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자기를 벌주고 싶었다. 그때 그녀를 붙잡지 못한 어리석은 자신에게. 그녀를 지키지 못했고, 그녀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지도 못했다. 죽지조차 못했다. 멀쩡히 살아 지금도 자신은 숨을 쉬고 있다. 화가 난다. 원망스럽고 한심스럽다. 도대체 어째서 자기란 이 모양인가?
그래서 함부로 내굴렸다. 땡처리하듯 자신을 떨이로 내놓았다. 쓰레기통 속에 오물들과 함께 그의 영혼이 굴러다닌다. 그것이 좋다. 그것이 어울린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주위에 상처를 주리라고는, 더구나 그녀가 다시 순백의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오리라고는 그는 전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자기만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자신만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랑이란 그렇게 이기적이다. 홀로 사랑하고 홀로 좌절하고 홀로 상처입고 홀로 고통스러워한다. 당사자야 죽기보다 더 심각할 테지만 주위에서 보기에 그것은 그저 괜한 궁상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곤하고 답답하다. 정작 자기를 생각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조차 사랑에 취해버린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서는 상처입는 상대의 모습에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스스로 입고 만다. 아파하고 슬퍼하는 모습에 도리어 더 자신이 아프고 슬퍼서 그것을 벌이라 생각한다. 내가 아프다. 내가 고통스럽다. 아마도 그 순간 모든 기억을 잃고 오로지 자기를 사랑했던 한 가지 기억만을 쫓아 자신을 찾아온 서은기(문채원 분)를 매정한 말로 돌아세우며 강마루(송중기 분)는 오히려 서은기보다 더 큰 상처를 스스로에게 입히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으로 족하다. 자기란 이것 밖에 안되는 존재다. 서은기에게 자기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깨닫고 만다. 자포자기하여 함부로 굴리는 자신의 모습에 오히려 더 크게 상처받은 것은 정작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 자신을 사랑해주는 바로 그들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이복누이 초코(이유비 분)는 집을 나갔고, 유일한 친구 박재길(이광수 분) 또한 화를 내며 그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다. 진심인 것이다. 진심으로 화를 낼 정도로 그들은 진심으로 지금의 자신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강마루는 자신이 그렇게 매몰차게 돌려보낸 서은기를 생각할 여유를 갖는다.
단지 사랑보다 상처가 더 깊었을 뿐이다. 서은기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서은기를 사랑하기때문에 느껴야 했던 좌절과 고통이 더 컸을 뿐이다. 절망에 가려 정작 사랑하는 서은기가 보이지 않았다. 서은기를 사랑하는 자신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마저 내던지려 한 그다. 충분히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터임에도 그는 자신의 몸을 그대로 방치한다. 그 순간에조차 강마루는 자신의 죽음따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야기한다. 지금도 그럴까? 자신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주는 초코와 박재길을 보고서도, 그리고 서은기를 구하려 달려가면서도. 그때도 그는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오히려 서은기는 편하다. 완전 백지다. 모든 기억을 잃었다. 강마루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가로막을 모든 것을 기억화 함께 잃어버리고 말았다. 서은기라는 이름마저 잊었다가 겨우 주위를 통해 돌려받았다. 사고가 있기 전 그녀가 받았던 상처나 그로 인해 느껴야 했던 절망까지 그녀는 모두 잊어버렸다. 어쩌면 그것이 더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여전히 이토록 아름다운데 자신은 온통 오물투성이에 추악한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조차 서은기나 주위에 더 큰 상처가 되리라는 것을 모르는 채.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 그러나 바보의 사랑은 지극히 올곧고 순수하다. 그들은 바보다.
계기가 되어준다. 적절한 때 필요한 계기가 마련된다. 강마루 자신이 서은기를 찾아가기는 어렵다. 서은기가 다시 강마루를 만나려 오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한재식(양익준 분)이 나선다. 한재식의 악의가 강마루로 하여금 다시금 서은기를 느끼도록 만든다. 한가하게 자학이나 하고 있을 여유따위는 없이 당장에 서은기가 놓인 위기를 느끼고 그를 쫓도록 만든다. 더 이상 그의 머릿속에 좌절이나 절망 따위는 없다. 자시에 대한 분노나 원망 또한 없다. 오직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한 가지 뿐이다. 서은기가 무사한 것. 무사한 서은기를 다시 만나는 것. 절박함이 그를 움직이도록 만든다. 그들은 다시 만난다.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자 가장 큰 징벌일 것이다.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안다.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벌어질 것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일지를. 인간의 이성은 도덕적인 판단을 하라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재희(박시연 분)는 누구보다 이성이 발달한 인간이다. 자신의 추악한 욕망과 그 욕망에 이끌리는 나약함을 어느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죄에 이끌리는 자신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악해서 악해지는 것이 아니다. 악해서 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강마루가 악해서 그렇게 서은기에게 독한 말을 퍼부은 것이 아니었다. 원래 악한 인간이라서 사기를 치고 협잡을 하고 온갖 죄에 발을 담그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약해서였다. 약해서 쉽게 자기를 포기하고 그런 자신과 타협하고 만다. 만일 강마루 또한 한재희처럼 혼자였다면 그는 한재희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쉽게 죄의 유혹에 빠져들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강마루에게는 자신을 구원해 줄, 자신을 비춰볼 거울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를 구차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든다. 한재희에게는 안민영(김태훈 분)밖에 없다. 나약한 인간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합리화하며 그렇게 죄의 수렁으로 함께 빠져든다.
기억을 잃고 이제는 태산그룹에서의 기반마저 잃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서은기에게 자신을 구속하던 족쇄였는지도 모른다. 하얀 옷을 입고 강마루의 앞에 나타난 그 모습처럼 모든 것을 잃은 서은기는 오로지 자기의 감정에만 솔직하면 되는 순백의 자유로운 존재일 것이다. 자신의 모든 존엄과 자존과 양심을 헐값에 쓰레기통에 굴리며 강마루 또한 알몸이 되어 수치스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있다. 옷이 필요하다. 알몸으로 마주해도 좋은 것은 태초의 에덴동산이면 족하다. 서로 옷을 찾아가는 과정일까?
응징이니 복수니 하는 것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지 모른다. 한재희 정도는 아무렇게든 혼자서 알아서 살아가면 그것으로 좋다. 그만큼 지금의 강마루와 서은기는 서로에게, 그리고 서로에 대해 너무나 간절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그런 그들이 한재희와 맞설 정도라면 그만한 계기가 있어주어야 한다. 한재희의 폭주는 멈출 줄 모른다. 그것을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 한재희에게 주어진 불행이며 저주일 것이다. 이제는 그녀 자신도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만나고 만다.
감정선이 좋다. 하기는 주인공들의 외모만으로도 TV화면이 온통 가득찬 느낌이다.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집중하는 가운데 그 미묘한 감정의 선에 스스로 동화되고 만다. 강마루가 느끼는 절망에. 서은기의 서러울 정도로 순백한 솔직함에. 그리고 한재희의 지독스런 모멸감도. 살아있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인물들이 살아있으니 드라마도 살아있다.
강마루와 서은기가 다시 만난다. 한재희는 더욱 그들로부터 멀어지며 그들에 다가서고 있다. 가장 먼 곳에서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다음주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필연이 운명이 된다. 드라마는 운명이다. 재미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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