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다. 그러면서 또한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해석되고 수용된다. 드라마란 현재에 생산되고 소비되어지는 것이다. 과거의 사실이란 어쩌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과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들에게 있어 뛰어난 인물이란 어떤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겠는가? 남다른 훌륭한 자질과 실력을 갖춘다는 것은 - 아니 나아가 놀라운 업적을 이룬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것인가?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남들보다 위에서 남들보다 앞서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시험은 그를 위한 증명이다. 더 어려운 가치있는 시험에 도전해서 마침내 합격했을 때 그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학벌사회라 부르는 이유다.
어째서 드라마에서 백광현(조승우 분)는 역사에도 없는 의과시험을 치르고 있는가? 인의가 되기 위해서다. 비천한 마의에서 보다 높은 신분의 인의가 되기 위해서다. 의술이란 단지 그 수단에 불과하다. 의과시험은 그 과정일 것이다. 그를 위해 노력한다. 그의 주위에는 내의원 수위라는 높은 지위에 있는 고주만(이순재 분)과 청나라에 유학까지 갔다 온 명문가 출신의 의녀 강지녕(이요원 분)이 있다.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배우기까지 했는데 노력마저 더해진다면 떨어지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시험에서 합격하고 마침내 백광현은 승자가 된다. 스스로 독학으로 침으로 말을 치료하는 법을 깨우치고 그것을 사람에게 적용하여 조선후기 한의학의 혁명을 일구어냈던 백광현에 비해 더 명확하다.
굳이 이명환(손창민 분)과 정성조(김창완 분)의 존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경쟁해야 한다. 맞서 싸워야 한다. 궁극적으로 승리해야 한다. 백광현의 높은 지위와 명성은 바로 그에 따른 보상일 것이다. 이유가 필요하다. 백광현이 굳이 의술을 배우고 의술로써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저 의술이 좋아서. 처음에는 말을 치료하고 나중에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으로써 보람을 느꼈기 때문에. 의술로써 자아를 실현하고자 했다. 너무 멀다. 마의에서 인의로 신분상승을 하고 이명환과 정성조라는 사악하지만 강력한 적과 맞서싸워 승자가 되어야 한다. 드라마 <골든타임>에서도 이선균도 그래서 그리 말하고 있지 않던가. 그러려고 의사가 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자면 드라마의 백광현이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눈에 비친 백광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성실히 공부해서 글도 알고, 독학으로 스스로 깨우치기 보다는 열심히 주위로부터 배우고 책을 배워 익혔다. 시험도 치렀다. 목적의식까지 명확하다. 말을 치료하는 마의가 된 것도 주위 환경이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어서, 인의가 되고자 한 것은 마의에 대한 차별과 무시에 대한 반발로, 신분상승을 위해 마의에서 인의가 될 결심을 하게 된다.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하고 마침내 자신의 적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 이해하기 쉽다.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우리 자신들에 의해 생산되어지고 소비되어지는 통속드라마인 때문이다.
묻고 싶다. 만일 자신의 자식이 단지 흥미가 있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분야에 홀로 도전하려 한다면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이끌어주는 이도 없고, 가르쳐주는 이도 없으며, 전례 또한 없다. 무언가 대단한 성공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증명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 그 대표적인 예로 연예인이 있을 것이다. 그나마 거대기획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증명이 되어준다. 오디션은 그런 사람들에게 공식적인 창구의 역할을 한다. 시험을 치른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단지 자기가 좋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할 때 그것을 좋다고 지켜반 보고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과거의 백광현은 그럴 수 있어도 현대의 백광현은 그래서는 안된다. 백광현이 시험을 치르고 책을 읽고 주위에서 배워 의술을 익히는 이유다. 우리 자신의 모습인 때문이다.
말그대로다. 드라마는 퓨전이 아니면서도 철저히 퓨전을 추구한 드라마일 것이다. 배경은 과거이고, 공간 또한 과거의 그곳이지만, 사람들은 현대의 우리 자신이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 과거로 옮겨가 지금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와는 전혀 다른 현대의 어딘가를 옮겨놓은 듯한 이타인 마을이라든가, 신분을 잊고 사랑에 빠진 공주의 모습이라든가, 여성이 의술을 배우겠다고 청에 유학하는 모습 등. 조선이라는 국호와 현종이라는 왕호, 공주니 마의니 하는 칭호를 제외하고 그것에 역사속 어느 공간 어느 시점이라 단정지을 수 있는 단서가 어디에 찾아볼 수 있는가.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할 것이다. 현재를 투영하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드라마로서 현재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현재의 가치에 충실하게 그것을 과거로 옮겨놓으려는 이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모범생이다. 착하다. 성실하다. 말도 잘 듣고 향상심도 있다. 모두가 좋아하는 그런 훌륭한 인재상이다. 실제의 백광현과는 다른 지금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백광현이다. 우리 자신이 바라는 백광현일 것이다. 입맛이 쓰면서도 그것이 그래서 또한 흥미롭다. 드라마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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