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위대할 수 있다는 것은 다름아닌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다. 만져지지 않는 것을 만지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사유할 수 있다. 스스로 목적과 의미와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다.
인간을 유희적 인간이라 일컫는 이유였다. 동물도 놀이를 한다. 그러나 동물의 놀이는 본능의 연장이다. 구체적인 목적이 있다. 본능이 정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인간도 그렇다고 여겼다. 산업화시대 인간의 놀이란 여가를 활용해 생존을 위한 생산기술 및 전투기술을 연마하는 수단이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가위바위보 어디에 생존을 위한 본능이 숨어 있는가?
쓸데없다고 말한다. 할 일도 없다고 비웃는다. 의미없다. 가치없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본능이 정한 생존 이외의 행위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새로운 목적을 찾아내고, 새로운 행동을 구상하며, 그에 대해 새로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어째서 인간은 산에 오르는가?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산에 오르려 하기에 산이 그곳에 있다. 산이 있기에 산을 오르려 하고, 산을 오르려 하기에 산이 있다. 산에 오른다고 무언가 대단한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사냥을 하기에도 너무 높고, 농사를 짓기에도 너무 춥다. 싸움을 하기에도 환경은 인간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런데 오른다. 그리고 오르는 이들에 사람들은 관심을 갖는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다.
북극점에 먼저 도착했다고 뭐라도 크게 달라진 것이 있던가? 남극점에 먼저 도착했다고 해서 남은 것은 고작 이름 몇 자 뿐이다. 하지만 어려서 필자 또한 그들의 전기를 읽으며 영웅으로 우러르고 있었다. 처음으로 북극점에 도착했다는 것. 처음으로 남극점에 도착했다는 것. 처음으로 히말라야에 등정했다는 것. 처음으로 히말라야의 모든 봉우리에 올랐다는 것. 그 행위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이다. 본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간의 이성이 발견한 새로운 목적이며 의미이고 가치인 것이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인 것이다. 인간은 이성으로 사유할 줄 안다. 본능을 거스를 줄 안다. 생존이야 말로 본능이 가리키는 지상의 목적일 테지만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때로 생존보다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새로운 목적을 찾아낸다.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서 뛰어내리고, 태풍에 맞서 파도를 타고, 깎아지른 절벽을 맨몸으로 오르기도 한다. 죽을수도 있지만 그로부터 보람을 찾고 성취감을 얻는다. 잣자신의 존재를 느낀다. 그것을 정의하는 것은 바로 자신, 인간의 이성인 것이다. 쓸데없는 짓에 목숨거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인간인 이유인 것이다.
인간이 지금껏 문명을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었다. 하늘을 날고자 하는 순수한 욕망이 마침내 비행기를 만들어냈다. 움직이는 세계의 법칙을 찾아내고자 하는 순수한 호기심이 미분과 적분을 찾아냈다. 굳이 0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일상을 살아가는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 뉴턴의 법칙이 없을 때에도 사람들은 훌륭히 일상을 영위하며 살았었다. 칸트의 철학은 지금도 읽고 있으면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상당하다. 하기는 최근의 이론물리학들은 책을 사서 읽어도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조차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그것에 자신의 평생을 걸고 있다. 무수한 실패를 겪어가면서.
처음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에 발을 딛은 사람들이 있었다. 거친 초원과 메마른 사막을 건너 그들은 동아시아에까지 왔었다. 일부는 험한 바닷길을 지나 한반도에 도착했다. 일부는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넜다. 일부는 바다로 나가 막막한 태평양을 항해하여 폴리네시아의 각섬에 정착했다. 얼어붙은 북극에도, 남미의 밀림에도, 안데스와 티벳의 고산지대에도, 어느 외딴 섬에도, 지구상 어디에도 이제는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들이 단지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만을 찾아 기존의 목적에만 충실했다면 지금의 인류는 없었을 것이다.
즉 한 마디로 인간의 본능을 넘어선 본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이 그곳에 있으니 넘는다. 산을 넘으려 하니 그곳에 산이 있다. 시내버스로 부산까지 갈 수 있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런 생각은 해 보았을 것이다. 어렸을 적 필자 역시 혹시나 버스만 잘 갈아타면 부산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필자는 그 고민에 도전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막연히 생각만 하던 그 일을 실제 행동에 옮긴 사람들이 있었다. 단지 재미있을 것 같다. 인간의 본성이다.
그 본성에 충실한다. 남자로서 한 번 해 볼만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얼마나 현실에 얽매여 치이며 살아왔는가? 현실의 당면한 목적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왔다. 무언가를 생산하려 구애되며 살아왔었다. 한 번 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빠쁘게 지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쫓겨가며 그것을 이루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도 해 보고 싶었다. 현실의 시간이 필자에게까지 그럴 기회는 허락하지 않았을 뿐. 한 번은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침내 실현되어 무척 기분이 좋다. 새멤버들과 왁자할 것이다.
힘들 것이다. 새벽 첫차부터 그날 부산 막차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정확한 시간에 떠나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다. 뛰어야 할 일도 적지 않을 것이다. 헐떡이는 가운데 누구나 할 것 없이 바닥이 드러난다. 지쳐서 생각할 여지조차 없이 모두의 본모습이 드러나 보이게 된다. 더구나 경쟁구도이기까지 하니 누가 이길까 지켜보는 맛도 있을 것이다. 당사자들은 고생인데 시청자들은 재미있다. 예능의 원래 재미다.
어쨌거나 새멤버로 첫방송이다. 주상욱은 기대했던대로 에너지가 넘친다. 지금으로서는 과거 김성민과 이정진의 롤을 합쳐놓은 것 같다. 몸도 되고 어느 정도 말도 된다. 다만 모두를 피곤하게 만들던 김성민과는 달리 주상욱은 벌써부터 이경규와 김태원으로 인해 피곤해하는 것 같다. 잘생겼는데 의외로 허당이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합격점이다. 김준호에 대해서는 윤형빈이 그랬듯 대본에 의존한 콩트코미디 위주의 <개그콘서트>와 리얼버라이어티인 <남자의 자격>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출발이 좋다. 첫미션도 좋다. 간만에 순수하게 흥미를 끌어 볼 수 있는 미션이었다. 다그치고 몰아세우는 가운데 - 더구나 PD마저 허당이다. 작가가 써준 대본을 토씨 하나 안 빼고 그냥 읽는다. 그것만으로도 분량이 나온다. <남자의 자격>의 8번째 멤버다. 그런데 첫미션마저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정해졌다. 한계에서 캐릭터는 나온다.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 재미있을 것 같다.
불안요인이라면 역시나 올해도 다시 시작하는 합창단 미션일 것이다. 멤버들의 캐릭터가 잡히기도 전에 합창단이 멤버들을 먹어 버린다. 작년에도 그랬다. 정작 고정멤버들은 물러나 있는 사이 어느샌가 4개월이 훌쩍 지나 지겨워지고 있었다. 전현무와 양준혁이 그렇게 자리도 못잡고 떠나가고 말았다. 올해는 어쩌려는가? 일단 새멤버들부터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해보고 싶었던 미션이었다. 차마 엄두가 안나던 미션이었다. 대리만족이기도 하다. 새멤버들에 대한 테스트장일 것이다. 아직까지는 재미있었다. 팀을 나누는 단계에서부터 새멤버들의 역할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생문이 보인다. 짧아서 아쉬웠다. 기대가 크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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