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무척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나 과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그것이 옳다면 지구는 아직도 평평한 채로 있어야 한다. 태양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이다. 세상은 신이 창조했으며, 인간도 신에 의해 흙으로 빚어졌다.
모든 구성원이 2*3은 5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다시 문제를 낸다. 2*3에 다시 5를 더하면 몇이 되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는가는 상관이 없다. 틀린 답을 가지고 있다면 그 수와는 상관없이 아무리 고민을 해봐야 틀린 답이 나올 뿐이다. 100명 가운데 99명이 그렇게 믿고 있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편하니까. 하기는 새로운 답을 찾고 그것을 검증하자면 보통 피곤한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에 익숙해지자면 여간 성가시고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면 충분하다. 2*3을 5라고 굳게 믿고 있어도 그동안 그 답에 맞게 맞춰서 살아왔을 터이므로 새삼 바꾸는 것이 더 곤란할 수 있다. 게으른 것이다. 그래서 권위에 의존한다.
논리가 아니다. 당연히 이성도 아니다. 단지 권력일 뿐이다. 다수의 권위를 빌어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강제하려는 폭력에 불과할 뿐이다. 그저 주먹을 휘두르고 직접 물리적인 타격을 가해야 폭력이 아니다. 다수의 힘으로 압박하여 굴복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다. 더구나 나이까지 많다. 관습과 통념에 기댄다. 시할머니이고 시어머니다. 시누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다.
굳이 임신한 차윤희(김남주 분)를 따돌리고 회식을 하려는 회사직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은 같다. 다른 것은 피곤하다. 나와 다른 것은 성가시다. 그래서 굳이 일부러 갖도록 노력한다. 노력이 부족하다 여기면 여기저기서 애써 친절과 배려를 베풀기도 한다. 바로 오지랖이라 하는 것이다. 가만히 보고만 있기에는 너무나 불편해서 굳이 개입하여 간섭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임신이란 도저히 어떻게 오지랖을 떤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장이 처음 차윤희가 임신한 것을 알고 일을 그만두도록 종용한 이유였다. 임신한 여자와 같이 일해야 한다. 차윤희의 책상을 치우며 따돌리려 한 이유이기도 했다. 임신한 여자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같이 일해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탈이 없는가? 하지만 굳이 자기가 노력해서 차윤희에게 맞추기보다 차윤희가 포기하고 그만두는 편이 다른 모두에게도 편하다. 더구나 자신들은 다수이기에 차윤희 한 사람이 희생한다면 모두가 편해질 수 있다.
오지랖이란 바로 그와 같은 저열하면서도 안이한 이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단어라 할 것이다. 스스로 노력할 생각은 없다. 스스로 바뀔 생각도 없다. 그래서 일상에 기댄다. 이제까지의 습관과 관습에 기댄다. 그래서 맞추도록 강요한다. 맞추도록 할 수 없으면 그를 밀어냄으로써 맞추도록 노력한다. 모두를 위한 것이다. 모두를 위한 선의다. 결국은 상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기조차도 선의에 의한 이타에 가려버리고 만다. 그러니 자기를 버리고 모두에 맞추라.
사회가 보수적인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비겁하고 게으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싫다. 달라지는 것이 싫다. 달라지려 노력하는 것이 싫다. 무섭다. 두렵다. 귀찮다. 성가시다. 그래서 희생을 강요한다. 다수의 힘으로 일방적 양보를 강제한다. 그들은 반역자다. 일탈자다. 도덕적 굴레가 씌워진다. 도덕이란 집단의 선이다. 다수가 선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선조차 계량한다.
그래서 나오는 말,
"여기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 옳아."
차윤희에게 호의적이던 첫째시누이 방일숙(양정아 분)조차 차윤희를 비난하게 되는 이유다. 불편하다. 어색하다. 껄끄럽다. 이제껏 없던 것이었으니까.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일이었으니까. 방일숙은 이제껏 부모와 남편의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왔다. 그녀의 일상은 불과 얼마전까지 완고할 정도로 단단하게 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새삼 달라지려 한다. 바뀌려 한다. 물론 방일숙도 궁극적으로 이제까지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화려한 변태를 이루리라. 그때는 달라질까?
방말숙(오연서 분)이 굳이 시누이인 자신에게 존칭을 써달라 요구하는 이유는 당연히 방일숙의 그것과는 다르다. 엄마 엄청애(윤여정 분)과도 다르다. 하지만 역시 원리는 같다. 전통과 인습의 힘으로 차윤희의 위에 선다. 역시 논리를 떠난 권력의 관계다. 전통의 권위를 빌어 차윤희의 위에서 그녀를 억압한다. 그녀가 가진 유일한 수단일 것이다. 차윤희의 친정엄마 한만희(김영란 분)가 불리할 때마다 며느리 민지영(진경 분)에게 시어머니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과 같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등에 업고 있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집단의 이기인 셈이다. 방말숙이 불리할 때마다 할머니(강부자 분)나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고자질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한 마디로 게으르기 때문이다. 비겁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 하다못해 자기의 논리를 개발하는 노력이라도 기울인다면 굳이 다수의 힘을 빌지 않더라도 논리로써 충분히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 그조차도 싫다. 당연히 다른 채로 함께 공존하기도 싫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이대로 지내기 위해서라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방귀남(유준상 분)에 의해 설득당하고 나서도 여전히 불편한 기색으로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것을 말해준다. 노인들이 보수적이 되는 이유다. 이제 와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기란 많이 버겁다.
