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흙과 땀, 인정의 시간, 멤버교체의 아쉬움을 곱씹다.

까칠부 2012. 7. 2. 09:44

참 아쉬웠다. 지난주 <남자의 자격> PD와 멤버의 교체가 있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후 적잖은 혼선과 혼란이 있었지만 결국 PD와 나중에 합류한 양준혁과 전현무의 하차는 이미 확정된 듯 보였다. 그러나 과연 PD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멤버의 교체가 지금으로서 최선인가?

 

물론 그동안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최소한 양준혁과 전현무가 주도적으로 이렇다 할 재미있는 장면을 뽑아내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적으로 양준혁과 전현무만의 탓이기만 하겠는가? 당장 양준혁과 전현무가 재미없는 동안 <남자의 자격> 역시 침체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남자의 자격>의 침체 역시 양준혁과 전현무 두 사람의 책임이겠는가? 그럴만한 비중도 책임도 없었음을 모두가 안다.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프로그램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확인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이번주 '남자, 일손을 도와드립니다' 미션을 통해 더욱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주 '남자, 한점의 승부' 미션에서도 그들은 양준혁은 먹는 것에 강했고, 전현무는 진정성이란 없이 말만 앞섰다. 그러고 보면 양준혁이 <남자의 자격>에 처음 합류하고 멤버들과 제작진으로부터 받은 별명이 바로 '대구댁'이었다.

 

양신이라 불리웠었다. 한국 프로야구의 타자부문 거의 모든 기록을 보유한 그야말로 전설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대선수였다. 덩치마저 산 같았다. 곰같은 덩치에 결코 곱상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한 마디로 그냥 남자였다. 그런데 남성성 그 자체를 보여주는 듯한 커리어와 외모의 사내가 전혀 뜻밖에 집안일에 능숙한 모습을 보인다. 반전이었다. 그래서 '대구댁'이라는 별명도 놀라움 반 놀림 반으로 붙여진 것이었다. 양준혁과 같은 남자가 집안일도 꼼꼼하게 잘한다. 그래서 지금도 '한 점의 승부'를 할 때나, 농촌으로 일손을 도우러 가서나 역시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반전은 없었다. 양준혁의 다른 별명이 그래서 식신이다. 먹는 것을 그렇게 좋아한다. '일손을 도와드립니다' 미션 도중에도 쉴 새 없이 배고프다 말하고 먹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혼자 사느라 직접 만들어 먹는 일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요리에도 솜씨가 붙게 된다. 독거노인이라는 것도 크게 한 몫 한다. 그래서 다시 양준혁에 대해 어서 좋은 짝을 찾기는 바람이 이어지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양준혁의 캐릭터다. 먹는 것 좋아하고, 늦게까지 독신이고, 그래서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처리해야 하고, 그래서 궁상맞게 집안일에 능숙한 모든 것들이. 하지만 과연 그동안 <남자의 자격>은 그같은 양준혁의 모습 가운데 얼마나 제대로 활용하고 있었던가?

 

그나마 배낭여행을 가서는 괜찮았다. 그때는 가능성이 엿보였었다. 그러나 '청춘합창단'만 무려 4개월에 걸쳐 내보내는 가운데 그나마의 가능성마저 어느 순간 잊혀지고 말았다. 캐릭터란 서사이며 관계다. 주위와 쌓아가는 이야기다. 양준혁이 단지 먹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는 부족한다. 그것을 통해 주위와 관계를 만들고 이야기를 쌓아가야 한다. 음식을 잘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주위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캐릭터다. 그런데 더구나 '청춘합창단'이 끝나고도 일곱 멤버가 함께 모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드물었다. '한 점의 승부'에서처럼 모두 모여 서로의 솜씨를 겨루고, '일손을 도와드립니다'처럼 윤형빈과 함께 힘을 쓰며 일을 하고. 윤형빈과 더불어 힘을 쓰는 일을 도맡아 하면서 시도때도 없이 배고프다 말하고, 끝내 보쌈을 만들며 솜씨를 발휘하는 것이 하나의 줄거리를 만들지 않던가. 심지어 익지도 않은 돼지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덥석 집어 씹기 시작한다. 입담은 부족할 지 모르지만 그 자체로 재미있는 그림이 된다.

