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적도의 남자 - 13년만에 돌아온 김선우, 이장일에 선전포고하다!

까칠부 2012. 4. 19. 08:24

선전포고다. 도발이다. 당당히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숙제를 낸다. 어디 한 번 맞춰보라. 그리고 덤벼보라. 복수가 아니다. 심판이다. 드라마가 굳이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디테일한 흐름을 따라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 순간에도 선택은 이장일(이준혁 분)에게 주어진다. 이장일이 한다.


고급스런 의상에, 세련된 스타일, 보지도 못할 고급손목시계와 시계를 차고 있는 근육질의 팔뚝, 그리고 정작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중요한 지팡이가 없다. 다른 누군가 그를 그 자리까지 데리고 와준 것도 아니다. 의심스럽다. 아직도 그는 앞이 안 보이는 것일까? 아직까지 그는 이전의 무력한 김선우(엄태웅 분) 자신인 것일까? 무엇보다 아니라면 굳이 앞을 못보는 행세까지 해가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일까? 묻어두고 있던 죄가 깨어난다.


작별을 했다. 과거의 김선우에게. 그리고 김선우와 함께하던 과거의 자신에게도. 검사가 되고 나서 이장일이 결벽에 가까운 정의감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선우가 다시 돌아왔다 했을 때 그는 진심으로 반가워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의심부터 하고 있었다. 김선우는 그토록 돌아가고 싶은 잃어버린 과거의 순수인 동시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추악한 죄다. 그래서 두려워하며 의심부터 한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김선우를 만난다. 그리고 살핀다. 어느새 다시 돌아온 그의 죄와 순수에 대해. 그의 안에서 자라난 악에 대해.


엇갈린다. 진노식(김영철 분)이 김선우의 아버지 김경필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았다. 진노식이 죽인 것이 아니었다. 진노식 자신의 손에 죽었다 여겼던 김경필이 사실은 이용배(이원종 분)가 그의 시신을 처리하는 그 순간에도 살아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김경필의 마지막 숨을 끊은 것은 진노식이 아닌 이용배 자신이었다. 짓지 않아도 되었을 죄를 짓고, 가지지 않아도 되었을 죄책감과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이용배의 아들 이장일에 의해 그의 친아들일지도 모르는 김선우는 앞을 보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서로 원수가 되어 원망하고 경계하고 증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죄는 자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진노식과 김선우는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죽인 원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버지가 죽게 된 빌미를 제공한 것은 진노식 자신이지만, 그러나 정작 아버지를 마지막에 죽게 만든 것은 이장일의 아버지 이용배였다. 김선우의 눈을 멀게한 이장일의 아버지였다. 최광춘(이재용 분)이 그 단서를 제공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벌어질 최악의 비극은 막는다. 그러나 한순간이나마 자신의 죄로 인해 아들에게 악의를 품었다는 이유로 진노식은 아버지로서 아들앞에 서지 못하게 된다. 이용배와 이장일 부자의 죄에 더해 그것이 드라마의 결말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복수가 아닌 심판이라면 진노식은 심판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복수보다 더 가혹한 심판일 것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최광춘과 최수미(임정은 분)가 열쇠가 되어준다. 그들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 모든 진실을 스스로 간직한 채 당사자들과 얽혀 있다. 최광춘에게는 김선우에 대한 의리와 진노식에 대한 원한이 있다. 진노식은 그를 죽이려 했다. 그는 김선우에게 진실을 밝히려 한다. 최수미는 아직도 이장일을 집착한다. 그를 위해 진실을 감추는 한편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 그가 몰락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녀는 김선우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최광춘도 과거 김선우에게 모든 진실을 밝히려 하고 있었다. 적도 아니고 아군도 아니다. 적이면서 또한 아군이다. 김선우가 진노식과 이장일과 얽히려 한다면 이들과도 필연적으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13년이라는 시간은 길었다. 각인이었을까? 한지원(이보영 분)은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가? 깊은 상처를 남겼다. 상처는 더욱 진한 화인이 되어 남는다. 가장 절망하던 순간이었다. 그 절망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실체없는 여운이 환상처럼 한지원에게 남는다. 우연처럼 발견한 김선우의 편지는 절망하는 가운데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는 아직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자신 또한 아직도 그를 사랑할 수 있다. 과거의 약속처럼 그녀는 증오로 앞을 보지 못하는 김선우에게 눈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녀는 김선우에게 다시 구원이 되어 줄 수 있을까? 마치 책을 읽듯 전한 진심이 두 사람 사이에 약속이 된다. 그들은 다시 만난다.


마침내 멈추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억눌렸던 감정이 흐르기 시작한다. 원망과 증오가 다시 돌아온다. 죄는 그 댓가를 치르게 된다. 발버둥친다. 죄의 댓가를 요구하는 이와 그를 거부하려는 의지 사이에. 심판인가? 복수인가? 구원을 받는가? 아니면 단지 파멸만을 바라고 마는가? 사랑은 그 모든 죄악으로부터 자신을 구해낸다. 희망의 너머에 남아 있던 것은 가장 진실한 사랑이다.


제작진이 참으로 무모하다. 이렇게 모든 진실을 처음부터 밝히고 들어가면 복수의 긴장과 쾌감이란 훨씬 덜해질 수밖에 없다. 의혹이나 불안이 없다. 처음부터 모든 진실이 드러난 채 시간의 흐름대로 상황을 따라갈 뿐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와 같은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자신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긴장과 만족을 시청자들에게 줄 수 있다. 더불어 단순히 원한만을 되갚는 복수가 아닌 인간의 죄와 악, 그리고 심판이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다가서려 한다. 이장일이 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악의로 벼려가는 모습이 드라마의 주제를 보여준다. 어쩌면 이장일이야 말로 드라마의 진정한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이준혁의 치열한 연기가 감탄을 자아낸다.


묵직한 긴장감 속에 문학의 향기를 풍기며 고전의 귀절들이 가슴을 간질인다. 김선우가 진심을 전하는 것도 책에 없는 마음의 한 귀절을 통해서다. 한지원이 그것을 깨닫는다. 마치 소설의 장면처럼 귀절이 귀에 들린다. 장면이 눈으로 들린다. 인간은 말로써 모든 것을 정의한다. 무겁다.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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