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히 신중현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시작이며 끝이었다. 전부였다.
태초에 이 땅에는 매우 단순한 멜로디와 리듬만이 불려지고 있었다. 누구나 쉽게 따라부를 수 있지만 그 만큼 친숙한 대신 투박한 음악이었다. 그때 바로 이 땅에 서구의 대중음악이 이미 이루고 있던 복잡하고 현란한 멜로디와 리듬을 꽉 짜여진 사운드에 실어 들려준 이가 있었다. 블루스의 끈적임과 록의 강렬함, 그리고 소울의 울림, 그러나 그의 음악의 뿌리를 이룬 것은 다름아닌 전통가요인 트로트였고, 전통의 음악인 국악이었다. 지금도 그의 음악을 들으면 수백년 전 어느 농민에게서 시작된 듯 익숙한 공명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이번 <불후의 명곡:왕중왕전>의 경연을 보며 가장 크게 불만을 가졌던 부분이다. 서구의 세련된 멜로디나 리듬, 사운드와 함께 신중현의 음악을 채우고 있던 것은 바로 다름아닌 한국의 정서와 한국의 전통음악이었다. 신중현이 처음 결성한 밴드 '핑거 훠'의 음반이 트로트로 채워져 있듯 그는 철저히 이 땅에 뿌리를 둔 음악을 하고 있었다. 강민경이 부른 '꽃잎'만 하더라도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은 완성도 높은 멜로디 가운데 마치 어느 시골아낙의 청승마냥 들려오는 울림이 있었다. 국악의 전통적 양식에서 벗어나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은 국악을 채우고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강민경의 '꽃잎'은 그저 가요였다.
하기는 시대가 바뀌었다. 신중현이 전성기를 보냈던 1960년대는 아직 전통의 가치와 문화가 뿌리깊게 살아있던 시절이었다. 그는 그것을 보고 듣고 몸으로 체화하며 자랐을 것이다. 그리고 서구의 앞선 세련된 대중음악들을 접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에는 그 두 가지가 녹아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학교에서밖에는 그같은 음악을 들을 기회가 없다. 신중현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고초는 신중현 이후를 단절되게 만들었다. 혹독한 시련 속에 신중현을 닮고자 하는 시도마저 끊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신중현의 시대에는 당연하던 것이 지금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더 세련되게. 더 화려하고 멋지게. 아쉽지만 그것이 바로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하고 있었다. 대체 한국적 록이란 무엇인가? 하지만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많은 음악인들이 고민한 그것을 60년대와 70년대 신중현은 가장 완성된 형태로 선보이고 있었다. 전래의 '장타령'을 훌륭히 록음악에 접목시킨 -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최고의 기타리프로 손꼽히는 '미인'은 그런 점에서 한국적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최고의 록음악이라 할 것이다. 누구나 쉽게 듣고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그러나 동시대에 가장 선구적이던 음악. 그의 연주와 사운드는 국내가 아닌 해외의 일류음악인들을 경쟁상대로 두고 있었다. 그러나 한창 전성기를 누렸어야 할 시기에 정치적인 이유로 철저히 그 재능을 사장해야 했으니. 시대의 불행인 동시에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불행이라 할 것이다. 그가 만일 10년만 더 자신의 재능을 한국 대중음악을 위해 쓸 수 있었다면...
