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적이다. 어찌되었거나 사이버수사대다. 경찰이다. 사이버수사대라는 자체가 드라마의 중심소재이며 경찰에게는 경찰로서 주어지는 임무가 있다. 이미 하데스 박기영(최다니엘 분)이 죽은 것으로 처리되며 기존의 사건이 일단락되었기에 새로 주어지는 사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원래 쫓고자 했던 사건은 박기영을 김우현(소지섭 분)으로 바꾸어 버린 바로 그 사건이었을 터였다.
세강증권에 대한 디도스 공격을 계기로 김우현은 조현민(엄기준 분)과 만나게 된다. 조현민은 다름아닌 신효정 살인사건의 진범이며 원래의 김우현을 죽이도록 지시한 당사자다. 박기영 또한 그로 인해 목숨의 경각에서 겨우 살아남아 김우현의 모습으로 그를 쫓고 있다. 그리고 조현민과의 만남은 조현민이 배후에서 꾸민 국제해커그룹에 의한 국가기간시설에 대한 공격이라는 초유의 사건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김우현은 다시 권혁주(곽도원 분)의 집요한 의심과 마주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그같은 권혁주의 의심이 김우현을 쫓는 과정에서 조현민의 실체에 다가가도록 만든다.
유강미(이연희 분)는 어느새 새로운 사건을 맡아 현장으로 출동하고, 그런 유강미를 쫓아 현장에서 사건을 해결하며 김우현은 조현민이 보낸 의혹의 자락과 맞선다. 구연주라는 이름의 언론사 기자를 사이에 둔 김우현과 조현민의 머리싸움 가운데 다른 한 쪽에서는 권혁주의 김우현에 대한 집요한 추격이 이어진다. 다만 아이러니라면 지금 권혁주가 쫓고 있는 김우현의 죄와 지금의 김우현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의 김우현이 아닌 과거의 김우현의 죄를 쫓는다. 더구나 원래 권혁주가 쫓던 것은 과거의 김우현이 아닌 지금의 김우현의 원래 이름인 박기영의 것이었다. 얼굴과 이름을 바꿈으로써 어느새 이렇게 일상과 상식은 배반당한다.
새로운 사건 역시 무척 흥미롭다. 입시명문고에서 일어난 연쇄자살사건, 더구나 그 입시명문고가 원래 유강미의 출신학교였다. 과거에도 유강미의 친구가 '전설의 답안지'라는 괴담과 관련해 자살한 적이 있었다. 그 사건을 통해 유강미는 김우현을 만났고 경찰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질 수 있었다. 과연 과거의 학교로 돌아가 만나게 된 과거의 자살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유강미의 과거와 현재가 엇갈리며 그럼에도 전혀 바뀌지 않은 본질의 문제를 집어낸다. 당시 유강미의 친구는 어째서 자살했고, 지금 그녀의 후배들은 어떤 이유로 자살하고 있는가? 아니 정확히는 서로 다른 동기 가운데 존재하는 여전히 남아 있는 한 가지를 주목하게 된다.
트릭도 흥미롭다. 단순하지만 확실하다. 직접 손을 써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유도하여 강제한다. 상대의 행동을 예상해서 자기가 의도한대로 행동하도록 유도하고 강제함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낸다. 가장 고난도이면서도 또한 가장 명쾌하게 드러나야 하는 트릭일 것이다. 시간이 길어지면 생각도 많아지고, 트릭이 복잡해지면 변수도 그만큼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한 순간에 미처 대처할 수조차 없이 결론이 지어져야 한다. 그러면서도 무리가 없다. 처음에는 조금 갸웃거렸지만 확실히 사람은 눈앞에 급한 무언가가 보일 때 손에 난 사소한 상처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고 잊어버리고 만다. 그쯤이야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장 손에 부상을 입은 채로 단서를 찾아 창에 매달리는 형사 유강미처럼 말이다.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 트릭은 이미 밝혀졌다. 어떻게 죽음을 유도했는가도 드러났다. 그렇다면 동기는 무엇일까? 과거 유강미의 친구가 자살한 이유와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입시명문고를 배경으로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죽어나갔는데도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침묵해야 하는 그들 나름의 절박함과 잔인함. 무기질의 학교가 무기질의 모바일과 만난다. 만남조차도 필요없는 텍스트의 세계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무엇일까?
권혁주의 추적은 집요하며 예리하다. 첨단의 수사기법은 소용없다. 몇 번이나 CCTV의 영상을 반복해 돌려보고, 단서에 대해서도 수첩에 손글씨로 메모해 놓은 것들이 전부다. 하지만 죄는 사람이 짓는 것이고,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바로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행동을 쫓으면 그 사람의 진실이 보인다. 어쩌면 김우현보다도 먼저 권혁주가 신효정 살인사건의 진실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신효정의 차가 과거 있었던 살인사건의 현장에 있었음을 벌써 밝혀내고 만다. 김우현을 쫓으려 한 것이었는데 김우현 너머의 더 거대한 것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불길하다. 사람이 너무 똑똑하거나 유능하면 그 끝이 안 좋다. 드라마의 분량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항상 긴장을 놓지 않도록 한다. 눈앞의 사건을 쫓으며, 이면의 다른 비밀들에 곁눈질한다. 김우현에게 접근하는 구연주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뒤에 도사린 조현민이 의도한 바는 무얼까? 권혁주는 어디에까지 진실에 접근하는가? 전재욱(장현성 분) 국장이 가진 단서는 또한 무엇일까? 그러나 그런 때 다시 눈을 잡아끄는 것이 눈앞에 놓인 살인사건이다. 유강미가 점차 진실에 다가간다. 김우현이 단서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가고 있다. 마침내 이르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래서 정석이다. 스릴러란 긴장이다. 두려움이고 불안이다. 그러면서도 짜릿한 쾌감이다. 터뜨려야 할 때 터뜨려주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꾹꾹 눌러주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약간의 힌트와 배려는 오히려 보는 사람을 안달나게 만든다. 이미 범인의 정체는 드러났지만 아직 제대로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 조현민이 의도한 바는 무엇인가?
아마도 무척 슬프고 잔인한 무언가가 아닐까? 끝나고 나면 어느새 묵직한 앙금이 가슴 한 구석에 차갑게 걸린다. 조현민에게도 슬픔이 있다. 비극의 서사가 있다. 그래서 그는 잔인하다. 그래서 그는 난폭하다. 작은 것이 아닐 것이다. 경찰과 언론까지 아우르는 그 거대함이 의미하는 바는 무척 버거운 것일 터다. 이미 드라마는 이렇게까지 커졌다. 재미있다. 갈수록 흥미로워진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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