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TOP밴드2 - 밴드의 맛은 라이브,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다.

까칠부 2012. 9. 16. 10:26

과연 밴드의 진정한 맛은 라이브에 있다. 그것이 문제일 것이다. TV로는 어떻게 해도 라이브 현장의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없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기록할수도 대체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생생한 날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오래전에 녹화해서 편집해서 방송하는 내용만으로는 전혀 그 느낌을 알 수 없다.

 

물론 그래도 아쉽다. 어찌 TV로 보는 것이 실제로 현장에서 보고 듣는 것과 같을까? 하지만 어차피 현대란 미디어의 시대다. 음원으로 듣고 TV로 본다. 그나마 인터넷 동영상은 TV만도 못한 화질과 음질을 갖는다. 결국 대중을 설득하려면 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만나는 법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대중 역시 미디어를 통해 그들과 익숙해져야 한다. 생방송이란 그런 점에서 최소한의 타협할 수 있는 접점이다. 비록 TV라고 하는 수단을 통해서지만 저들이 지금 바로 연주하고 있는 음악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긴장한 모양이다. 아니면 그래서 욕심이 너무 지나쳤다. 가장 간결하게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었던 몽니에게서조차 실수가 보였다. 악퉁도 장미여관도 욕심이 지나쳐 전체적인 구성이 산만해졌다. 한 가지에만 집중했으면, 아니면 한 가지를 더 줄였으면, 연주가 나쁜 팀들이 아니기에 더 아깝다. 트랜스픽션 역시 약간은 움츠러든 채 어색한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그것을 뛰어넘은 것은 다른 팀들과는 다른 10년 넘게 단련된 그들의 원숙한 연주와 무대매너였다. 결국 경험이 승부를 갈랐다고나 할까?

 

약간은 실망이었다. 고작 기대했던 <TOP밴드2>의 생방송무대가 이런 정도였던가? 하지만 그것이 라이브다. 어쩌겠는가? 사전에 협의할까? 아니면 사후에 편집할까? 연출을 해볼까? 좋은 건 좋은대로. 나쁜 건 나쁜 것 그대로. 그렇다고 아주 나쁘기만 한가면 설마 아주 나쁘기만 한데 음악을 하는 자신들이 그것을 몰랐을까? 그것도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일 것이다. 계속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음반에 비해 라이브는 그렇게 즉흥적이고 계산되어 있지 않다. 가끔은 실망을 더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분명 실력있는 팀들이다.

 

장미여관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예전 밤무대의 느낌을 떠올리곤 했었다. 특유의 끈적거리는 뽕끼와 사이키델릭을 보사노바라는 장르를 통해듣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밤무대 출신이라 한다.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그만큼 잘안다. 가장 잔인한 무대다.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도 없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직설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하물며 이름도 없는 신인이다. 그들의 음악과 무대가 어디에서 단련되어 여기에까지 이르렀는지.

 

해랑의 인종차별 이야기는 개인의 씁쓸함을 넘어 우리 사회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추악한 한 단면이었을 것이다. 타블로가 그토록 집중적인 공격을 당했던 것도 그가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재범이 만약 한국국적을 가지고 그같은 글을 썼다면 그는 굳이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단지 외모가 그래서. 필자의 주위에도 외모만 본다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의심스러운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인은 아주 오래전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해 한반도에 정착한 이들이다. 그들이 과연 그렇게까지 순수하고 순결했을까?

 

심사위원들의 가차없는 평가가 좋았다. 차라리 예선에서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글쎄 40점이란다. 40점이면 과락에 해당하는 점수다. 시험에 따라 한 과목만 40점 이하가 나오면 합격취소다. 그런데 김세황은 가차없이 악퉁에게 40점이라는 처참한 점수를 안긴다. 송홍섭이 솔트라면 김세황은 기요틴이다. 단숨에 밴드의 목을 자른다. 집행자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납득할 수 없는 기준이 아니기에. 좋게 보기도 하지만 때로 나쁘게 보기도 한다. 그것은 각자의 음악적 취향이며 지향이고 선택이다. 그래서 심사위원도 여럿이 있다. 모두가 한 가지 답을 내놓을 것이라면 심사위원은 한사람이면 족하다. 다만 심사위원 장혜진의 경우 자칫 밴드음악에 대한 편견을 신중하지 않게 꺼낸 것이 아닌가 아쉽기는 하다. 70년대에도 소프트한 대중적 록이 크게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록은 절대 시끄럽지 않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마저 모두 즐거웠다. 불만족과 불편함마저도 기뻤다. 공짜로 이만한 공연을 본다. 아마 현장에서였다면 욕을 하든 환호를 보내든 보다 더 큰 보상을 누렸을 텐데. 그조차 하나의 재미다. TV너머와 이 안쪽은 그만한 차이가 있다. 그리도 이나마도 그저 고마울 뿐이다. 본격화된다. 아쉬웠기에 마지막 기대가 크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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