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 시어머니와 세 시누이, 그리고 며느리, 여자들의 싸움이 시작되다.

까칠부 2012. 6. 11. 09:59

용서해야 한다. 하지만 용서할 수 없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 지금 방귀남(유준상 분)의 머릿속을 헝클고 있는 고민이 아닐까? 그로 인해 자신이 버려졌다. 그로 인해 자신이 가족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믿고 지내온 30년의 시간이 떠오른다. 어찌 용서하겠는가?

 

하지만 작은어머니다. 더구나 고의도 아니었다. 실수였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여성에게 있어 유산이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고 고통이었을 테니까. 자신을 잃어버리고도 작은어머니는 자신을 찾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잃어버린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 왔었다. 설사 고의로 그랬다 하더라도 작은 어머니인데 어떻게 하겠는가? 그동안 작은 어머니를 믿고 의지하고 고마워해왔던 다른 가족들도 있다. 다른 가족들을 향한 작은 어머니의 정성은 분명 진심이었다.

 

용서할 수 없는 죄란 대개 관념 속에서만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게 되면 용서하지 못할 죄란 없다. 물론 용서할 수 있는 죄라는 것도 없다. 그 미묘함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다. 서로 이해하되 그러나 이해가에 더욱 용서할 수 없다. 서로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그 이해할 수 없는 부분으로 다시 서로를 용서할 수 있다. 그 모순된 경계야 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다. 그 경계를 넘어섰을 때 사람은 사람이 아니게 된다. 방귀남이 고민하는 이유다.

 

남이면 차라리 고민도 않는다. 다른 누군가의 일이더라도 마찬가지다. 내 일이기에 용서할 수 있다. 내 일이기에 더욱 용서할 수 없다. 가족이기에 용서를 생각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음을 죄스러워한다. 누군가와 진정 우리라 말할 수 있는가 판단을 내리고자 한다면 고민해 보면 된다. 용서할 수 있는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혹시 미안함으로 여겨지는가.

 

가족이기에 또한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걱정한다는 것. 누군가를 걱정하고 염려한다는 것. 조언해주고 바로잡아준다. 그러나 과연 당사자에게는 그것을 스스로 고치고 바로잡을 능력이 안 되는 것일까? 그는 어리석고 무능해서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리 말하고 행하는 것일까? 과연 엄청애(윤여정 분)는 딸 방일숙(양정아 분)을 사랑해서 걱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시해서 염려하는 것일까? 품안의 자식이라지만 어느새 방일숙도 어른이 되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낳아 기르고 있다. 언제까지 엄마는 자식을 걱정만 해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방일숙이 겪고 있는 불행의 이유일 것이다. 조금 더 당장했으면 좋았다. 조금 더 자신을 가지고 대했으면 좋았다. 방일숙이 전남편 남남구와 결혼하게 되는 과정도 드라마에서 묘사되기에 연극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그의 모습에 이끌렸기 때문이었다. 윤빈(김원준 분)을 열광적으로 따라다니던 모습과도 거의 일치한다. 자기 아닌 다른 곳에서 만족을 찾으려 한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꿈을 통해 성취를 얻으려 한다. 의존적이고 의타적이다. 그런 모습이 남남구 자신에게도 확신을 주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기가 비굴하면 주위에서도 그를 업수이 여기게 된다.

 

그런 점에서 윤빈과의 만남은 방일숙에게도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며 기회가 되어 줄 것이다. 다행히 윤빈은 한때 그토록 좋아해서 따라다니던 그녀의 아이돌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녀가 가장 힘들고 고단할 때 그는 다시 꿈이 되어 그녀의 앞에 나타나 주었다. 그리고 역시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삶에 지친 초라한 모습의 윤빈의 옆에서 그와 같은 꿈을 공유하게 된다. 비록 그녀 자신의 꿈은 아니지만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비로소 홀로 설 수 있게 된다.

 

필자가 방일숙과 윤빈의 로맨스를 그다지 탐탁치 않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미 홀로 서게 되었는데 굳이 남자에게 기댈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래도 한때 대스타였던 윤빈과 단지 학창시절 그의 열광적인 팬이었던 이혼녀인 방일숙의 결혼이 의미하는 바란 통념을 쫓을 수밖에 없다. 파트너로서도 좋다. 윤빈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써 윤빈의 곁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모습이면 좋다. 비로소 그녀는 어른이 된다.

 

긴 머리에 대한 환상일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조윤희는 짧은 머리가 더 어울린다. 극중 방이숙(조윤희 분) 역시 짧은 머리가 더 매력적이다. 그런데 굳이 방이숙은 긴 머리를 하고 그런 방이숙의 모습에 천재용(이희준 분)은 새삼 다시 반하고 만다.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를 그래서 다시 발견하게 된다. 굳이 통념을 거스르지 않는다. 일반의 상식을 거스르지 않으며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한다. 쉽지 않다. 다른 이의 의지에 편승해 자신의 의지를 전한다는 것은. 전형적이기에 마음이 놓이고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풍부한 개성을 발휘한다. 천재용과 방이숙 커플이 드라마 안의 또다른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다.

 

결국 방말숙(오연서 분)도 사랑의 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자신이 가장 진실해질 수 있는 사랑 앞에 자기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만다. 마치 알몸으로 선 듯 차세광(강민혁 분) 앞에 선 그녀의 손끝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린다. 더 이상 버릴 것도 물러설 곳도 없는 절박함이 소녀의 수줍음으로 다가온다. 그런데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강심장일까? 진실보다 강한 호소는 없다. 순수보다 더한 진실 또한 없다. 처음으로 방말숙이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한 꺼풀을 벗었다.

