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유령 - 패자가 아닌 승자가 되기 위해, 죽지 않으려 죽이다!

까칠부 2012. 6. 22. 10:25

사람을 행동케 하는 것은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희망, 다른 하나는 공포다. 사실 둘은 하나다.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희망일 것이며, 희망을 놓아버려야 하는 절망이며 공포일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희망을 쫓으며 뒤로는 공포로부터 도망친다. 사람을 조종하는 흔한 요령일 것이다.

 

달콤한 희망을 앞세운다. 잔혹한 공포를 뒤에 세운다.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돈과 명예와 사회적 지위와 훌륭한 배우자, 무엇보다 안락하고 행복한 삶이 저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만일 실패하게 된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참한 나락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공부해라. 그저 공부만 해라.

 

필자 역시 어려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이야기다.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되라. 저리 가난하고 못사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다.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사실 희망보다는 공포가 더 컸다. 간절히 무엇을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그저 막연히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경우 맞닥뜨리게 될 결과가 두려워 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당연히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었다. 그저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니까 억지로 하는 것에 불과했다. 생각해 보면 그 좋은 시간들을 어쩌면 그렇게 허투루 낭비하며 보냈던 것인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많은 병폐가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을 것이다. 잘살기 위해 공부한다. 남들보다 위에 서기 위해 공부한다. 남들 밑에 있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 출세를 바란다.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더 강한 힘을 가지기 위해 모두는 필사적으로 공부한다. 공부를 잘하여 승자가 된다. 공부를 못해서 패자가 된다. 과연 그렇게 승자가 되었을 때 그들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겠는가? 만에 하나라도 패자가 되어 있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겠는가?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그렇지!"

 

너무나 당연하게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일 것이다. 성공을 계량한다. 계량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승자는 옳다. 패자는 그르다. 승자는 승리를 위해 노력했다. 패자는 그같은 노력이 부족했다. 개인의 성실성을 판단한다. 개인의 인내와 노력을 판단한다. 그리하여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승자에게는 도덕적인 우위와 더불어 모든 것이 주어진다. 패자에게 돌아갈 것은 없다. 오히려 패자가 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공포는 더 커져야 한다. 패자가 겪는 어려움과 고통은 사람들로 하여금 패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훌륭한 자극제가 되어 줄 것이다.

 

그렇게 믿어왔다. 온정과 배려는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 뿐이다. 더 지독한 가난이야 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도록 만든다. 어떤 온정과 배려도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더 절박해야 한다. 설사 기근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온정과 배려에 기대어 노력을 잊게 만들면 안된다. 그래서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수백만의 사람들이 영국정부의 방치 속에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영국정부에는 아직 충분한 여력이 있었다.

 

승자가 되어야 한다. 패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승자는 모든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패자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더 큰 절망과 고통만이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패자가 되지 않도록 교훈을 준다. 설사 승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패자는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절박한 교훈을 받는다. 차라리 패자가 되기보다 죽음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나타나는 이유다. 어른이 되어서도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죽음을 선택한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아니 죽는 것보다는 죽이는 것이 낫다. 입시명문교인 성연고등학교에 남아 있기 위해서라도 장학금은 반드시 밀요하다.

 

장미영이 죄를 짓게 된 이유였다. 죽을 수는 없었으니까. 살아야 했으니까. 패자가 되어서는 안되었다. 설사 남을 밟고 올라서서라도 승자가 되어야 했다. 1등이 되어야 했다. 1류가 되어야 했다. 그를 위해서는 입시명문교인 성연고등학교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그를 위해 굳이 학비도 비싼 성연고등학교로 진학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자신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와 가족들의 크나큰 기대가 자리하고 있다. 패자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고, 죽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을 죽이는 쪽이 더 낫다. 차라리 친구를 죽여 자기가 승자가 된다. 너무나 간명한 공식 아니던가.

 

그 순간에도 성연고등학교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생존을 말하고 있었다. 승자가 되어 살아남을 것을 말하고, 패자가 되어 도태되는 비참함을 말하고 있었다. 승자라는 달콤한 열매와 패자라고 하는 가혹한 공포로써 아이들을 내몰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라. 어떻게든 다른 아이들을 누르고 살아남아 승자가 되라. 그래서 장미영은 승자가 되었다. 그리고 장미영이 죄를 짓고 잡혀들어간 사이 곽지수가 또다른 승자가 되어 있었다. 잔인하도록 여상하게 일상은 계속해서 돌아간다.

 

섬뜩했다. 시리도록 참혹한 살인사건이 해결되고 바로 말간 햇살이 비추는 유강미(이연희 분)의 방이 비쳐지고 있었다. 그리 서러워하던 유강미였다. 그리 아파하던 유강미였다. 그러나 유강미의 일상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성연고등학교 학생들의 일상에 변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 하나나 둘 쯤 죽는 정도로는. 고작해야 사람 하나 살인자가 되는 정도로는. 그렇게 모든 것이 너무나도 강고하다. 고작 그런 정도의 충격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사건을 해결한 유강미와 김우현(소지섭 분)의 일상조차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의도한 것이었을까?

 

줄세워진다. 승자와 패자가.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가. 그것은 노력으로 계량된다. 실력으로 계량된다. 도덕적 판단까지 내려진다. 정의로써 지향된다. 성공한 자가 옳다. 승자가 정의롭다. 패자는 잘못되었다. 실패한 자는 악하다. 차라리 실패자로 남느니 죽는다. 차라리 실패자로 죽느니 죽인다. 남을 짓밟고서라도 승자가 되어 우뚝 선다.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승자로 남으려 한다.

 

항상 그 말을 되뇌이게 된다. 사람은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다. 잔인함이는 그보다 더 잔인한 슬픔이 도사리고 있다. 고작 고3이다. 자신들은 벌써 다 자랐다고 말하겠지만 길다란의 말마따나 그들은 아직 핏덩이다. 핏덩이가 다른 이의 피를 보았다. 누구의 잘못인가?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진실에 다가선다. 역시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드라마를 시작했는가. 김우현이 조현민(엄기준 분)과 마주친다. 바로 신효정의 동영상에 있던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곳에서. 김우현은 조현민을 모르지만 조현민은 그를 안다. 기다림이 너무 길다. 다음주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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