습조차 그래서 독특한 매력으로 보인다. 그의 제멋대로인 성격조차 철없는 귀여운 모습으로 비쳐진다. 그러면서도 태생적인 고귀함으로 무게가 더해진다. 때로 홍세나나 박하에게 보여주는 그의 세심한 배려는 꿈을 꾸게 만든다. 홍세나와 박하 역시 어느새 신분상승을 예고하며 매력적인 자신에 더해 꿈을 보여준다. 그에 비하면 원래 가장 잘나갔을 용태무의 지금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한가. 동정의 대상이 된다. 차라리 악역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아쉽다면 덕분에 이각의 신하 3인방이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새삼 대기업에 들어가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밑바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무언가를 하기에도 드라마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고, 그래서 결국 하는 일이란 아랫층에서 고스톱이나 치는 것이다. 마치 오브제처럼 드라마의 빈공간을 채우며 여백을 책임진다. 사물이다. 배경이다. 결국은 이각과 용태무, 홍세나와 박하의 이야기인 까닭이다. 아쉬운 것이다. 원래 기대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그래도 전형적인 구조가 본능적인 욕구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기도 하다.


개연성은 기대할 바가 못된다. 옥탑방이 궁궐로 변신하듯 환상과 마법이 존재하는 꿈의 세계다. 그러고자 한다면 그렇게 된다. 그러고자 하므로 그렇게 되고야 만다. 오락드라마다. 재미있자고 보는 것이다. 대리만족을 얻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좁고 허름한 집이 드라마에서처럼 넓고 세련된 모습으로 바뀌기를 꿈꾼다. 왕세자가 되기를. 세자빈이 되기를. 그를 위해서라면 사소한 모순이나 비약따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재미있다.


오락드라마의 본질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에 어떤 만족을 보여줄까 하는 근본적인 고민이 읽힌다. 사람들은 과연 드라마를 통해 무엇을 바라고 기대는가? 각박한 현실은 때로 비현실적인 환상과 마법에 기대고 싶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드라마는 현실 아닌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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