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재미없다.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던 연인이었다. 죽음이 끝내 그들을 갈라놓았지만 그들은 시공을 뛰어넘어 환생을 통해 다시 부부로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부부가 되어 다시 만난 그들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지독한 역설을 통해 묵직한 질문을 던져본다.
그런데 아니었다. 알고 보니 운명적인 사랑이란 단지 나여옥(김정은 분)의 전생인 사유리의 착각이었다. 이미 전생에서 고수남(신현준 분)의 전생인 주환은 유부남이었고 그때 주환의 아내가 바로 현생에서 그와 내연관계에 있는 빅토리아(한채아 분)의 전생이었었다. 죽고 나서야 사유리는 그같은 진실을 알게 되었고 자기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유리의 깊은 원망과 저주가 현생에서 그들을 부부로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
결국은 현생이란 전생의 연장이 되어 버리고 만다. 전생에서 그토록 지극한 사랑을 했는데 현생에서 원수가 된 것이 아니라, 전생에서 이미 서로 원수가 되어 현생에서 부부로 만났던 것이다. 둘은 서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며 원망하고 배반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운명이 되어 버린다. 어긋난 운명을 되돌린다.
어쩐지 드라마가 흔해지는 느낌이다. 전생의 인연이 현생으로 이어지고, 전생의 업이 현생의 삶을 결정하고, 부부라고 하는 현실의 문제보다 오히려 이제는 흔적조차 없는 전생의 일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고수남과 나여옥 부부가 그토록 서로를 외면하고 살아온 것이 과연 전생의 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현생에서의 현실의 문제였을까? 더구나 마치 오래전 아이들용 만화영화를 보는 듯 매 회마다 고수남 나여옥 부부의 비장하기까지 한 교훈이 이어진다. 몸으로 부딪히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알고 이해하고 설명한다.
코미디가 되어 버린다. 하긴 이미 코미디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진한 페이소스와 현실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있었다. 현실의 부부들에 대한 가볍지만 진지한 경고와 조언이 있었다. 그러나 고수남과 나여옥의 진지한 서술에서 그것은 흔한 캠페인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렸다. 공익광고에도 코미디는 있다. 무대 역시 호텔로 옮겨지며 나여옥의 슬랙스틱마저 더해진다. 여전히 나여옥은 아줌마인 채로다. 그녀가 바뀌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좋은 드라마란 반전이 있어야 한다. 놀라고 당황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로부터 감탄이 나온다. 감탄이 감동이 된다. 전생에 그런 인연이 있었으니. 전생으로부터 이어진 현생에서 당연히 그리 인연이 닿는 것이다. 설명이 너무 상세했다. 교훈 또한 너무 자세했다. 시청자는 아이가 아니다. 더구나 드라마의 주시청자층일 대부분의 부부들은 당연히 이미 성인일 것이다. 조금은 자세를 낮춰 시청자를 대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빅토리아와 나여옥이 얽힌다. 아무래도 필자로서는 빅토리아에게 이입되는 것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월하노인보다는 무산신녀에 더 가깝다. 관계에 따른 의리보다는 개인으로서의 순수한 감정에 더 무게를 둔다. 하물며 빅토리아처럼 지순하고 올곧은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고수남에게 무엇보다 간절히 필요한 것이라면. 이 드라마가 갖는 강점이며 위험요인일 것이다. 혼외정사의 내연관계인데 그것이 너무 순애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과연 그 끝을 어떻게 그러낼까 벌써부터 걱정되려 하고 있다.
하루 사이에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은 뻔한 이야기라는 실망감 때문일 것이다. 전생의 비중과 나여옥이 된 고수남이 호텔가지 찾아가는 모습에서 어쩌면 이후의 전개를 짐작해 버린 때문인지 모르겠다. 놀라게 해야 한다. 기대를 배반해야 한다. 어떤 모습으로 다음주 필자의 식어버린 흥미를 다시 되돌릴까. 뻔한 이야기처럼 사람의 기운을 빠지게 하는 것은 그다지 없다.
김정은의 나여옥이 아닌 신현준의 나여옥이다. 신현준의 고수남이 아닌 김정은의 고수남이다.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그래서 원래의 나여옥과 고수남의 장면도 최소화했다. 하지만 그 갭을 좁히는 것도 드라마가 해결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신현준이 고수남이 되고 김정은이 나여옥이 되었을 때의 어색함은 분명 드라마가 갖는 문제일 것이다.
소재가 좋다. 아니 소재 자체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그것이 문제다. 그것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제는 전혀 특별하지 않게 여겨진다. 소재의 독특함이야 말로 드라마의 강점이었는데 이제 배우들의 연기만이 남았다. 아쉽다. 실망이 크다. 안타깝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504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착한 남자 - 두 개의 시한장치,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절망과 체념... (0) | 2012.10.19 |
---|---|
착한 남자 - 시련과 시험, 강마루 서은기 옆에 서다! (0) | 2012.10.18 |
마의 - 역사가 아닌 판타지, 상상력이 결여된 빈곤함을 보다. (0) | 2012.10.17 |
마의 - 어른이 되어 만난 백광현과 강지녕,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다. (0) | 2012.10.16 |
울랄라부부 - 월하노인vs무산신녀, 어째서 부부는 연인을 꿈꾸는가? (0) | 2012.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