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불후의 명곡2 - 전국노래자랑, 불후의 명곡이란 무엇인가.

까칠부 2012. 11. 4. 09:26

뒤통수를 제대로 세게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째서 이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 <불후의 명곡2>의 제작진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야말로 '불후의 명곡'이었다. <전국노래자랑>이라니.

 

누군가 말했다. 어떤 노래를 명곡이라 생각하는가? 히트곡이 명곡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들리고 많이 불리는 노래야 말로 명곡이다. 대중음악인 때문이다. 대중이 듣고 좋아해야 비로소 훌륭한 대중음악이라 할 수 있다. 단지 기술적으로 예술적으로 훌륭한 음악이라면 음악을 하는 자신들이나 즐기며 좋아하면 그만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히트곡의 기준이기도 하다. 들으려 해서가 아니다. 그런 노래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로도 어느새 그 멜로디와 가사를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 누가 만들었고 누가 불렀는가도 전혀 알지 못한 채로도 어느새 입가로 그 멜로디와 가사가 흘러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노래들이 몇 있다. '마음약해서'도 그런 노래 가운데 하나다. '무정부르스' 역시 노래를 부른 가수가 강승모라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들어서 알게 되었다. 흥겨운 자리만 있으면 부르던 노래였지만 '마음약해서'의 가사를 다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더구나 잠시 유행하고 마는 노래로는 명곡이라 부르기에 많이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히트곡이라 하기에도 잠시 유행하고 잊혀진 노래를 과연 히트했다 말할 수 있을까? 반복해서 불려져야 한다. 세대를 뛰어넘어 들리고 불려질 수 있어야 한다. 역시 그런 노래들이 있다. 어디서 그것을 확인하는가? <전국노래자랑>을 통해서다. 마니아도 전문가도 아닌 그저 평범한 갑남을녀 필부필부가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노래들을 통해서. 전문적인 지식이나 체계적인 기교따위는 없이 그저 좋아서 부르고 흥겨워서 즐기는 그들의 무대를 통해서.

 

음정도 엉망이다. 박자도 맞지 않는다. 가사마저 제멋대로다. 이해한다. 필자도 그렇게 배운 노래는 그렇게밖에 부르지 못한다. 알아서가 아니다. 들으려고 해서가 아니다. 부르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멜로디와 가사가 입에 붙어 버렸다. 원곡과는 어쩌면 전혀 다른 자기만의 멜로디이고 가사이고 박자다. 그런데 좋다. 그런데 즐겁다. 그래서 따라부른다. 기쁠때나 슬플때나 어디 모임이 있을 때나 남에게 들려주고 싶을 때. 무엇보다 자기에게 들려주고 싶을 때. 아마 그 가운데는 부를 줄 아는 노래가 그 노래 딱 한 곡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 대중음악으로서 위대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필 노래들의 대부분이 트로트라는 점도 그래서 주의깊게 살펴볼 부분이다. 트로트란 한국과 일본의 전통음악 위에 근대화된 서구의 체계를 덧입힌 것이다. 트로트라는 말부터가 우리에게는 일제강점기이던 20세기 초반 서구에서 유행하던 폭스트롯의 리듬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뿌리는 같지만 그래서 한국의 트로트의 일본의 엔카는 쓰이는 음계부터가 다르다. 그만큼 한국의 트로트에는 전통가요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전통의 민요가 담아내던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바로 신명이라는 것이다.

 

슬픔을 슬픔으로 끝내지 않는다. 슬픔의 끝에 어깨가 들썩이는 춤사위가 이어진다. 그래서 신명이다. 신이 깃들었다 하는 것이다. 슬픈 이야기도 털어놓다 보면 어느새 흥에 겨워진다. 아프고 아픈 이야기인데 누군가에게 하염없이 늘어놓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흥에 겨워 아픔마저 잊게 된다. 그것이 신명이다. 그래서 그같은 소통의 창구가 막혔을 때 신명은 도리어 불이 되어 자신을 태우게 된다. 신명과 화병은 그래서 하나다. 트로트의 구성지면서도 신명나는 멜로디와 리듬은 그로부터 비롯된다. 가사는 슬프고 멜로디는 구성지고 리듬은 신명난다. <불후의 명곡2>의 무대에서 아쉬웠던 부분 가운데 하나였다.