 

전현무 역시 마찬가지다. 복분자를 따는데 이경규와 서로 주고받는 말들이 무척 수다스러웠었다. 김국진과 함께 있을 때도 그는 무척 수다스러웠었다. 밉상이지만 말이 터져나온다. 밉상이기 때문에 말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관계가 만들어지고 서사가 만들어진다. 공격하기도 좋다. 그러면서도 전현무 자신도 태연히 주위의 멤버들을 공격한다. 그런데 그동안 그럴 기회 자체가 드물었다. 말만 앞서는 헛똑똑이에, 주위에서 비난하기 좋은 밉상, 사실 예능에 있어 가장 좋은 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경규와 같이 붙여놓고 마을 주민과 어울리도록 하니 당장 마을사람들부터가 스스럼없이 전현무를 공격하며 놀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렇게 쉬운 남자도 예능에서 찾아보기 힘든 법이다. 하지만 과연 그동안 어떠했는가?

 

김태원과 김국진이 만들어가는 그림도 그동안 <남자의 자격>이 멤버 자신들에 대해 얼마나 소홀했었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일 것이다. 동갑이다. 친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격의없이 주고받는 말들이 있다. 보여주는 행동들이 있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된다. 내버려두면 흔한 동갑내기 친구들처럼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단지 함께 어울리도록 내버려두는 것만으로도. 이앙기로 모내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 모두 얼마나 수다스럽게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는가.

 

설사 팀을 나누고, 멤버 각자가 흩어져 미션을 수행하더라도, 결국 멤버는 일곱명 모두라는 것이다. 관계가 전제된다. 서사가 전제된다. 당장 고작 개에 불과한 덕구며 남순이가 <남자의 자격> 멤버들은 물론 시청자들에게까지 반가움을 느끼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흩어져 있다가도 다시 모이면 그 자체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그런 것들이 부족했다. 덕구와 남순이도 반가운데, 정작 멤버들이 함께 보였다고 새로운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이전의 김성민도 일부러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려 해서 봉창이라는 캐릭터가 붙여진 것이 아니었다. 이정진 역시 비덩이라는 캐릭터가 주어진 것은 멤버들과의 주고받는 대화 가운데서였다. 김성민으로 인해 이경규의 복장이 터지고, 김성민의 소란스러움에 나머지 멤버들이 한 목소리가 되어 비난을 퍼붓는다. 이정진은 있는 그 자체로 그림이다. 김성민과 이정진 사이에도 함께 있으면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다. 이정진과 윤형빈이 함께 있으면 통편집 듀오로써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모두 <남자의 자격> 전성기에 사람들이 멤버들에게 이끌리던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멤버들과 함께 부대끼며 관계와 서사를 만들고,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부여받던 이전의 멤버들에 비해 양준혁과 전현무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PD의 교체는 받아들인다. 결국 PD의 역량의 한계였을 것이다.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 <남자의 자격>이라고 하는 일관된 서사를 그려갈 줄 모른다. 각각이 파편이다. 각각의 멤버나 각각의 미션이 모두 파편화되어 어우러지지 못하고 있다. 전임 PD의 경우는 달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관된 그림을 그리고 그것으로써 시청자를 설득시키는 뚝심이 있었다. PD가 그리는 큰그림 안에서 <남자의 자격>은 유기적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전적으로 PD의 잘못이다. 그러나 과연 캐릭터를 가질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양준혁과 전현무는 무슨 죄인가? 아예 아무런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면 모를까 지난주와 이번주, 그리고 그 사이에도 상당한 납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안다. 세상은 시시비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PD가 바뀌었다. 기존의 멤버 가운데서도 희생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다만 그 방식이 좋지 못했다. 멤버들 자신이 언론보도를 보고 하차여부를 알고, 결국 동의를 얻지 못한 멤버교체로 인해 기존 멤버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규모도 너무 컸다. 이경규, 김태원, 김국진 세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바꾸려는 듯 보였다. 이 정도면 기존의 <남자의 자격>과는 연결점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한두명 바뀌는 것과는 다르다.

 

아무튼 그래서 아쉬웠다. 오랜만에 재미있었다. 고창의 풍경도 정겨웠다. 하지만 그보다 정겨운 것은 끊임없이 오가는 수다였다. 이경규가 보이고 전현무가 보였다. 김태원과 김국진 두 동갑내기들이 보였다. 양준혁과 윤형빈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다음 촬영부터는 다른 멤버로 다른 관계와 이야기로써 보여지게 되리라.

 

덕구가 반가웠다. 남순이가 귀여웠다. 이경규를 알아보지 못한다. 김태원에게 달려가더니, 윤형빈과의 사이에서 고민한다. 미션을 내리라 하니 주저앉는다. 잡솨 할머니와 참말로 할머니의 여전한 모습이 기꺼웠다. 땀투성이가 된다. 흙투성이가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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