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랑비 - 이어지지만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 과거가 사족이 되다.

까칠부 2012. 5. 1. 09:31

아무리 생각해도 드라마 초반 나왔던 70년대 부모세대의 이야기란 사족이었던 것 같다. 불필요하다. 오히려 거슬린다. 확실하게 현대와 대비를 이루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관되게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이야기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도 어렵다.


아무튼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탓에 33년 전의 서인하가 자꾸 지금의 서준(장근석 분)에게 투영된다. 김윤희 역시 마찬가지로 지금의 정하나(윤아 분)의 모습에서 자꾸 그 모습을 찾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 또다른 서인하(정진영 분)과 김윤희(이미숙 분)가 있다. 물론 의도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과거의 서인하와 김윤희로부터 이어진 그들의 자식들인 서준과 정하나의 사랑과, 그리고 서로 엇갈린 채 33년만에 다시 만난 서인하와 김윤희의 사랑. 과거로부터 나뉘어진 시간이 그렇게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간을 만든다.


하지만 과거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초반 4회의 분량은 충분히 많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흐른 시간이 벌써 33년이다. 연속성이 없다. 같은 얼굴임에도 서준과 정하나에게서는 서인하와 김윤희를 찾아보기 힘들고, 그렇다고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버린 지금의 서인하와 김윤희에게서 과거의 모습을 찾기란 더 힘들다. 별개의 사랑이다. 별개의 이야기다. 다만 과거에 그들의 접점이 있었다. 그런 정도이면 좋았을 것을 지나치게 비중을 둔 과거의 이야기들이 자꾸 현재의 이야기에 간섭하려 한다. 현재의 이야기가 갖는 독립된 구조를 해친다. 굳이 과거의 이야기를 그렇게 큰 비중으로 지금에까지 영향이 남도록 배치할 필요가 있었는가.


회상 정도라면 좋았을 것이다. 우연히 젊은 남녀가 만났다. 그리고 비슷한 무렵 나이든 남녀가 우연히 서로 마주쳤다. 그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과거의 아름다우면서도 비감한 이야기에서 비롯된 운명들이 서로 엇갈린다. 서준의 한과 정하나의 동경, 그러면서도 서인하의 후회와 김윤희의 미련. 이미 과거의 사랑이 그토록 슬프고 아름다웠는데 이제 와서 서로 엇갈린 사연을 고백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다. 과거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처럼 해야 한다. 한 마디로 과거의 이야기가 과거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망령처럼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재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다.


이야기는 재미있다. 서로 우연히 만나 좋아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서로의 부모가 사실은 첫사랑이더라. 그로 인해 남자는 상처투성이의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었고, 여자는 동경속에 사랑에 대한 환상을 키워왔다. 사랑도 하기 전에 사랑으로부터 상처입은 남자의 비감한 사랑과 사랑에 대한 환상을 품은 여자의 순수한 사랑. 하기는 그 대비조차 불분명하다. 아버지의 첫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으며 자랐다고 하는데 그런 것치고는 정하나를 사랑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정상적이다. 그리고 정하나의 사랑에 대한 동경이나 환상도 그다지 제대로 묘사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렇더라도 젊은 남녀가 만나 투닥거리며 사랑하는 이야기는 항상 즐겁다. 그런데 그것이 과거의 질척거리는 사랑에 구애된다면 즐거움은 반감되고 말 것이다.


과거의 첫사랑이 오해와 엇갈림 속에 서로 다른 삶을 살다가 33년만에 다시 만난다.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다시 만나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워간다. 하지만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이미 서로 결혼을 했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한 사람은 이혼을 했고 한 사람은 사별을 했다. 아이들이 서로 사랑한다. 헤어진 아내가 여전히 자신에 집착한다. 더구나 학교 동문이다. 알고 지내던 사이다. 33년 해묵은 감정이 서로 엇갈린다. 지난 33년의 시간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차라리 서준과 정하나의 이야기의 비중을 줄이고 이들의 이야기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이 대비되지 않았을까?


정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장년의 서인하와 김윤희의 이야기의 비중을 줄였어도 좋았을 것이다. 전적으로 서준과 정하나의 지금의 사랑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그렇다면 대비가 된다. 연속성을 갖는다. 즉 하나의 시간을 두 개의 시간으로 쪼개려던 시도는 좋았지만 그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 탓이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셋 중 하나는 확실히 죽였어야 했다. 이어지는 건 두 개로도 좋다. 하나는 곁가지다. 오히려 집중을 흐트린다. 서준과 정하나의 이야기에도, 서인하와 김윤희의 이야기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지금처럼. 


당연히 덕분에 서준과 정하나의 이야기에도 디테일이 떨어진다. 말했듯 아버지의 첫사랑에 상처입은 서준이 없다. 어머니의 첫사랑에 대해 동경하던 정하나도 없다. 그들이 어떻게 만나고 사랑하게 되었는가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하기는 사랑이란 재해와도 같다.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밀어닥쳐 이제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흐트러 버린다. 그렇더라도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솔직하고, 누군가는 거부하고, 누군가는 비틀어버린다. 그러면 서준과 정하나는? 그들 앞에 부모의 사랑이라는 장애마저 생겨나 버렸다.


서인하와 김윤희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애절한 것은 아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간절한 것은 알겠는데 그것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와닿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 사이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서인하의 전처 백혜정이다. 그녀의 일그러진 애정과 집착, 그리고 변질된 독기와 악의가 그들 사이의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거슬렸던 이유다. 그렇게 서인하와 김윤희의 관계마저 백혜정이라는 외적 요인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불안하다.


시간의 거리를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굳이 세 개의 이야기를 모두 살리려 한다면 시간의 간격을 줄여 이야기의 거리를 좁힌다. 아마 서준과 정하나는 10대일 것이다. 아직 인격적으로 완성되어 있지 않다. 그런 만큼 지금보다 부모이 과거에 더 구애된다. 부모세대의 감정 또한 보이는 거리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굳이 디테일을 더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디테일을 갖는다. 백혜정의 독기와 악의 역시 보다 정당성을 갖는다. 이도저도 아닌 것이 문제다. 각각은 참으로 좋은 소재이고 흥미로운 내용들인데 그러나 전체로 보았을 때는 서로 섞여서 흐리다.


어쩌면 아직까지 초반 4회의 과거이야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아직 어느 한 커플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대사들도 문제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지. 하지만 그것이 또한 순정의 코드라는 것이다. 사랑은 유치하다. 아쉽다. 안타까운 의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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