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무한도전 - 슈퍼7의 좌절과 길의 하차에 대해...

까칠부 2012. 9. 22. 08:40

자본주의란 바로 '돈'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돈, 즉 자본으로 계량된다. 주의란 보편이다. 보편이란 일반이다. 돈이란 곧 이 세상을 이루는 단위이며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이기도 하다.

 

간단히 화가가 한 사람 있다. 대단한 재능과 실력을 가진 뛰어난 화가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대단하고 뛰어난가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그의 그림을 갖기 위해 얼마의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가?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고도 전혀 불만없이 납득할 수 있는가? 당연히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면, 그러고도 전혀 아무런 불평이나 불만이 없다면, 그는 자신에게 더 훌륭한 화가인 것이다.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같은 나무에서 열렸어도 때깔 좋고 맛과 향기가 뛰어난 과일들은 따로 분류되어 고급스럽게 포장까지 되어 아주 비싼 값에 팔려나간다. 같은 박스에 실려온 과일이라도 표면에 상처가 있거나 상품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겨지면 아예 손님에게 서비스로 바구니째 주어지기도 한다. 기껏해야 아주 싼 값에 떨이로 팔릴 뿐이다. 결국은 그런 흠결있는 과일에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사람이란 그다지 없다.

 

스스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하는 작품이다. 이보다 더 훌륭한 작품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겠는가? 필자가 학교 다닐 때 일이다. 필자가 무척 자신있어하고 마음에 들어하던 그림 하나를 무슨 생각에선지 아는 선배에게 헐값에 팔아넘기려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선배가 들려준 말이 있다.

 

"너는 네가 그 그림에 들인 노력이나 정성마저 그렇게 싸구려로 팔아치울 셈이냐? 그것은 그 그림을 사가는 사람에게도 실례인 거다. 차라리 공짜로 주면 주었지 네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비싼 값을 받아라."

 

값이 싸지면 그것이 갖는 가치 역시 싸지고 만다. 그것에 들인 자신의 노력이나 정성 역시 값싸지고 만다. 500원짜리 그림은 500원의 가치밖에는 없다. 500원짜리 그림은 그 그림에 들어간 노력과 정성까지 500원짜리에 불과한 것이다. 거꾸로 500원밖에 받을 수 없다면 그 그림에 들어갈 노력과 정성 역시 500원을 넘어서기 힘들다. 역시 자본주의의 엄격한 논리 가운데 하나다. 초소한 10만원을 받을 계산을 하니까 그만큼 철저하게 사전준비를 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기울인다. 5만원짜리라면 그에 맞춰 모든 것을 준비한다.

 

연습기간만 무려 9개월이다. 말이 9개월이지 연예인이란 시간이 곧 돈인 사람들이다. 더구나 <무한도전>의 멤버들은 하나같이 부르는 곳이 많은 바쁜 연예인들이다. 만일 연습할 시간에 스케줄을 하나 더 잡았다면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기대수익을 포기하고 오로지 연습에 매달렸다. 물론 다른 일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시간을 내서 공연을 위한 연습에 몰두했다. 그들의 연소득을 생각해 봤을 때 그들의 그 9개월의 시간에 대해 얼마의 비용을 계량할 수 있을까?

 

2만석 규모에, 티켓값만 VIP석 13만원, 그 규모부터가 놀랍다. 어지간한 톱아티스트도 이런 대규모의 공연은 꿈조차 꾸지 못한다. 그저 <무한도전>의 이름값에만 기댈 것이 아니었다면 그 과정에서 들여야 했을 노력이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설비며 장비며 인력이며 하나같이 돈이다. 공연 이틀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댄서가 있다면 댄서들 역시 손발을 맞춰야 할 테고, 세션이 있다면 그들과도 사전에 연습을 끝마쳐두어야 한다. 각 파트의 스텝들 역시 일찍부터 공연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그 비용은 다 어디로 계산할까?