아무튼 신중현의 음악이 그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높은 평가와 더불어 대중적인 인기까지 모두 거머쥘 수 있었던 비결이라 할 것이다. 철저히 한국인의 토속적 정서와 맞닿아 있었다. 그것은 신중현 자신의 뿌리이기도 했었다. 신중현이라는 뿌리를 통해 그의 음악은 화려하게 가지를 뻗고 잎이 무성하게 달리며 마침내 열매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가장 세련된 음악을 선보이고 있으면서도 그 정서는 철저히 대중에 기반하고 있었다. 대중이란 바로 한국인 자신을 뜻한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의 음악을 세련된 선진음악의 방식으로 들려주었다. 매료되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파천황 그 자체였던 신중현은 세시봉출신들이 이끌던 다운타운의 포크문화와 더불어 한국 대중음악 - 아니 나아가 한국대중문화 자체를 크게 바꾸어놓기 시작한다. 여전히 주류는 트로트였지만 그 사이로 전혀 새로운 형식이 대중들에게 소개되고 사랑받기 시작했다. 당대의 최고여가수였던 김추자가 바로 신중현 사단의 소속이었다. 신중현에게 발굴되어 신중현이 쓴 노래를 불렀던 그녀는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가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언제고 <불후의 명곡2>에서도 그녀를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80년대를 지나 90년대 한국대중음악이 전성기를 열게 된 것도 결국은 신중현을 필두로 미 8군무대를 통해 서구의 선진음악을 체화하고 주류음악으로 들어선 일군의 음악인들의 존재가 있을 것이다. 조용필과 윤수일도 미군무대에서 기타를 치던 기타리스트였다. 심수봉은 드럼을 쳤었다. '오동잎'으로 유명한 최헌은 히식스 시절 최고의 소울가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김희갑과 신병하는 작곡가로서도 유명하다. 그 물꼬를 튼 이가,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이가 바로 신중현이었다. 그에 의해 지금의 한국대중음악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가 있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었다. 조금 더 일찍 신중현을 <불후의 명곡2>에 전설로써 모셨어야 했다. 아니면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진정 파이널에 어울리는 최고의 전설로써 모두의 동의 가운데 프로그램에 소개되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어쩐지 끼인 느낌이다. 그렇게 아무러하게 지나가기에는 그의 존재가 너무 무겁지 않을까? 다행히 가수들이나 청중들이나 시청자나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에이미는 '리듬 속의 춤을'이라는 노래의 본질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노래의 중간 브레이크에서 보여준 군무는 결코 길지 않으면서도 노래 전체를 아우르며 강한 인상을 남겨주고 있었다. 노랫속의 그가 춤을 추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에 비하면 강민경은 단지 노래를 잘했을 뿐이지 않은가. 노래를 잘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저 잘할 뿐이라는 것이 이번에는 한계로 작용했다. 너무 잘 부르려고만 한다.
려욱의 무대에서 같은 슈퍼주니어의 멤버 신동이 준비해 보여준 퍼포먼스는 차라리 감동이었다. 아련하다. 저무는 노을 같고 막 서쪽 하늘에 보이기 시작한 별빛과도 같다. 지난 추억과 같고 지금의 그리움과도 같다. 노래도 훌륭하다. 성훈이 부른 '님아'는 원래 클럽에서 춤추고 놀려고 만든 노래다. 당시로서는 매우 빠른 비트와 복잡하게 쪼개지는 박자가 사람들의 흥을 돋운다. 그러면서도 노래에 실린 처량한 정서는 한국인의 정서 그것이다. 논다고 하는 본질에 충실한 그의 노래는 어쩌면 신중현이 바라던 그것에 닿아 있지 않았을까.
노브레인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김추자의 화끈한 춤사위만큼이나 화끈했다. 파월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 파월장병들의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 마치 잔칫집처럼 기쁘게 웃고 즐기며 반기기 위해. 그러나 조금은 지나쳤다. 노브레인은 역시 오버하는 게 맛이다. 김태우의 '아름다운 강산'은 마치 안개가 낀 듯한 원래의 '더 멘' 버전의 사이케델릭한 '아름다운 강산'이나 행진곡풍의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과도 다른 경건한 마치 성가와도 같은 분위기였다. 같은 노래도 대하는 느낌이 이리 다를까? 어쩌면 '아름다운 강산'이 가리키는 대상보다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노래에 대한 경의가 앞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동엽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웃음으로 녹아들게 만든다. 웃기는 것이 아니다. 녹아들게 만드는 것이다. 사소한 머리모양에 대한 대화에서 이 위대한 노음악인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주눅들지 않고 대중과의 교감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는 진정 천재방송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무대로 손꼽고 싶은 것은 려욱의 '나는 너를'이었다. 어째서 무대 위에서 음악인들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가. 절로 입을 벌리며 보고 있었다. 자신의 환상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련한 기억 속에. 먼 감상 속에. 노래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에일리. 그녀는 단연 최고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이제서야 나타난 그녀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김완선과는 다른 격정과 춤에 대한 충동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하기는 어느 무대가 마음에 안들었을까?
가수들의 아옹다옹이 보기 좋다. 서로 견제하며 서로에 대한 경의를 잊지 않는다. 서로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도 가수로서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놓지 않는다. 동업자란 그런 것이다. 음악이라는 한 가지가 그들을 끈끈하게 이어준다. 대선배가 그들의 앞에 있다.
오랜만에 그리운 음악들을 들었다. 다시 원곡을 듣고 싶어졌다. 투박한 것이 필자의 스타일이다. 아름다운 강산만도 신중현 자신이 편곡한 것만 여러 버전이 있다. 가수마다 다르다. 아마 다 듣는데만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신중현이 반갑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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