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다. 여행이라는 것이 떠나서도 맛이지만 떠나기까지의 과정 역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주 '남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편의 모티브가 되었을 <남자의 자격> 초창기의 '자전거여행'편을 떠올려 보더라도 그렇다.
같은 7인승 자전거였다. 하지만 '자전거여행'편 당시 7인승 자전거가 처음 멤버들 앞에 모습을 나타낼 때에도 상당히 거창한 연출을 동원하고 있었다. 멤버들은 놀랐고 당황했다. 자전거를 멤버들 앞에 내놓은 것이 끝이 아니었다. 연습이 필요했다. 혼란과 갈등이 시작되고 있었다. 당시 멤버이던 김성민의 폭주로 인해 멤버들의 원성이 쏟아지면서 여행은 출발하기도 전부터 안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여행을 떠나도 좋은가?
'자전거여행'편이 팬들 사이에서 지금도 손꼽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고성이 오가고, 서로 감정이 틀어지고, 그런 가운데 여행을 통해 멤버들이 하나가 된다. 모두가 함께 한 바퀴씩 패달을 밟아가는 가운데 하나의 자전거에 올라탄 멤버들은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백미는 이제는 <남자의 자격>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6인승 자전거 뒤에 매달린 손수레일 것이다. 고개를 넘던 도중 자전거가 고장나자 안장 하나를 떼어내고 6인승으로 개조할 수밖에 없었고, 그 남은 한 자리에 당시 국민시체라고까지 불리던 김태원이 우산을 양산삼아 쓰고 앉았었다. 모두가 한 바퀴씩, 그리고 여섯 남자가 한 남자를 업듯이 싣고 간다. 멤버들은 하나다. <남자의 자격>은 하나다. 전환점이었다.
그런데 보라. 7인승 자전거가 주어졌다. 처음부터 자전거의 뒤에는 손수레가 달려 있었다. 그나마 이번에는 김태원이 아닌 이윤석이 다리를 다쳐 손수레에 얹혀 간다. 우산은 당연히 김태원의 몫이다. 처음 7인승 자전거를 보던 순간의 경악도 없다. 처음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겪었던 혼란이나 갈등도 없다. 그저 순탄하다. 당연하다. 올초에만도 '남자vs남자' 미션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신화의 멤버들과 손수레가 딸린 7인승 자전거로 함께 경주를 벌이고 있었다. 원년멤버들에게야 이미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어서 찍었던 미션의 데자뷰일 것이다. 아무런 설렘도 놀람도 반전도 없다. 재미도 없다.
그저 강화도까지 가서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이상은 없었다. 똑같이 소리지르고, 똑같이 힘들어 하고, 똑같이 수다떨고, 멤버만 바뀌어 있었다. 석모도 대신 강화도로 장소만 달라져 있었다. 지루했다. 그렇지 않아도 감정이 과잉된 제작진의 자막이 집중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리메이크도 아닌 리바이벌이었다. 전혀 새로운 것이란 없이 지루하고 지겹기까지한데 전혀 자신은 느낄 수 없는 제작진만의 감동이 필자를 프로그램으로부터 유리시키고 있었다. 방송을 내보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필자가 그것을 보고 있는 이유는 더욱 알 수 없었다.
이유가 부실했다. 어째서인가? 왜인가? 어째서 자전거여행이고, 왜 하필 강화도이고 동막해수욕장인가? 차라리 다른 미션들에서처럼 멤버들로 하여금 각자 주제에 맞는 여행을 선택해서 그것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오라 요구하는 편이 나았을지 모르겠다. 최소한 설득력 있는 이유가 주어진다. 멤버들 자신에 의해서든. 아니면 제작진 자신에 의해서든. 역시 <남자의 자격>의 미션이라기보다는 단지 PD가 바뀌고 멤버들까지 바뀌게 되는 데 따른 자기들만의 작별여행이었을까?
하여튼 뜬금없었다. 그리고 의미도 없었다. 동막해수욕장에 도착해서 진흙싸움을 보이던 모습은 없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굳이 <남자의 자격>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이경규일 필요도 없고, 김국진일 필요도 없으며, 전현무이거나 양준혁일 필요도 없다. 그 와중에 이경규는 분량을 뽑으려 한다. 결국 김태원은 도중에 다른 스케줄을 위해 촬영장을 떠나고 있었다. 텐트를 치고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은 차라리 <1박 2일>에 더 어울렸다. 그렇다고 작별여행으로써 시청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만한 어떤 서사나 묘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결국 미션의 마지막 모닥불을 피워놓고 서로 영상편지를 주고받는 내용에서조차 동어반복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두번이던가. 서로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그것은 리얼버라이어티의 방식이 아니다. 스튜디오 토크버라이어티의 방식이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지맨 대부분 충분히 예상가능한 것들이었다. 한 가지 양준혁이 김국진에게 가장 고마우면서 미안하다 한 것은 살짝 반전이었다. 양준혁에게 그 대상은 다른 멤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그동안 <남자의 자격>을 촬영하면서 멤버들이 느껴왔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었다. TV로 보는 너머에는 어쩌면 멤버들 사이에 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아마 당시 촬영 도중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된 멤버교체 뉴스를 보았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필 이윤석과 윤형빈이 이경규를 그 대상으로 지목하고, 이경규와 김태원 역시 윤형빈을 지목한다. 양준혁이 김국진을 선택한 것이나, 전현무가 양준혁을 지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우정여행이 마지막여행이 되어 버렸다. 원래 마지막일수록 사람의 마음은 더욱 돈독해지는 법 아니던가. 그렇더라도 촬영 도중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사이조차없이 기사를 통해 멤버교체사실을 알도록 한 새로운 제작진의 처사는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당시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필자 역시 마음이 전처럼 좋지만은 않다. 사람을 내치더라도 그런 식으로 내치는 것이 아니다.
재미없었다. 감히 말할 것조차 없었다. 출연자들이 가라앉아 있으니 보는 시청자도 함께 가라앉는다. 이미 보았던 익숙한 장면들과 굳이 <남자의 자격>이 아니어도 되는 아무것도 아닌 모습들, 그리고 우울한 결말. 다음주부터는 새멤버들이 이들을 대신한다. 예능인이라지만 사람의 가치가 이렇게 가볍다. 그동안 시청자와 함께 해 온 시간이란 그렇게 가치없고 가벼운 것인가? 이렇게 끝나고 만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란 이 얼마나 지독스런 역설인가.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필자 또한 행복하지 않다.
우울함은 예능이 추구할 것이 아니다. 슬픔과는 또 다르다. 지독한 슬픔은 감정의 정화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우울함은 단지 끈적거리는 묵직한 마음의 짐을 남길 뿐이다. 이러자고 그 재미없는 영상을 보였던 것일까? 그토록 성의없는 여행을 준비했던 것일까? 아쉽고 밉다. 안타깝다.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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