 

그동안 <무한도전>이 그랬듯 무료공연을 기획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의 무료공연이 사실 무료공연이 아니다. 그동안의 <무한도전>의 시청률에 기댄 광고수입으로 다시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고 방송국차원에서 그 비용을 대신 투자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방송국이 바로 스폰서였던 셈이다. 그리고 시청자 자신은 <무한도전>의 광고를 산 광고주의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그 비용을 대신 지불해준다. 이번의 공연은 단지 그렇게 간접적으로 비용을 지불하던 것을 직접적으로 지불하는 것으로 바뀐 것 뿐이다. 광고주도, 광고주를 등에 업은 방송국이라는 스폰서도 없이 <무한도전>의 멤버들과 시청자가 직접 만난다. 그런데 무료다. 그러면 그 모든 비용은 다시 어디에서 계산되어 나오는가?

 

<무한도전> 멤버들이 무료공연을 할 것이라면 다른 방법이 없다. 물론 어느 정도 <무한도전> 멤버들 스스로 추렴해서 제작비를 댈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도 기대할 수 있는 수입이 없는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선사업은 그나마 없어서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지금처럼 단지 공연을 더 싸게 보고 싶은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인기프로그램의 출연자라고 하더라도 시청자를 위해서 베풀 수 있는 선의란 어느 정도를 넘어서기 힘들다. 그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팬들을 위해 조촐하게 그저 들일 수 있는 성의 만큼만 노력해서 보여주는 것을? 하지만 <무한도전> 멤버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마 거기서 어긋나고 있었을 것이다. 정확히는 <무한도전>의 팬 가운데 그러한 멤버들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멤버들이 팬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 팬들과 어떤 것을 공유하고 싶어하는지, 무엇보다 그것을 자신들이 얼마나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지. 13만원이라는 VIP석 티켓값은 그런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했으니 기꺼이 비용을 치르고 보러 오라. 하지만 일부 팬들에게 <무한도전>의 멤버들이란 자기 안의 <무한도전>만의 멤버들이었다. TV라고 하는 미디어를 통한 소통의 허상이라고나 할까? 팬이니까 이해해주리라 믿었지만 팬들이 정작 보고 있었던 것은 TV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 보여지는 멤버들이었던 셈이다.

 

어처구니없는 헤프닝이라 할 것이다. 사실 <무한도전> 멤버들과 공연을 주최한 '리쌍컴퍼니'의 의도는 상도의적으로도 옳다 할 수 있다. 유재석이라면 국내 연예인을 통틀어 인기와 인지도에서 감히 견줄 이가 없는 톱레벨의 스타연예인일 것이다. 박명수와 정준하, 하하, 노홍철등 멤버들 역시 개개인으로서는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무한도전>의 멤버로서 그들을 거론할 때 역시 인기와 인지도에서 그들을 따라갈 수 있는 연예인이 그리 흔치 않다. <무한도전>에서는 부진해도 리쌍의 길과 개리 역시 음악인으로서는 그 평가가 전혀 다르고. 그런데 그런 이들이 한꺼번에, 그것도 9개월이나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공연의 티켓값이 너무 싸다. 그렇다면 그들만 못한 인기와 인지도, 그들만 못한 준비와 장비에도 공연을 열어야 하는 다른 연예인들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이승환도 말했었다. 공연에 관객이 갈수록 줄어들지만 자신이 내리면 모두가 힘들어지니 내리지 못한다. 부활도 관객이 두 자리 숫자를 맴돌 때 너무 관객이 없어서 콘서트를 취소하면서도 7만원대의 티켓값을 유지하고 있었다. 부활만한 인지도와 연륜을 가진 밴드가 스스로 격을 낮추면 다른 밴드들이 힘들어진다. 대기업에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면 그만큼 비싸게 받아야 중소기업에서도 그보다 못한 제품으로 경쟁할 엄두가 난다. 광고까지 크게 때리는 대형프렌차이즈 치킨업체에서 동네치킨보다 싸게 값을 받으면 동네치킨가게는 아예 문을 닫아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재석이 나서는데 그렇게는 못한다. 차라리 공짜로 하면 모를까. 하지만 과연 공짜로 하는 공연에 이번처럼 오랜기간 많은 정성과 노력을 끝까지 기울일 수 있었을까? 공연의 규모나 수준 또한 조정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기는 그래서 갈수록 공연으로 먹고 사는 아티스트들이 힘들다 하소연해오고 있는 것일 게다. 공짜공연들이 너무 많다. 일단 TV는 공짜다. 방송국이나 지자체등에서 주최하는 공연들이 모두 공짜다. 그러니 공짜가 당연한 것으로 안다. 돈을 내는 것이 익숙지 않다. 어색한데다 너무 비싸다. 공연을 보러 가지 않는다. 바로 이번처럼. <무한도전>에서 그동안 공짜콘서트를 너무 많이 열었던 탓에 이제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공짜콘서트가 절대 공짜콘서트가 아니라는 자본주의의 당연한 원칙을 쉽게 간과해버린 때문이다.

