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한국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 고전소설 <흥부전>을 보면 조선시대 재산상속의 한 유형을 볼 수 있다. 300마지기의 땅 가운데 놀부와 흥부가 각각 100마지기씩을 나누어 갖고, 대신 장남으로서 쓰일 곳이 많으니 100마지기를 더 갖는다.
사실 조선전기까지만 하더라도 우리가 흔히 아는 장자상속의 전통이라는 것은 우리사회에는 그다지 없었다. 자식이란 장성하면 당연히 분가하여 일가를 이루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재산 역시 자식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지고 있었다. 장자란 단지 집안을 잇고 제사를 잇는 상징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에 따른 비용은 따로 계산되어 장자의 몫에 얹혀지고 있었다. <흥부전>에서 놀부와 흥부가 각각 재산을 물려받는 방식이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정이 달라진 것은 조선중기 이후 당쟁이 격화되면서 조정에서의 주도권싸움이 곧 문벌간의 힘겨루기로 격화되어가면서부터였다. 유럽에서도 중세초기 분할상속과 장자상속이 공존하고 있었다. 물론 살아남은 것은 다름아닌 장자상속이었다. 10의 영지가 있어도 아들의 숫자에 따라 각각 2씩, 3씩 나누어야 하는 집안과 5의 영지가 있어도 그것이 온전히 장자에게 물려지는 가문과의 경쟁에서 후자가 유리한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안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능력있는 이를 공부시키고 조정에 출사하도록 뒤를 밀어줌으로써 가문의 지위와 영향력을 보전하거나 확대한다. 그 수혜는 당연히 집안 전체가 입는다.
간단히 아주 최근까지 그다지 대단할 것 없는 집안에서 신분상승을 노리고 장남에게 모든 역량을 집중하던 것을 떠올려 보면 되겠다. 모든 자식들에게 골고루 평균적인 수준의 교육을 받도록 하기보다 한 사람이라도 고등교육을 받도록 배려함으로써 그를 통해 나머지 가족 모두를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가족 가운데 한 사람만 성공하면 나머지 모두가 그 혜택을 입는 문화란 그로부터 출발했다. 당연히 그같은 배경 위에서 집안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성공한 장남은 집안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도록 의무지워져 있었다. 극중 남편 박종호(박선우 분)가 집안에 대한 맹목적인 책임의식을 보이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장남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남편 박종호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흥부전>에서도 놀부와 흥부의 아버지는 놀부에게 장남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도록 무려 100마지기나 되는 재산을 따로 챙겨주고 있었다. 박종호의 할아버지도 그래서 박종호의 몫으로 땅을 남겨주고 있었다. 조선중기 이후 장자상속이 일반화되면서 문중의 장자들은 집안에 대한 전적인 책임 만큼이나 집안의 모든 것을 상속하고 있었다. 심지어 가장으로서 가문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구성원에 대한 사적인 제제를 가할 수 있는 권리마저 주어지고 있었다. 아마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집안에 형제 가운데 다툼이 일거나 하면 무조건 큰아들의 편을 들던 오래전 부모나 조부모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될 것이다.
의무는 권리에 비례한다. 책임 역시 누리는 혜택에 비례하여 주어진다. 최소한 가족들의 생계를 보살필 책임을 지우려면 그만한 바탕을 먼저 마련해주어야 한다. 최소한 큰아들의 명의로 된 땅을 임의로 팔아 작은아들을 위해 쓰는 일따위 없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어머니 개인의 재산이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것을 팔아 작은아들을 도우려 할 때는 큰아들의 동의를 구하고서 그리 해야 한다. 며느리 서은희(박주희 분)의 입장에서도 차라리 그런 정도 큰아들이라고 배려를 해주었다면 큰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족의 일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큰아들이니까 모든 것을 책임지라. 그것은 일방적인 희생만을 요구하는 것밖에 안된다. 박종호야 아들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단지 박종호와 결혼했을 뿐인 서은희에게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조리한 현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큰아들이니까 모두 물려받는다고 하면 동의할 사람이 그다지 없을 것이다. 그래서다. 더 이상 큰아들이니까 모든 것을 물려받고 대신 모든 책임을 지우는 시대는 지났다. 큰아들이란 여러 아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는 뜻으로, 비록 집안을 잇고 제사를 잇는 책임이야 다르지 않더라도 그 이상의 책임까지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재산도 권리도 나누어야 한다면 책임도 함께 나누는 것이 옳다. 큰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안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가?
