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한때 스타였다. 그것도 아주 잘나가는 스타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다. 누구도 그를 알아봐주지 않고 그를 불러주는 사람조차 없다. 당장 옥탑방 월세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배고파도 컵라면을 사먹을 돈조차 없다. 그런데도 허세를 부린다.
"표 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윤빈(김원준 분)이다. 개런티가 2천만원인 줄 알고 이천까지 갔다 온 뒤였다. 아무도 그의 노래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무대를 보아주지 않았다. 그러고서 받은 돈이 고작 20만원. 하지만 고작 단무지 안주에 소줏잔을 기울이며 비참함을 곱씹으면서도 팬을 자처하는 일숙(양정아 분) 앞에서 그는 여전히 스타를 연기하려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고 싶어하고, 그의 무대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해 공연은 표를 구하기조차 힘들다.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가?
아마 어떤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인기스타도 옛날이야기이고 어차피 희망도 보이지 않는데 이쯤에서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어떻겠는가? 하다못해 선배인 김장훈처럼 싸구려 행사라도 열심히 뛰면 좋다. 비록 오해로 가게 된 행사지만 다만 몇 십만 원짜리 행사라도 열심히 뛰면 희망은 보이지 않겠는가? 과거의 영광보다는 현실의 삶이다. 거짓된 허세보다 솔직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옳다. 어리석다. 바보같다. 한심하다. 혹은 꼴불견이다. 한물간 왕년의 스타란 이렇게까지 비참한 것인가. 비난과 조롱과 걱정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는 팬이 있다. 여전히 그를 스타로 보아주는 팬이다. 오해로 가게 된 행사였지만 그를 위해 연예인밴에 오르는 모습이 그녀에게는 그리도 설레었다. 혹시나 초라한 자기로서는 가지 못하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팬들 앞에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그를 그리며 꿈을 꾸는 듯 들떠한다. 그런데 어쩌면 마지막 팬일지 모르는 그녀 앞에서 스타가 아닌 몰락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솔직함이고 정직함인가? 누구를 위한 진실함일 것인가. 그렇게라도 오빠를 통해 위안을 얻고자 하는 일숙의 삶 또한 고단하기 이를 데 없다.
남편이 바람나서 이혼했다. 젊은 날을 다바쳐 사랑한 남편이고 정성을 다한 시부모인데 결국 불륜의 상대인 여사장의 돈을 이기지 못했다. 심지어 독기를 드러내며 약속한 양육비를 받으러 간 자리에서 남편과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여사장으로부터 경멸과 동정을 받았다. 자기 남자를 빼앗아간 여자로부터 참을 수 없는 수모와 모욕을 당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속에 겨우 받은 3백만원의 돈이 너무나 아프고 비참하다. 끝내 그녀는 결코 작지 않은 그 돈을 찢어버리고 만다. 다시는 내게 돈을 주지 말라. 그러나 아직도 친정식구들은 그녀가 남편과 잘 사는 줄 안다. 딸 민지에게도 아빠는 두바이에 돈벌러 갔다고 말한다.
가만히 하소연을 한다. 물론 친정식구들에게 들려주던 꾸며진 이야기다. 남편은 아직 자신만을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두바이로 가 있다. 차라리 그 순간에는 그렇게 믿고 싶다. 오빠가 들어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긍정해준다. 자기의 팬이니 남자보는 눈도 좋을 것이라고. 당연히 행복할 것이라고.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위로가 된다. 다름아닌 오빠인 때문이다. 여렀을 적 동경하던 오빠가 바로 앞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들어준다. 마치 꿈만 같다. 힘든 현실에서 유일하게 그녀에게 주어진 위로이고 환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더 이상 스타가 아니라 한다.
아마 스타와 팬의 관계를 이보다 더 명쾌하게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스타란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다. 그래서 별이다. 하늘의 별처럼 닿을 수 없는 꿈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로부터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위로를 얻는다. 일숙이 이제 와서 어렸을 적 쫓아다니던 왕년의 스타 윤빈에게 집착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동안 관심도 없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윤빈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가 전혀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스타인 그를 떠올린다. 팬인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그 시절처럼 마냥 동경으로 그를 바라보며 현실의 고단함을 잊는다. 과연 그녀에게 윤빈의 감춰진 진실이란 얼마나 대단한 의미가 있을까? 설사 거짓이라고 그녀가 곤란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차라리 거짓이더라도 좋다. 거짓으로 꾸며진 것이더라도 좋다. 예전 어느 여자연예인이 방송에서 그리 말했을 것이다. 성형여부를 묻는 MC의 짓궂은 질문에 '예의상'이라고. 정직하게 전혀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평범한 외모보다 외적인 힘을 빌리더라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모습쪽이 더 보기에 좋다. 진실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모습에서 얼마나 꿈을 볼 수 있고 위로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외모도 그래서 실력이 된다. 연예인같은 아름답고 멋진 외모는 그 자체로 현실을 잊는 꿈이 되고 위로가 된다. 그로부터 스타는 존재의미를 찾는다. 팬을 위해 스타가 존재한다면 그것이 스타가 존재하는 의미일 것이다.
