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 말숙의 역지사지, 사랑을 위한 시련이 애처롭게 유쾌하다.

까칠부 2012. 6. 24. 10:03

비로소 모두가 고대하던 상황이 도래했다. 말숙(오연서 분)에게 응보가 내려진다. 그동안 톡톡히 시누이 노릇을 했으니 이제 고스란히 당할 차례다. 꿈은 그녀의 무의식이다. 꿈속의 차윤희(김남주 분) 원래 말숙 자신의 모습이었어야 했고, 말숙 자신의 모습은 원래 차윤희의 모습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역전되었다. 당장 차세광(강민혁 분)과 만나는 것마저 차윤희의 결정에 달렸다.

 

역지사지라 말한다. 서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라.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사람의 눈이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자신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다. 나는 다르다. 나는 다를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설사 서로 입장을 바꾸더라도 자신은 그와는 다를 것이라고. 서로 입장을 바꾸더라도 세상은 그렇게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실제 입장이 바뀌어 보지 않고서는 그 입장에 대해 알지 못한다.

 

얼마나 명쾌한가? 이렇게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 시누이가 올케가 되고 올케가 시누이가 된다. 시어머니가 친정엄마가 되고 친정엄마가 시누이가 된다. 갑과 을이 바뀌고 주와 종이 바뀐다. 어느새 장래 시누이가 될 차윤희 앞에서 말숙 또한 순종적인 올케의 모습이 되어 간다. 그렇게 그녀는 차세광을 사랑한다. 시월드는 고소공포증보다 무섭다던가? 사랑은 그러면 시월드보다도 무섭다. 말숙이 알던 시월드보다도 차세광에 대한 그녀의 순정이 더 무섭다.

 

천재용(이희준 분)의 고난은 여전히 끝나지 않을 듯 보인다. 참 말이 많다. 주저리주저리 뭔 놈의 사연들이 저리 긴가. 설레임을 견디지 못한다. 항상 말하는 것처럼 첫사랑에 빠진 소년과 같다. 무언가 불안해서 계속 떠들어야 하는. 자신이 들떠서, 그런 들뜬 자신이 또 불안해서, 그런데도 여전히 천재용의 마음을 몰라주는 방이숙이 무심하기만 하다. 그냥 방이숙에게 천재용은 편한 사람이다.

 

하지만 함정은 있다. 그동안 방이숙에게 씌워져 있던 원죄다. 그녀의 뿌리깊은 열등감이며 자괴감이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사랑하지 못한다. 누군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기대조차 없다. 규현(강동호 분)에 대한 사랑은 차라리 기적이었다. 그조차 그녀는 끝내 한 번 겉으로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규현 또한 자신을 좋아했다는 말에 그녀는 너무나 쉽게 넘어가고 만다. 그런 방이숙이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과연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물론 천재용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과 같은 편향된 기대가 담뿍 담긴 일방적인 추측일 뿐이다. 그렇게 천재용이 불쌍하다. 방이숙을 위해 체면이고 염치고 모두 내려놓고 그저 무조건 내달릴 뿐인 그에게 방이숙이란 너무 매몰차다. 그럴 의도가 없다는 점이 더 나쁘다. 차라리 대놓고 천재용을 거부하고 있다면 다른 가능성이나 생길 것이다. 바람처럼 스친다. 물처럼 흐른다. 천재용은 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같다. 그의 마음이 방이숙에게 닿을 가능성은 과연 있을까?

 

방일숙(양정아 분) 또한 매니저로서의 첫 일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려는 모양이다. 차윤희를 찾아가 상의한 것이 정확했다. 섣부르게 감정이 시키는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물론 굳이 PD에게 전화하면서 미리 말할 내용을 적어놓는 소심함에 따른 것이기는 하겠지만, 무모하게 자신감이 넘치는 것보다 차라리 소심하게 신중한 편이 낫다. PD를 크게 곤란에 빠뜨리고 윤빈(김원준 분)을 악평들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러나 양정아는 지금 당장 자신의 가수인 윤빈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안다. 윤빈에게 필요한 것은 기회이며 그가 설 수 있는 무대다.

 

또 한 번의 패러디에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차진요라니. 차세광의 학생증이며 학교에서 찍은 사진까지 의심하는 모습에서 아직까지 진행중인 어떤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불과 10분 전에 배운 것마저 바로 잊어먹는 방장군(곽동연 분)이었을 것이다. 과거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주인공을 내세워 미국의 근현대사를 다시 한 번 되짚었던 것처럼,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방장군을 내세워 당시 동참했던 수많은 네티즌과 대중을 조롱한다. 최소 당시 인터넷의 절반 이상이 방장군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처구니없어하는 강민혁에게서 무어라 대처할 방법을 몰라 며칠만에 겨우 대응을 보였던 당시의 당사자를 떠올린다. 얼마나 황당하고 한심하겠는가.

 

마침내 장양실(나영희 분)의 죄가 방장수(장용 분)에게까지 알려졌다. 모른 체 넘어가려 했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알게 된 이상 이대로 모른 체 지나갈 수 없다. 그것이 진실이다. 모를 때는 모른 체 지나갈 수 있어도 알게 되었다면 알지 못한 채 넘어갈 수 없다. 자신과 관계되어 있다. 자식과 관계되어 있다. 아내와 어머니와도 관계되어 있다. 딸들과도 관계되어 있다. 그는 가장이다. 아버지다. 판단은 자신이 내린다. 아들 방귀남(유준상 분)과 마주한다.

 

차라리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면. 임금님귀는 당나귀와도 같다. 어떻게 해서든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알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직접 자신이 말로 전해서는 안되었다. 힌트를 준다. 누군가에게라도 가서 닿을 수 있기를. 장양실에 대한 응징이기도 하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언제든지 모두에게 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분노가 컸을 테니까. 어려서 부모와 떨어져 자라게 된 아이의 한을 타인이 함부로 계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까?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그리고 장양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아버지란 슬프다. 그 짐의 무게가 때로 자신마저 잊게 만든다. 그것이 가족을 슬프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최소한 방장수는 그런 아버지가 아니다. 고뇌와 갈등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보다 믿고 있던 둘째 제수에 대한 실망과 분노이기도 할 터다. 용서이기도 할 것이다.

 

엄순애(양희경 분)의 캐릭터가 갈수록 주책맞아진다. 그래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솔직하고 귀여운 구석도 있더니만, 이제는 그것이 방정배(김상호 분)와 함께 장양실마저 무심한 말로 곤란에 빠뜨린다. 남의 사정을 생각지 않는 선량함이나 순수함은 때로 민폐가 되기도 한다. 엄보애(유지인 분)는 70년대 트로이카 유지인과 닮았다. 작가의 재치에 웃는다.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 차윤희의 올케 민지영(진경 분)의 학교폭력을 일삼는 새싹들에 대한 훈계는 압권이었다. 말이 칼보다 무섭다. 어떤 강한 힘보다 한 마디 말이 더 가슴에 아프게 와닿기도 한다.

 

누나마저 극복하려는 차세광과 올케와의 지난 시간마저 이겨내려는 말숙의 노력이 눈물겹다. 그렇게 들의 사랑은 진실되다. 그러나 사랑이 진실되다고 반드시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원죄가 있다면 시련을 통해 그 죄를 씻고 지나가야 한다. 이미 차세광과의 관계를 위해 한 차례 의식을 치른 바 있다. 우습지만 아련하다. 진지하지 않은 진지한 사랑이야기다. 즐겁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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