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둔 역사드라마가 아님을 알겠다. 그보다는 단지 조선이라고 하는 실재했던 시대의 이미지만을 차용한 판타지 드라마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기는 그렇기 때문에 비천한 마의의 신분이었던 백광현(조승우 분) 도성 최고의 명문가의 숨겨진 후손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파란만장한 주인공의 어린시절은 드라마가 지향하는 지점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타인(異他人) 마을이란 본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행복해 온 일본인들을 따로 남산 아래에 모여 살도록 함으로써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조선 전기 일본과의 무역을 위해 설치된 왜관과는 그 목적이나 성격에 있어 달라도 너무나 크게 다른 곳이었다. 주로 귀화한 일본인들이 살았고, 조선 현종 때면 그나마 귀화한 1세대로부터 2세대 이상 흐른 뒤였을 것이다. 조선 전기의 왜관조차 명목상 관수왜라 하여 일본인의 통제 아래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편의에 의한 것일 뿐, 왜관에 대한 모든 내용을 조선 조정이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처럼 조선인이 마음대로 왜관으로 드나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물론 이타인 마을은 왜관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조선에 정착한 귀화한 일본인의 마을이었다.
일본인만이 아닌 중국인과 아랍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한 데 어우러져 북적이고 있다. 아예 집이며 사람들의 차림이며 모두 일본의 그것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백광현이 다시 강지녕(이요원 분)과 만나는 계기가 되어주는 이타인 술집은 일본풍이라기보다는 중국의 주루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현대의 이태원을 모델로 삼은 것일까? 과거의 이타인 마을이 현대의 이태원이 된 것이 아니라, 현대의 이태원을 모델로 과거의 이타인 마을을 재구성했다. 근대 중국의 상해나 홍콩과 같이 열강에 조차된 치외법권적인 지역으로 말이다. 조선의 관청이 방관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는 태연히 조선의 - 그것도 상당히 지체있어 보이는 여인들을 희롱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주점에서 일대 활극까지 벌어졌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귀화한 일본인에게까지 무시당하는 한심한 나라였는가?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렇게 조용히 있다가 공주의 한 마디에 다른 곳도 아닌 내금위가 나서서 일본인들을 잡아들이는 장면이었다. 일본인들만이 아닌 백광현 일행마저 잡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고문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죄가 있으면 일반인인 경우 포도청을 통해 잡아들이면 된다. 아니면 한성부 내의 일이니 한성부에서 주관하여 체포하여 조사할 것이다. 왕이 개인적으로 명령을 내릴 때도 그렇게 한다. 만일 그같은 절차를 무시하고 심지어 왕족이 제멋대로 사람을 연행하여 처벌하려 할 경우 사대부들의 탄핵상소가 이어진다. 척족이 발호할 것을 걱정하여 공주를 떠넘기듯 별볼일 없는 사대부들과 결혼시키던 조선시대였다. 왕족은 왕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감히 정치에 대하 한 마디 하는 것조차 금기시되고 있었다.
조선은 대의와 명분에 의해 지배되던 나라였다. 영정조를 거치며 도성의 벌열이 지방의 산림과 분리되기 전까지 경국대전이라고 하는 최고의 법전을 중심으로 한 대의와 명분에 의한 논리와 체계는 조선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왕이 누군가를 처벌하고 싶다고 해도 내금위를 움직여 사사로이 체포하거나 벌을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먼저 형조를 통해야 했고, 의금부를 통해 공식화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직 죄상도 명확하지 않은데 고문부터 하는 것은 또한 법도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공주가.
하기는 그런 사정을 백광현 따위가 알았을 리 없다. 일개 천한 말목장 노비에 불과한 백광현에게 공주란 그저 높은 사람이지 조선이라는 사회가 어떤 체계와 어떤 절차를 통해 죄인을 잡아들이고 처벌하는가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을 리 없었다. 공주라니까 그저 높은 사람이겠거니, 그리고 그런 높은 사람이 잡아들이라 했으니 이제는 죽겠거니. 아마도 백광현이 그 자리에서 버티려 했다면 숙휘공주도 뒷말이 두려워 그를 고이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랬어야 한다. 이타인 마을에서 숙휘공주를 위협한 일본인들을 잡아들이는 모습에서 그같은 기대가 얼마나 허무한가를 이미 깨닫고 있지만 말이다.
더구나 당시 조선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현안은 다름아닌 대국 청과의 관계였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물론 내치는 위정자에게 있어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내치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도 외교 또한 결코 소홀할 수 없다. 역대 중국의 왕조들은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결코 대등한 외교관계라는 것을 용납지 않았었다. 신하를 자처하던가, 아니면 아예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하던가. 그나마 일본은 바다라고 하는 천혜의 방벽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과 바로 육로로 이어져 있었다. 그 육로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청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힘의 차이가 명백한데 왕으로서 자존심만 세우고 있을 수 있을까?
그래서 조선 내부에서도 조선후기 호락논쟁이라고 하는 중요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청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현실적인 힘으로서 청의 존재를 인정할 것인가? 어디까지나 오랑캐가 세운 변방의 국가로서 단지 조선을 침략하여 수치를 준 원수로서만 볼 것인가? 조선의 청에 대한 입장이란 그렇게 드라마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러면서도 어디까지 실재하는 위협으로써 조선의 역대 국왕과 조정은 청과의 관계에 매우 깊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말 한 마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황제에게 바칠 말이라는데 왕이 할 말이 아니다. 고작 말이라니.
하지만 그보다 더 고약한 것은 아니나 다를까 반복되는 흔한 클리셰 가운데 과거 <허준>의 영광을 다시 되돌리려는 듯한 백광현에 대한 시련과 시험의 시퀀스였을 것이다. 청의 사신이 황제에게 진상하겠다 낙점한 명마가 병에 걸리고, 그에 백광현이 속해 있던 목장이 연루되며 은인이나 다름없는 마의가 자칫 죽임을 당할 위험에 처하고 만다. 그러자 마의를 구하기 위해 백광현은 병에 걸린 말을 살리겠다 내의원 도제조 이명환(손창민 분)과 약속을 하고 만다. 그것도 사흘이라는 시한을 두고. 만일 치료하지 못한다면 백광현 또한 죽임을 당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 아니던가. 결국 그렇게 흘러가는가?
사실 굳이 역사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역사를 무시하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의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역사를 바꿔가며 쉬운 자기의 이야기만을 고집한다. 그렇다 보니 백광현의 시련과 시험 같은 동어반복도 나타나고, 백광현의 어린시절 같은 흔한 클리셰도 나타나게 된다. 역량의 부족이 아닐까. 자신감을 잃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없는데 굳이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은 때로 시청자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그저 머릿속에만 있다. 조선이라고 하는 시대도 배경도 그리고 백광현이라고 하는 인물들도. 현실에 있지 않으니 모호하고 평면적이다. 디테일은 실제와 동떨어지고 인물들은 뻔한 대사만을 반복한다. 생각한 가장 최악의 상황이다. 실제의 인물인 백광현마저 그렇게 흔힌 무협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원수와 만나고 옛사랑과 만났으니 이제 통쾌하게 복수할 일만 남았는가. 드라마는 재미만 있으면 된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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