거짓인 채로가 좋다. 진실을 감추고 있는 채로도 좋다. 여전히 윤빈은 스타여야 한다. 일숙 자신처럼 힘들고 고단한 처지여서는 안된다. 그를 동정해서는 안된다. 그를 연민해서도 안된다. 여전히 그는 동경의 대상이어야 한다. 우러름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래서 오빠다. 자기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설레고 기쁘다. 같은 집에서 산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윤빈의 허세와 연기는 그렇게 일숙에게 현실을 이기는 힘이 되어준다. 그래서 그는 스타다. 단 한 사람 자신의 팬인 일숙 앞에서 그는 스타가 된다.
스타란 어쩌면 스타를 연기하는 사람일 것이다. 대중이 바라는 스타의 모습을 연기한다. 스스로 스타의 모습이 되어 있다. 스타인 자신을 믿는다. 그렇게 여기고 만들어간다. 어쩌면 그것이 모두 거짓일지라도 그것으로도 좋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위안을 얻는다. 기쁨을 얻고 즐거움을 얻는다. 현실에서 누리지 못하는 행복을 얻게 된다. 아무리 현실은 초라하고 비참해도 그래서 팬 앞에서 스타는 여전히 스타로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기를 스타로 여겨주는 팬을 위해서 그것은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윤빈의 영락한 처지가 오히려 그것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 보여준다. 스타의 거짓과 기만이란 때로 팬을 위한 예의이고 책임이고 의무가 된다. 일숙을 위해서라도 그는 여전히 옥탑방을 잠시 스쳐지나가는 스타로 남아있어야 한다.
어쨌거나 그래서 윤빈은 스타다. 연예인이다. 여전히 그는 스타이고 연예인이다. 스타이고 연예인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일숙의 평가가 일부분 옳다. 아직도 그는 감당하지 못할 피아노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기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허세지만 꿈을 쫓는다. 거짓이지만 여전히 꿈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일숙 앞에서 자신의 꿈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거짓이라기보다는 그가 보고싶은 자신의 꿈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윤빈은 일숙 앞에 스타가 된다.
과연 윤빈이 언제까지 일숙 앞에 자신을 속일 수 있을까? 아마 일숙도 윤빈에 대해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을 지 모른다. 그렇게 대단한 스타인데 TV에 한 번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미디어를 통해 작은 화제조차 되고 있지 않다. 모를 수 없다. 단지 믿고 싶을 뿐이다. 현실의 고단함이 윤빈을 통해 잊고 있던 꿈을 꾸게 하고 있을 뿐이다. 단지 현실이란 이렇게 냉엄하구나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윤빈은 스타일 것이다. 오빠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스타일 테니까.
아마 김원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김원준은 정말 잘나가던 스타였다. 내는 앨범마다 히트를 기록했고, 그가 서는 무대마다 헤아릴 수 없는 팬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었다. 그 가운데는 일숙같은 여자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아이엄마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이 자라는 사이 김원준도 잊혀졌다. 불과 얼마전 다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그는 잊혀진 스타였다. 그 동안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물론 아무리 그래도 윤빈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최고의 스타에서 한순간에 영락한 좌절과 절망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힘든 경험이었을 것이다.
필자도 현실의 스타를 통해 위로를 얻는다. 쿨한 척 하지만 외롭고 힘들 때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보고 그의 출연한 방송을 보며 작은 기쁨을 얻는다. 잘되고 있으면 좋다. 밝은 모습이면 필자가 다 흐뭇해진다. 어두운 표정이 되어 있으면 필자 자신도 어두워진다. 그들은 다른 세계에 있다. 별처럼 빛나는 다른 세계에 머문다. 그래서 빛이 된다. 혹은 그것도 거짓이 아닐까? 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반짝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인공위성이든. 아니면 길잃은 불빛이든.
왕년의 스타 - 아니 여전히 일숙에게 스타인 윤빈과 팬 일숙의 관계를 지켜보게 된다. 윤빈의 비참함과 일숙의 고단함을 통해서. 윤빈의 거짓과 기만이 친정식구에 대한 일숙의 거짓과 기만과 이어진다. 때로 사람들은 남을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진실이란. 그리고 현실이란.
그저 웃자는 캐릭터는 아닐 것이다. 웃음 뒤에는 진한 페이소스가 있다. 일상의 깊은 감정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 필자는 스타를 좋아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타를 쫓는다. 스타를 연기한다. 기만이지만 모두를 위한 기믹이다. 윤빈의 처절함은 그를 위한 치열함이다. 느낀다. 감동한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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