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불후의 명곡2 - 파격과 열정의 디바 윤시내를 만나다!

까칠부 2012. 9. 16. 10:02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1970년대에는 바로 김추자가 있었다. 그녀는 그야말로 엘리트코스를 밟은 스타 중의 스타였다. 아직 학생이던 무렵 오디션을 통해 신중현에게 발탁되었고, 처음부터 스타의 길을 걸었었다. 1970년대는 바로 그녀의 시대였다.

 

그리고 같은 시대 미8군 무대에는 그녀에 비견되는 또다른 스타가 준비되고 있었다. 미 8군 무대의 전성기가 지나며 국내 클럽무대로 음악인들이 몰려들던 당시 킹 박이라는 이에 의해 발탁되어 신중현과 비견되던 신병하에게 소개된 바로 윤시내였다. 윤시내를 김추자급으로 키워보고 싶다는 킹 박 사장의 말에 신병하는 유현상 등 당대의 음악인들을 끌어모아 '사계절(=포시즌)'이라는 팀을 만든다. 킹 박 사장의 눈은 정확했다.

 

이제까지 없던 보컬이었다. 김추자처럼 화려하면서도 감각적인 율동에 더해, 김추자의 어쩌면 정교하게 절제된 차가운 보컬에 비해 주체할 수 없이 뜨거운 열정을 노래하던 새로운 스타일의 여성보컬이었다. 어쩌면 디바란, 아니 열창이란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말이었을 것이다. 억눌린 듯 하염없이 터뜨리는 그녀의 노래는 허스키한 목소리와 어우러지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헤집었다. 학교성적에 민감하던 시절 '공부합시다'라며 남의 속을 뒤집을 때까지. 어째서 어머니가 하시는 그말은 그리도 듣기 싫은데 노래는 입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일까?

 

70년대 후반을 거치고 80년대 초반 대한민국 대중음악에는 남자로서 조용필이 있었다면 여자로서는 윤시내가 있었다. 지금도 어렴풋한 기억이다. 어둡고 허름한 외할머니의 쪽방, 이모부가 가져다준 흑백TV로 당시 KBS의 순위프로그램이던 '가요톱텐'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때 1위후보로 끝까지 경합했던 것이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와 바로 윤시내의 'DJ에게'였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이라면 윤시내에게도 '콩라인'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으리라. 가요톱텐에서 10주 이상 연속으로 1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때였다. 조용필 독주의 시대에 오로지 목소리 하나로 그와 경쟁하던 그녀 디바 윤시내였다.

 

참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녀의 한서린 목소리를. 그 한을 토해내던 어느 산골 아낙의 소리마냥 투박하던 노래를. 그러면서도 본능적이면서도 세련된 기교와 감성이 있었다. 윤복희 이후 그녀의 계보를 잇는 듯한 감성과 열창의 보컬이었다. 작년이었던가? 부활의 김태원의 제안으로 콜라보레이션 음원이 발표되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잊고 있던 것이 미안했다. 그토록 그녀의 음악에 매료되어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가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녀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따라부르고 있었다. 어릴 적 여자가수란 김완선 이전 윤시내 뿐이었다.

 

사실 평소 <불후의 명곡>을 즐겨보다가 어느 순간 보지 않게 된 이유였다. 버터에 쇠기름을 볶아 돼지비계를 튀겨낸다. 기름진 것이 입에 달다고 해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질리게 된다. 물론 어떤 것은 기름져서 좋은 경우도 있다. 기름져야 맛있는 음식도 있다. 하지만 굳이 기름질 필요가 없는 샐러드에마저 향신료까지 듬뿍 뿌려 기름진 성찬을 만들려 한다. 탈이 난다. 더구나 필자는 그같은 기름진 음악이 취향이 아니다. 간결하고 담백한 것이 좋다.

 

하지만 오늘은 어울렸다. 사실 전설을 노래한 모든 무대 가운데 그렇게 만족할만한 무대가 얼마나 되었겠는가? 전설이 전설인 이유가 있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더 뛰어나고 재능이 한참  훌륭해도 전설은 전설이기에 전설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로도 재능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 나머지를 <불후의 명곡> 특유의 넘치는 무대가 채워주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도 이렇게나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구나. 그녀는 그때도 이렇게 혼자의 몸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온세상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차지연은 너무 넘쳤다. 윤시내의 열창이 의미있는 것은 누르고 절제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터뜨려도 다 터뜨리는 게 아니다. 남겨도 남기는 것이 아니다. 그 가슴을 옭죄도록 긁는 감수성과는 닮지 않았다. 대신 뮤지컬 배우다운 남는 것 없는 후련함이 있었다. 그것도 훌륭하기는 하다. 비교하며 듣지 않으려 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과연 과거의 윤시내와 비견할 만했다. 단지 시대가 다르고 장르가 다를 뿐이다. 훌륭하다.