 

화요비의 '마음약해서'는 슬펐다. 들고양이는 밴드였다. 전통의 국악과 통속적인 트로트, 그리고 록의 사운드를 하나로 녹여냈던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상 가장 독특한 음악을 들려주던 밴드였다. 어째서 수십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지조차 모르게 일상으로부터 익숙해져 있는가. 노래 중간에 나오는 '짜라자짜짠짠짠'이야 말로 이 노래가 들려주고자 하는, 그리고 사람들이 듣고 따라부르고자 하는 모두일 것이다. 별이 부른 '립스틱 짙게 바르고' 역시 내지르기보다는 조금 더 삼켰어야 하지 않을까. 신명에 있어 소통의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니. 타인에게 이야기하되 그것을 자신이 듣고 슬픔과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유리시킨다. 차라리 잊어주겠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 곱게 단장하며.

 

손호영이 부른 '밤이면 밤마다'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반전이었다. 솔직히 손호영 자신의 노래는 그다지 대단할 것이 없었다. 코가 막힌 듯 발음은 부정확했고 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손호영다운 무대가 아니었는가. 스윙풍의 편곡과 뮤지컬의 군무를 연상케 하는 무대가 절로 함께 춤을 추고 싶어지도록 만들었다. 스스로 크게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가 주는 신명에 동참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가사는 들리지 않았지만 노래가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고나 할까.

 

B1A4의 무대는 단지 상대가 안좋았을 뿐이었다. 적당히 저렴하고 적당히 세련되었다. 그야말로 어느 동네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해 <전국무대자랑>의 무대에 오른 듯 친숙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프로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은 것은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아이돌로서의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잘생겼으며 멋있었고 그러면서도 귀여웠다. 실력만 놓고 본다며 대상감이지만 인기상이 너무 아쉽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했다. 젊음을 바짝 끓여 무대에 서 있었다. 다른 수많은 <전국노래자랑>을 스쳐간 젊음들처럼.

 

정동하의 무대는 원래 김태원이 가장 즐겨부르는 노래가 '무정부르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 무대라 할 수 있었다. 게리 무어의 '빠리지앵 워크웨이'의 연주에 이어진 구성진 '무정부르스'의 가락은 항상 김태원이 들려주던 그것이었다. 의외로 멀리 바다건너의 기타리스트가 작곡한 곡의 멜로디와 코드가 가장 한국적인 트로트의 가락과 어울려 떨어진다. 도입부의 강렬한 록사운드는 그 자체로 반전이었고, 김태원은 그 반전에 다시 반전을 더했다. 한 바탕의 쇼였다. 말 그대로 최고의 쇼였다. 대중음악은 대중을 즐겁게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마지막 438점이라는 고득점으로 우승을 차지하고 김태원과 정동하가 보여준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 퍼포먼스는 그들의 프로로서의 자의식을 보여준다 할 수 있었다. 초대석에 앉은 송해 역시 그 순간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최고점수로 우승을 차지한 것이 우연은 아니었다.

 

차지연도 운이 없었다 할 것이다. 순서만 바뀌었다면 어쩌면 1승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B1A4보다 더 고급스러우면서도 그러면서도 대중적인 친밀감을 잃지 않았다. 이래봬도 프로다. B1A4와는 다른 프로로서의 자존심이 일개 참가자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트로트가 갖는 구성짐과 그것을 넘어선 신명이 한 바탕 춤사위로 제대로 승화되고 있었다. 어째서 사람들은 모이면 슬픈 트로트의 가사를 읊조리며 어깨춤을 추는가. 그래서 차지연은 춤을 춘다. 떠나는 아쉬움이 무대의 신명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너무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참가자들과 그리고 청중들과 함께 하며 집중력을 잃지 않은 송해야 말로 프로 가운데 프로일 것이다. 사실 송해라고 하면 쟁쟁한 동기와 선배, 후배들 사이에서 크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2선에 물러나 있던 이였을 것이다. 당시의 코미디언 스타 가운데 송해의 이름은 그다지 거론되고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다른 모든 이들이 일선에서 물러나 있을 때 오로지 그만이 남아 사람들의 이름에 오르내리고 있다. 송해의 말에는 그런 진정이 묻어나 있는 것이다. 후회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라. 가장 오래고 동시간대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프로그램의 MC가 바로 송해 자신이다.

 

<불후의 명곡2>라고 하는 제목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 준 무대였다. '불후의 명곡'이란 어떤 노래를 두고 일컫는 말인가? 어떤 노래를 두고 과연 '불후의 명곡'이라 부를 수 있을까? 송해만큼이나 오래다. 그러면서도 친숙하다. 스스럼없이 오빠라 부른다. 장난도 치고 재롱도 떤다. 그리고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전국노래자랑>이다. 그 답의 하나를 보여주었다.

 

조금 더 길게 편성했어도 좋았을 뻔했다. 그 노래들 뿐일까? 더 많은 노래들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울고 웃기고 위로해주고 북돋워주던 노래들이다. 영원히 들려지고 불려질 노래들일 것이다. 짧아서 아쉬웠다. 여운이 남는다. <불후의 명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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