 

막내 작은어머니 고옥(심이영 분)의 사정도 그다지 순탄치는 않다. 집의 크기부터가 범상치 않다. 더구나 사모님이라 불리우고 있었다. 그런데 딸을 외면한다. 없는 자식이라 부정한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딸이 아이를 임신했다는데도 전혀 돌아보려 하지 않는 것일까? 아내를 위해 굳이 모르는 길을 찾아 아내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고, 매몰찬 말투에도 간절히 사정하는 방정배(김상호 분)의 모습이 그래서 눈물겹다. 고옥이 더욱 방정배에게 집착하는 이유일 것이다. 어머니에게마저 부정당한 그녀에게 가족이란 방정배 뿐일 것이므로. 온전히 방정배만이 그녀의 가족이다.

 

문제라면 도대체 엄청애와 고옥의 친정어머니가 동갑이라면 고옥의 나이는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방장수(장용 분)와 방정배의 나이차이가 그렇게 크게 나는 것 같지가 않다. 불가사의한 로맨스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행복하다니 되었다. 고옥은 방정배를 남편으로서 믿고 의지하며, 방정배 역시 고옥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 한다. 아들도 머리는 나쁘지만 행실도 바르고 성품도 곧다. 다만 고옥이 진정한 행복과 안정을 얻자면 어머니와의 일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송수진(박수진 분)과 규현(강동호 분)의 전약혼녀가 교차된다. 차윤희(김남주 분)와 방이숙이 그래서 비교된다. 이미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친밀한 사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차윤희는 방귀남의 아내이며 방이숙은 아직 규현과 아무 사이도 아니다. 그것이 문제다. 이미 전약혼녀와의 그동안 쌓여 온 시간들이 있는데 과연 그 안으로 방이숙 자신이 무리없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여전히 규현의 주위에는 이전 약혼녀와의 흔적들이 적잖이 남아 있을 것이다. 때로 저처럼 직접 나타나 둘 사이에 개입하려 들지도 모른다.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방이숙의 열등감이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 물러나게끔 만든다. 차윤희는 오히려 송수진으로 하여금 스스로 물러나도록 만들었다. 아니 차윤희의 힘이 아니었다. 차윤희조차 병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송수진에 대한 열등감에 질투의 감정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정리한 것이 바로 방귀남이다. 어째서 규현은 방귀남처럼 방이숙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지 못하는가.

 

우유부단은 로맨틱코미디의 신이다. 이제까지 천재용이 우유부단으로 기회를 놓쳤다면 이번에는 규현이 우유부단함으로 천재용에게 기회를 준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 없어 물러서고 만 방이숙이 마침내 찾은 곳이 천재용과 일하는 레스토랑이다. 레스토랑에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곳에 천재용이 있다. 결국은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보다 자기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상대를 선택하게 될 것인가. 어수룩하고 엉뚱하지만 천재용과 있을 때 그녀는 방이숙일 수 있다.

 

별개의 이야기다. 아니 드라마의 반찬일 것이다. 독립된 이야기로서는 상당히 전형적이다. 그러나 드라마에 삽입된 에피소드로써 충분히 개성적이며 맛깔나다. 로맨틱코미디를 쓰는 방법을 안다. 그러면서도 무리하지 않는 선을 지키고 있다. 드라마의 중심은 천재용과 방이숙이 아니다. 사이드가 메인을 넘어서서는 곤란하다. 방이숙의 고민과 방황은 그런 정도로 간단히 정리되고 끝난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천재용을 위한 무대가 펼쳐진다. 삼각관계일까? 아니면 밀고당기기일까?

 

성시경의 까메오에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시갱이란다. 더구나 매주 '1박 2일' 일정으로 지방에서 행사를 뛰고 있다고 한다. 불쌍하다 못해 처참하다. 성대결절에 노래따지 준비하지 못했다. 예능을 조금 하더니 망가지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 천연덕스러움에 찬사를 보낸다. 한참을 웃고 말았다. 이제는 성시경도 사람을 웃기는 법을 안다.

 

아직도 차윤희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방일숙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방이숙도 자신의 열등감과 싸우려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방이숙의 긴 머리는 그녀의 강요된 열등감으로 인해 스스로 포기해야만 했던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방말숙은 자신의 잊고 있던 순수로써 사랑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려 한다. 여성들의 싸움이다. 시어머니 엄청애 또한 이제까지의 일상과 싸우려 하고 있다. 그래봐야 어느새 자신의 시어머니(강부자 분)와 화해하고 있다. 싸움이라기보다는 싸움을 끝내고 난 여유라고나 할까?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여성들이 중심에 있다. 시어머니와 세 시누이와 한 명의 올케. 아니 작은 어머니 장양실(나영희 분)이 지금껏 겪어온 고통이야 말로 많은 여성들이 공유하는 것일 게다. 고옥 역시 어머니가 되기 위한 시련에 맞서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여성들을 남성들이 지탱해준다. 세상은 남성과 여성 두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재미있다. 가장 큰 미덕이다. 어떤 심각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드라마로서 풀어낸다. 항상 하는 말이다. 그저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생각하게 되더라고. 답을 고민하고 함께 나누게 되더라고. 생각이 깊다. 그러면서도 여유가 있다. 필자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좋다.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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