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수줍을 만큼 설렐 수 있다는 것, 그 동안의 문제를 다시 한 번 깨닫다.

까칠부 2012. 6. 11. 08:15

정말 안타까운 부분이다. 오랜만에 재미있었다. 흠뻑 빠져들어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최근 필자는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한 번도 이와 같은 재미를 느껴보지 못했는가? 물론 가장 재미있을 때 <남자의 자격>은 항상 지금과 같은 재미를 주고 있었다.

 

양준혁과 김국진의 소개팅이 서로 달랐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국진의 소개팅은 <남자의 자격>을 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오가다 마주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마저 김국진의 소개팅을 응원하며 훈수의 말을 건넨다. 아니 전부터도 김국진과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하나같이 하던 말이 김국진의 결혼에 대해서였다. 이쯤되면 거의 국민적 관심사다.

 

그동안 쌓아온 이야기의 두께가 다른 것이다. 한참을 이혼의 아이콘이었다. 돌싱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를 만남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한때 연예계를 통틀어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김국진이었다. 이미지마저 호감이었기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김국진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같은 대중의 호감은 김국진이 겪었던 불행들에 대해 동정과 더불어 그동안의 실패와 좌절을 이기고 다시 행복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물론 여기에는 <라디오스타> 이후 꾸준히 김국진의 이혼을 소재로 삼으며 김국진의 결혼을 관심사로 부각시켜 온 동료들의 노력도 크게 한 몫 해 하고 있었다. 특히 <남자의 자격>의 경우 형제와도 같은 일곱 남자를 전면에 내세우며 오지랖넓게도 김국진의 결혼을 <남자의 자격>의 부제목이기도 한 '남자가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의 마지막 미션으로 방송하겠다 공공연히 밝혀 오기도 했었다. 큰형 이경규와 동갑내기 김태원과 동생인 이윤석과 전현무 등과 스태프들이 그같은 시도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김국진의 대중적 인지도와 호감에 더해 그같은 노력들이 지금에 와서 김국진의 결혼에 대한 호의적 관심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 김국진이 소개팅을 하게 됐다.

 

하기는 최근 몇 달 간 결방이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최초이자 최고의 리얼버라이어티로 손꼽히는 <무한도전>에서도 마지막으로 방송했던 것이 다름아닌 멤버 노홍철과 하하와의 거창하지만 시시한 대결이었었다. 누가 형인가? 동갑내기다. 동갑내기이기에 무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묘한 갈등과 긴장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면 실제 상황이든 그와 같은 갈등과 긴장의 누적 속에 관성에 의한 기대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아예 <무한도전> 차원에서 자리를 펴고 마음껏 겨루도록 마련한 것이 바로 노홍철과 하하의 대결이었다. 고작해야 동갑내기끼리의 흔히 있는 신경전따위에 사람들이 그토록 관심을 가지고 호응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남자의 자격>이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었을 것이다. 모르겠다. 멤버들을 믿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작가로써 PD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지나쳤던 것이었는지. 그러나 리얼버라이어티의 '리얼'이란 작가로부터의 '리얼'이다. 작위적인 설정이나 연출을 최소화한다. 그럼으로써 출연자들의 자연스런 실제의 말과 행동들을 화면에 담아낸다. 대신 출연자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무대와 나온 결과물을 통해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편집하는 것은 PD와 작가 등 제작진이 책임진다.

 

리얼버라이어티에는 바로 그와 같은 전제가 있다. 지금 보여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실제 상황이다. 실제 그같은 상황에서의 출연자들의 그대로의 날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설사 인위적으로 설정된 캐릭터라 할 지라도 그 순간 그의 모든 말이나 행동은 계산되거나 짜여진 것이 아닌 개인의 출동적이고 돌발적인 반응에 따른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가운데 대본논란이 없었던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이유와 같다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대본이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대중의 기대가 대본에 대한 의혹으로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리얼버라이어티라고 하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우고서도 멤버들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단지 미션만을 보여주려 한다.