사회가 보수적이 되는 이유다. 사회가 경직되고 정체되는 이유일 것이다. 다양성이란 노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노력하니까. 능동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다양성이란 그저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같은 공간에 존재할 뿐이라면 배제나 다르지 않다. 이해해야 한다. 최소한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아직은 방귀남의 집도 그래서 멀었다. 하기는 차윤희의 집도 그다지 가깝지는 않다. 그래도 한만희가 빠져 있는 'SNS'는 한 실마리가 되어주지 않을까?
차윤희가 맞서싸워야 하는 적일 것이다. 눈물이 나도록 완고하고 강한 적이다. 높고 두텁다. 사방이 꽉 막혀 있다. 과연 차윤희는 마지막까지 싸워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의 싸움을 지켜보던 후배는 지레 겁먹고 포기할 것을 선언하고 만다. 자기는 임신하면 그냥 조용히 회사를 그만두고 말겠다며. 그런 적과 싸워야 한다. 방귀남은 그녀의 가장 큰 아군이다.
확실히 방정배(김상호 분)와 방장군(곽동연 분)은 부자지간이 맞다. 서울대와 아이유, 그리고 건물과 땅, 둘 다 지금이 방정배와 방장군 두 사람에게 모두 전혀 소용이 닿지 않는 것들이다. 언감생심이다. 방장군이 서울대에 도전하는 것도, 아이유와 사귀는 것도, 혹시 모른다. 대단한 반전으로 방정배가 산 로또가 대박이 나서 사는 것이 나아지게 되려는지. 잠도 자지 못하고 고민한다. 방정배에게 야단맞기까지 방장군 또한 공부도 못할 정도로 고민하고 있다. 사소한 일로 행복하다.
천재용(이희준 분)이 끝내 자살골을 넣고 말았다. 방이숙(조윤희 분)에게 호감이 있는 천재용 자신에게나 이상한 상대지, 보편적인 시각으로 오래전부터 서로를 좋아해 왔고 심지어 방이숙을 만나기 위해 파혼까지 한 규현(강동호 분)은 대단한 로맨스의 남자주인공에 해당할 것이다. 더구나 직업까지 괜찮다. 천재용의 마음도 모르는데 차윤희가 천재용의 편을 들 까닭이 없다. 방이숙의 아버지 방장수(장용 분)을 찾아가 수작을 보려보지만 그것도 침몰. 운이 없어도 너무 없다. 불쌍할 정도다.
윤빈(김원준 분)과 방일숙의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인다. 어느새 조금은 믿음직한 매니저가 되어 있었다. 윤빈이 자기에게 보내는 신뢰가 반갑다. 그러면서도 이미 헤어진 남편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반갑다. 아직까지 두 사람 사이는 방일숙의 거짓말에서 비롯된 기만이 놓여 있다. 가수와 매니저로서의 신뢰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신뢰로 발전할까? 역시 드라마라는 것일 게다. 그저 매니저로서 성공하기보다 사랑까지 이룰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방귀남(유준상 분)의 방법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한 순간이지만 차윤희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너무 머리를 썼다. 차라리 차근차근 말로써 설득하는 편이 나았다. 끝내 이해시키는데는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배신감과 같은 감정을 가지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도 그다지 현명했었는가는.
이미 장양실(나영희 분)의 사정은 장양실의 입을 통해 들려졌다. 이제는 방귀남이 그 사정을 쫓는다. 그가 술에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원망해야 하는데 원망할 수 없다.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할 수조차 없다. 차라리 남이라면 속은 편했을 것이다. 고민할 것도 없다. 그래서 장양실도 속이 복잡하다. 가난하더라도 남편의 사랑이 있고 자식이 있는 막내동서 고옥(심이영 분)이 부럽다. 진정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차세광(강민혁 분)과 방말숙의 사이도 계속 엇갈리기만 한다. 하필 사돈끼리 만나는 자리에 방말숙만 차세광과 만날 기대로 빠질 것이 무엇인가? 그럼에도 계속 얽히며 관계를 이어간다. 항상 만나고 함께 해서 연인이 아니다. 만나지 못하는 순간도 그들은 연인이다. 결국은 마지막 순간이 모든 것을 말해주리라. 이별의 추억인가? 고난의 기억인가? 의외로 비련의 연인이 되어 가고 있다. 흥미롭다.
임신이란 죄인가? 죄인취급이다. 법정전염병이다. 불가촉천민이다. 아이를 낳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 임신하라 노래를 부르면서도 정작 임신을 함으로써 여성은 죄인이 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고 고립되고 만다. 차윤희가 눈물을 흘린다. 정말 오랜만이다. 울 여자가 아니다.
사소한 장면에서 우리 사회의 완고한 부분을 적나라하게 보이고 만다. 의도한 것인가? 아니면 무의식의 결과인가? 방귀남조차 말할 수 없는 진실에 홀로 힘겨워하고 있다. 이 가련한 부부에게 행복한 내일이 있기를. 드라마이기에 기대한다. 드라마가 좋은 이유다. 먹먹하다. 무겁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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