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말한다. 혈연적 개념으로만 생각한다. 다른 말로 혈족이다.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으면 가족이 아닌 남이다.
결혼이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다. 가족과 가족이 만난다. 혈족과 혈족이 만난다. 결혼하더라도 그들은 서로 타인이다. 결혼이란 수단이다. 혈족에 필요한 외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그는 전혀 남이며 별개의 존재다.
아마 얼마전이었을 것이다. 한 여자연예인이 남편에게 서운했던 기억을 방송에서 토로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했기 때문에 너와 결혼했다. 어머니를 모시기 위한 수단이다. 후손을 낳고, 재산을 관리하고, 집안을 유지하고, 물론 집안과 집안 사이의 유대 또한 중요한 명분이며 이유가 된다. 그런데 하물며 감히 결혼한 여자가 남자의 가족에게 함부로 하려 들다니.
물론 정신질환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는 학습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배워왔다. 그렇게 여겨왔다. 자식의 재산은 자기의 재산이라고. 자식의 일상도 자기의 일상이라고. 너와 내가 따로 없다. 차라리 자기를 위해 아들을 이혼시키고 어울리는 여자와 결혼시키겠다. 오래전에는 너무 당연했던 사고방식이었다. 다만 시대가 달라졌다.
남자가 명확히 해야 했다. 혈족인가? 아니면 가족인가? 혈족은 혈연을 전제한다. 가족은 유대를 전제한다. 부부야 말로 가족의 단위인 이유일 것이다. 혈연은 타고 난다면 부부는 맺어진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한 울타리 안에서 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간다. 그래서 가장이다. 혈연을 전제한다면 남자는 단지 어머니의 아들이고 누이의 오라비일 뿐이다. 아내 역시 그를 따라 혈연에 종속된다. 남편이 아닌 남편의 가족에게 종속되어 그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사실 전통사회에서였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감히 집안을 이은 아들을 어머니가 되어 위에서 누르려 하다니. 삼종지도에도 늙으면 자식을 따르는 것이 여인의 도리라 말하고 있었다. 혈연보다 우위에 닜는 것이 바로 가족의 유대이고 규범이었다. 가장의 권위는 해체되었는데 혈족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원래의 가족과 단절되어 전혀 생소한 혈연집단 안에 고립된 채 살아온 경우 더욱 그같은 혈족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극성스런 치맛바람이 나타나게 된 이유였다. 자식만이 가족이며, 자식에게 자기만이 가족이다.
개인의 잘못이라기에는 아들이며 딸의 모습도 그녀의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 그다지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만큼 일상적이라는 뜻일 게다. 다만 시대착오적이기는 하다. 지금은 그같은 방식이 통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아직도 어디선가는 그런 방식을 강요하고 강제당하는 곳이 있을지 모르기는 하지만. 하긴 아들이며 딸이며 그런 어머니에게서 교육받았을까?
어째서 그래도 아들의 장모이고 며느리의 친정엄마인데 암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다는 말에 태연히 보험의 명의를 자기 앞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가? 남이니까. 며느리가 남인데 사부인이라고 다를까? 이미 사부인에게 마치 일꾼부리듯 마실 것을 내오라 할 때부터 그녀는 이미 그렇게 여기고 있던 것이었다. 그나마 그런 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복종하기보다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점에서 아주 남편도 구제불능은 아니라 하겠다. 최소한 가장으로서의 자각은 있다. 다만 그것이 어머니의 강압과 애원으로부터 단호히 가족을 지킬 정도는 아니다. 심지어 아이가 아프다는데 누이와의 약속을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혼이 정답이라는 이유다. 혈연은 어떻게 해도 혈연이다. 의를 끊는다 해도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가 아주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족은 다르다. 부부는 0촌이다. 헤어지면 남이다. 헤어지면 서로 남인 이들이 모여 유대와 신뢰로써 가족을 이룬다. 그런데 유대도 신뢰도 없다. 과연 가족인가?
혈족과 가족을 구분해야 한다. 가장이란 역할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안주인이란 집안의 안쪽을 지키는 사람을 뜻한다. 부모라고 자식을 소유할 수는 없다. 자식에게는 이미 자신의 가족을 지킬 책임과 의무가 있다. 당연하지만 쉽게 착각하는 부분이다.
아마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례를 제법 들은 바 있다. 설마 그럴까 싶지만 원래 설마가 사람을 잘 잡는다. 화가 날 정도로 답답한 모습이지만 그것이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니 굳이 드라마로 만들어 보여준다. 공감하는 이들이 있다. 재미있다.
연작을 이룬다. 설마 다음편이 있을까? 이전의 내용에서도 화도 나지 않을 정도로 답답함을 느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설정이 흥미롭다. 단편의 묘미가 있다. 흥미롭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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