과도기적인 폐해일 것이다. <흥부전>이 균분상속에서 장자상속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혼란을 담고 있다면, 드라마는 장자상속에서 균분상속으로, 집안에서 곧 내 가족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현실을 담고 있을 것이다. 지나고 나면 장자란 큰 의미가 없다. 각자가 따로 일가를 나누고 재산도 알아서 나누어 모으게 되는데 그 안에서 장자가 갖는 책임이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보다 더 엄격하게 장자상속의 전통을 지켰던 유럽이 바로 그러하다. 지금 그런 문제로 혼란스런 경우란 몇몇 강한 전통이 남아 있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입는 엉뚱한 피해는 문제가 된다. 드라마가 바로 그런 예일 것이다. 장자라고 주어지는 것은 없고 모두가 장자의 책임에만 기대려 한다.
말하자면 아직 전통사회의 잔재가 남아 있는 부작용이라 할 것이다. 현대사회는 개인을 전제한다. 사유재산이란 개인의 배타적 권리를 전제하여 성립한다. 부부관계라는 것도 개인과 개인의 약속이다. 물론 그 가운데 서로의 가족에 대한 헌신의 의무도 포함되기는 하겠지만, 그 이전에 서로 약속한 당사자에 대한 의무가 가장 우선한다 할 것이다. 동의하지 않은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만일 그런다면 계약은 종료된다. 헤어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과거처럼 여성이라고 일방적으로 남성에 종속된 것이 아니다. 거꾸로 남성이라고 여성을 일방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마 드라마를 보면서도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증거일 것이다. 같은 장자의 입장인데도 도무지 터무니없을 정도로 답답하게만 여겨지는 것은 세월이 많이 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요즘에는 장남이라고 모두가 그와 같은 과도한 책임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적당히 영악하고 적당히 이기적이다. 그렇게 나아간다. 단지 아직 우리 사회의 일각에 남아 있는 갈등의 요인들을 드라마를 통해 부각시켜 보여줄 뿐이다. 물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말했듯 아직은 과도기다.
더 이상 장자라고 모든 것을 상속받지는 않는다. 집안에 대한 모든 권리를 전적으로 보장받지도 못한다. 과거처럼 장자라고 해서 모든 기회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모든 아들이 같다. 아들과 딸도 점차 같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장자가 져야 하는 의무도 같다. 최소한 아들에게 돌아가야 할 재산 정도는 지켜주고 그에 대한 의무를 주장해도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더불어 장사를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배려도 반복되면 권리가 된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서비스차원에서 베푼 배려였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마음써준다고 고마워하던 것이 이제는 당연히 해주지 않는다 화내는 이유가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하다. 큰아들이 오히려 다른 형제들을 잘못 길들였을 가능성을 생각케 되는 이유다. 어머니의 잘못이기도 하다. 잘못 키웠다. 그보다는 장남에 대해 잘못 이해했다. 아들에게 돌아가야 할 재산을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멋대로 팔아치운 것이 그것을 보여준다.
손님은 왕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장남이 가족의 호주머니인 것은 아니다. 장남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라고 그의 것이 나의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당연하지만 때로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 전통사회에서였다면 장남으로서 훌륭하다고 칭찬을 들었을 테지만.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글이 상당히 딱딱해졌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더 억울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당연한 원칙에 대한 것이다. 어째서 장남이 모든 책임을 지게 되었고, 그러한 책임 뒤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지금은 무엇이 크게 달라졌는가? 현재를 이야기한다. 흥미롭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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