 

연습도 돈이고 준비도 돈이다. 공연 자체도 모두 돈이다. 그래서 대부분 아티스트들은 한 번 공연에 썼으면 그 장비들을 고스란히 다음 공연에도 가져다가 쓴다. 서울에서 한두번 공연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시작하면 전국을 일단 한 바퀴 돌고 본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공연을 여는 것도 비용이지만 준비하는 것도 비용이다. 그 비용이 어쩌면 더 크다.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다시 티켓값에 여유를 둘 수 있기도 하다.

 

공연을 보는데 돈을 지불하는 자체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보다는 정확히 어떠한 것에 대해 기꺼이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대전제에 대해 아직 전혀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이 아직까지 없다. 근대의 시작이다. 개인이란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주체일 것이다. 배타적인 소유야 말로 사유재산이고 자본주의의 근간이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재능과 노력은 그들 자신의 것이지 시청자의 것이 아니다. 그들 자신의 실력과 의도란 온전히 그들 자신의 소유이지 시청자가 마음대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자본이라고 하는 가치를 매개로 공유할 수는 있다. 그것이 공연이다. 하지만 TV는 공짜로 다만 시간만 들여 본다.

 

괜한 길만 다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무한도전> 마니아들로부터 그동안 집요하게 공격받아왔던 길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번 공연을 주최한 '리쌍컴퍼니'의 대표로서 모든 책임이 뒤집어씌워지고 있었다. 결국 방송하차를 결정하고 말았다. 길과 함께 같은 리쌍의 멤버인 개리 역시 방송하차를 결심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바라는 <무한도전>의 순수성인가?

 

야만이란 다른 것이 야만이 아니다.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면 야만이다. 들을 수 있도록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야만이다. 특히 광적인 팬덤문화의 야만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다. 그리고 자유국가다. 잊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이 <무한도전> 멤버들의 콘서트 개최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표를 구입하지 않음으로써 타격을 입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가격이 부당하다면 티켓을 팔리지 않을 것이고 주최측은 요금을 내리게 된다. 그것을 일방적인 폭력으로 해치려 하고 있는가. 그 가운데는 티켓값에 동의하며 공연만을 기다리던 다른 선량한 팬들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한국 특유의 오지랖문화가 가져오는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해야 한다. 내 뜻대로 해야 한다. 남의 말이나 사정따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선하다. 정의롭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누가 피해보고 누가 이득을 보았는가. 정작 진정으로 화가의 재능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공짜로 그림을 선물하는 것보다 더 비싼 값을 지불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그림을 보여주는 쪽을 더 기뻐할 것이다. 진정한 오지랖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상대의 입장에서 그를 위해 생각한다.

 

동요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개월 전심으로 노력해온 공연이 무산되었고, 더구나 몇 년을 함께 해온 멤버가 그로 인해 떠밀리듯 그만두었다. 상처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프로라는 것이다. <무한도전>은 개인적으로도 무척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안타깝다.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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