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한 주 늦은 본선, 공익캠페인의 들러리를 서다.

까칠부 2012. 6. 4. 07:56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이번주 본선의 내용이 지난주 방송되었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보다 내용을 압축해서 흥미를 유도하고, 고조된 분위기를 본선으로 바로 이어간다. 하지만 너무 길었고 불필요한 장면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정작 본선이라고 하면서 예선에서 거의 보여졌던 내용들이 아니던가. 사족처럼 여겨졌다.

 

차라리 본선이 시작되기 전 전현무가 드디어 완성된 시제품을 들고 직접 제과점을 찾아가는 모습이 흥미를 자아내고 있었다. 전현무가 발명한 칼을 신기해하며 어디서 파는가 묻는 장면에서는 자신이 발명한 것이 아님에도 어떤 짜릿한 쾌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드디어 그 마분지 칼이 금속으로 형태를 갖추고 사람들에게 선을 보이며 평가를 받는구나. 더구나 예선을 보았으니까.

 

윤형빈의 발명품도 그랬다면 어땠을까?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발명품을 알리고 제품화에 대한 의견을 취합한다. 사람들이 바라는 부분들과 제품화되었을 경우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까지 더해져 진행적 서사를 갖추게 된다. 어떤 일련의 연속선상에 지금 보이는 모습들이 존재하게 된다. 이제까지의 과정을 납득하고 앞으로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재미다. 예선에서의 발명품이 이런 과정을 거쳐 이런 평가를 받는구나.

 

더 나아가 그렇게 모인 예비구매자들을 일반인심사위원으로 참여토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한정하고 발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발명품을 직접 홍보케 함으로써 구매자를 모은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구매자를 대상으로 다시 한 번 집단으로 제품홍보를 함으로써 그 안에서 다시 자기만의 구매자를 확보한다. 필경 누군가는 구매자를 빼앗길 테고, 누군가는 구매자를 오히려 빼앗아 오게 될 터다. 그 치열함도 한 재미가 된다. 아니더라도 최소한 예선과 본선, 그리고 결선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을 취함으로써 차별성을 꾀하는 것이 옳았다. 너무 안이했다.

 

지난번에도 말했듯 멤버들에게 각자 하나씩 발명품을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도 괜찮았을 것이다. 단순히 진행자나 방청객으로서 객석에 앉아 구경하는 것이 아닌 직접 나서서 제품화의 아이디어도 내고 구매자를 확보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명색이 그래도 <남자의 자격>의 고정멤버들 아니던가. 주인이다. 주인이 자리를 비우고 손님에게 양보하는 것도 어지간히 큰 결례다. 더구나 주인으로써 맞이해야 하는 손님이란 일반인 출연자만이 아니다. 시청자도 있다. 많은 시청자들이 멤버들이 보여주는 웃음을 기대하며 프로그램을 본다.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시청자에 대한 너무나 당연한 의무다. 그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결국 같은 심사위원이, 같은 발명자의 발명품을 심사하는 동일한 포맷의 반복인 셈이다. 그나마 예선에 비해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을 보인 것인 전현무의 '밉상칼'이 거의 전부였을 것이다. 이미 한 번 본 발명품들을, 전혀 달라지지 않은 출연자들이, 여전한 심사위원들에 의해 심사를 받는다. 하다못해 일반인으로 이루어진 판정단조차 그다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능이 아니라 어디 정부에서 위촉하여 진행되는 공익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인상이었다. 이경규의 고군분투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아마 MC로서만 나섰어도 이보다는 더 큰 재미를 주었을 것이다.

 

어쩌면 최근 <남자의 자격>이 보이고 있는 부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미션이었을 것이다.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는 미션이었다. 더 재미있을 수도 있었던 미션이었다. 하지만 정작 멤버들이 없었고 편집이 없었다. 미션에 대한 자신감이었을까? 그동안 공익적인 의의를 말하니 그에 도취된 것일까? 성의조차 없었다. 단지 심사하고 시상만 할 것이라면 굳이 <남자의 자격>이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굳이 예능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의 시간과 기회를 할애할 필요가 없다. 공익캠페인만으로 충분하다. 시청자가 <남자의 자격>을 보는 이유가 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아마 일상에서의 쓰임만 놓고 보자면 박진웅씨의 '서~요 우산'이 더 요긴했을 것이다. 항상 느끼는 불편이다. 그렇다고 잠깐 들어갔다 나올 뿐인데 다른 우산들과 함께 섞어 놓을 수도 없고, 더구나 대중교통과 같은 우산을 따로 보관할 장소조차 없는 경우라면 더 난감하다. 그러다가 우산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사람을 살리겠다고 하는 숭고한 의지와 비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쓰임은 '섯~다 우산'이었고, 의미는 소방관 박종복씨의 '구조용 투척기'였다.

 

이와 같은 경연에서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설마 윤형빈의 '이케이케'가 기술적으로 김종학씨의 'face CAPTCHA'보다 더 나아서 8방까지 이기고 올라갔던 것이었겠는가? 공개된 자리이기에 개인의 이기보다는 공적인 가치에 보다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황윤하, 권민재, 전효준씨의 'H+Bag'이 반드시 더 훌륭해서 안은정씨의 '클로즈 스태커'를 이긴 것은 아니었듯 말이다. 눈여겨 보고 있는 발명품이었다. 하루빨리 상품화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H+Bag'도 여러모로 훌륭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였다. 무엇보다 예선보다 진화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그와 같은 당연한 결과를 기대와 흥분으로 바꾸지 못한 구성과 연출의 문제일 것이다. 더 조이고 더 누르고 더 강하게 터뜨린다. 담백해서 좋은 것이 있고 때로는 자극적이어서 좋은 것이 있다. 담백하더라도 자극적일 수 있다. <남자의 자격>이 잘나가던 때 그것이 가능했다. 멤버들 자신이 그것이 가능한 멤버들이었다. 제작진의 역량의 한계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어떻게 얼마나 맛있게 만드는가가 바로 요리사의 실력이다. 같은 미션을 가지고도 어떻게 얼마나 재미있게 만드는가가 제작진의 역량이다. 멤버들의 책임을 묻기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없었다. 전적으로 제작진에 의해서 그 모든 책임이 지워진다. 윤형빈더러 웃기지 않는다 지적하기 이전에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스스로 면밀히 반성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조금더 과감했어야 했다. 독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냉정했어야 했다. 편집하는 자신이 재미있다고 끝이 아니다. 시청자가 재미있어야 한다. 아깝다고 다 집어넣는 것은 아마추어나 하는 것이다. 멤버들에 대해서도 조금 더 믿고 의지해 보면 어떨까? 이제는 얼굴 보기도 힘들어졌다. 무언가 이야기거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여러가지로 많이 어렵다. 안타깝다.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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