 

루나가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블루지하면서도 버라이어티하다. 그래, 윤시내가 한창 클럽무대를 전전하던 시절 어느 무대인가는 저랬을 것이다. 윤시내 자신이 직접 춤을 추지는 않았을 테지만 끈적한 블루스와 재지한 연주와 노래가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목소리가 기름지다. 다른 매력으로 윤시내의 노래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노래의 감성이 다른 것은 시대가 다르고 세대가 다르기 때문일 뿐, 그러고 보니 그 말을 여러번 반복하게 될 것 같다. 상당히 듣기에 괜찮았다.

 

신용재는 욕심이 앞섰다. 노래의 감성을 전달하기보다 무대를 채우는데 더 많은 고민을 한 듯하다. 노래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 뛰어난 노래실력에도 노래가 전하고자 하는 감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노래가 들리지 않는데 무대가 아무리 멋진들 무슨 상관인가? 그렇다고 무대를 보여주기 위한 노래도 아니었다. 도대체 'DJ에게'란 어떤 감정과 이야기를 담은 노래인가를 스스로 이해하고는 있었을까?

 

그에 비해 오히려 전혀 다른 색깔이지만 그것이 '공부합시다'라는 노래라는 사실을 선명히 각인시켜준 스윗소로우는 이제 연륜을 말해도 좋을 때인 것 같다. 그것은 분명 '공부합시다'였으면서 스윗소로우의 노래이고 무대였다. 가장 만족하며 들었던 무대였다. 말이 짧은 것은 만큼 평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톡식이 반가웠다. 혹시나 그랬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TOP밴드> 우승자치고 너무 활동이 저조했다. 그래도 공중파 서바이벌프로그램에서 우승까지 차지했는데 대중에 노출되는 빈도가 너무 적었다. 다른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입상한 이들까지 <불후의 명곡>에 단골로 출연하고 있음에도. 톡식이라면 충분히 대중적인 인기도 담보할 수 있지 않을까?

 

단지 편곡은 이미 <TOP밴드>를 거치면서 경험한 바 있는 익숙한 편곡이었다. 세부적으로야 많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큰 맥락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밴드란 그래서 어렵다. 전문 편곡자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닌 자기가 직접 자기의 음악과 무대를 프로듀스한다. 이것이 바로 톡식의 스타일이다. 부활 역시 수십년을 한 가지 색깔로 자기복제라는 말을 듣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것이 무척 매력적이다. 몇 번을 들어도 그저 감탄할 뿐이다. 분명 이 밴드는 70년대의 사이키델릭한 감성을 제대로 현대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윤시내가 만족을 표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익숙하지만 김치가 익숙하다고 물리지는 않는다. 다만 경계는 필요하다.

 

노을은 글쎄... 크게 욕심이 느껴지지 않는 무대였다. 파격도 없었고, 색다르거나 의욕적인 시도도 없었다. 그냥 노래에 어울렸다. 아마 그것이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이어진 지오의 무대까지 노래 그 자체를 관객에 전달하는 데 충실하려는 듯 보였다. 노래만 들렸다. 노을도 지오도 뒤로 물러서고 노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혹은 편곡자가 그들을 통해 들려주고자 했던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과거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이 말한 노래를 부른다는 의미다. 가장 노래에 충실했다.

 

그러고 보면 오랜만도 아니다. 여기저기 가끔씩 최근 윤시내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건재한 모습이 반갑다. 건강한 듯도 보여 더 반갑다. 그 시대에는 누구보다 젊은 음악을 했는데 그녀도 벌써 늙었다. 하지만 노래는 여전히 그때처럼 젊고 싱그럽다. 오랜만에 후배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과연 얼마나 반갑고 즐거웠는지. 여전히 젊은 노래를 듣는 그 마음은 얼마나 기뻤는지.

 

간간이 자료로 나오는 흑백화면들을 떠올린다. 소리마저 제대로 들리지 않는 낡은 TV로 듣던 그녀의 노래를. 아직 노래를 이해할 수 있기도 전 자연스럽게 따라부르던 그 감수성을. 그리고 이제 HDTV로 젊은 가수들이 그녀의 노래를 새롭게 부른다. 아름답다. 그 말 뿐이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