 

미션은 결코 누적되지 않는다. 하나의 미션은 미션으로서만 완결될 뿐이다. 그런 가운데 전혀 어떤 이야기도 누적되지 않는다. 전현무와 양준혁에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캐릭터가 없는 이유와 같다. 이윤석 역시 그동안 누적된 캐릭터가 있었는데 어느새 흔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희미해져 있다. 당연히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드무니까. 직접 적극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여 자신을 드러낸 것이 매우 드물다. 그러니 누적된 서사도, 서사에 의한 캐릭터도 희미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프로그램 외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을 안이하게 받아들여 쓰고 있을 뿐이다. 밉상 전현무는 원래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밉상이 되었을 뿐 <남자의 자격>과는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

 

흥미가 사라진다. 흥미란 과거의 체험에 대한 미래의 기대다. 아무런 기대도 없으면 흥미도 없다. 아무런 의미있는 체험이 없다면 기대 또한 없다. 다음에 이경규나 김태원이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 과연 어떻게 기대하는가? 기대가 없는데 어찌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지만 큰형이자 동갑내기 친구로서 이경규와 김태원이 자신들을 정의했을 때 한참 소개팅중인 김국진에 대한 그들의 행동에 대한 어떤 예상과 기대를 가져볼 수 있었다. 그동안 이경규와 김태원이 보여온 모습들이 있었기에 가볍고 장난스럽지만 진심어린 배려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였다.

 

동생이었다. 친구였다. 그리고 형이었다. 굳이 피를 나눈 친형제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함께 방송해 온 의리라는 것이 있다. 누적된 서사나 관계 없이도 그같은 선의는 당연하게 그려진다. 걱정되고, 마음쓰이고, 그러면서도 놀려먹고 싶고, 하지만 아주 잠시나마 김국진의 천적역할을 맡았던 전현무와 마찬가지로 <남자의 자격>만의 누적된 서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디오스타>나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는 <남자의 자격>만의 고유성이 있다. 그것을 만드는 것이 대본이고 연출일 텐데도 그동안 얼마나 직무를 방기해 왔는가. 지난주 '남자, 그리고 발명왕'미션은 더구나 출연자들을 아예 들러리로 주변으로 내쫓아 버렸다.

 

얼마나 좋은가? 설레인다는 것은 아직 열정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수줍다는 것은 자신도 감당 못할 정도의 열정이 가슴에 남아 있다는 뜻이다. 김국진도 아직 죽지 않았다. 호감이 없다면 그렇게 수줍어 하지도 않는다. 설레임이나 기대가 없다면 그렇게 어색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굳이 권지원씨라서가 아니라 그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다. 더구나 김국진 앞에 나타난 권지원씨는 대단한 미인이기도 했다. 성격마저 좋아서 철저히 김국진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며 소개팅을 이끌고 있었다.

 

감탄한 부분이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김국진이 이야기하는데 진지하게 집중해 듣고 있는 권지원씨가 보였다. 하필 그 장면에서만 그런 표정을 지었는데 그것을 제작진이 편집한 것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바로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주고, 세심하게 배려하여 말을 꺼낸다. 분위기가 어색하면 그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도 권지원씨가 초반 많이 담당했다. 미인에 능력도 있으면서 성격까지 좋다. 진심으로 방송용이 아닌 실제의 두 사람이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사랑에는 때가 없다. 사랑하는 그 순간이 바로 때다. 사랑이 영원한 이유다. 지금은 영원히 지금이므로. 나이가 많다고. 벌써 나이가 어떻다고. 중요한 것은 아직 살아있는가 하는 것이고, 아직 가슴에 열정이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대로 포기하고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기엔 김국진 자신도 아직 50살도 안 되지 않았는가. 어쩌면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보다 더 길 수도 있다. 굳이 다가오는 인연마저 거부하기에는 한 순간 한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소중하다. 김국진이 아니더라도 외로운 이라면 한 번 아직 남아 있는 열정을 불태워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늘은 너무 맑았다. TV화면으로 바람마저 불어오는 것 같았다. 물비린내가 물씬 풍긴다. 풀비린내가 코를 진동한다. 남이섬까지 가는 기차여행은 여유로웠고 남이섬의 풍광은 아름다움 자체였다. 청설모가 반갑다. 사랑하기에 좋은 시절이다. 날이 더워지고 있다. 이미 식었던 가슴속 열정도 다시금 달구어진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 누군가와. 마음이 따뜻한 누군가와 어디론가 당장 떠나고 싶다. 말이 다정한 이와 그다지 멀지 않은 그곳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리움이다. 부러움이다.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었다. <남자의 자격>을 보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익숙하지만 어색했다. 어색하지만 익숙했다. 이런 것이 바로 <남자의 자격>이었을 텐데. PD의 분발을 기대하는 이유다. 멤버 없이 포맷과 주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남자의 자격>은 리얼버라이어티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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