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뱀파이어 검사2 - 충격의 반전, 새로운 시즌에 대한 기대를 키우다.

까칠부 2012. 11. 19. 09:51

당했다. 제작진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어찌 보면 무척 단순하다. 지애(김지영 분)는 단지 민태연(연정훈 분)을 절망으로 몰아넣기 위한 L의 계획에 의해 납치된 것이었고, 지애를 납치하고 특수수사팀을 혼란에 빠뜨린 어린이인신매매조직은 그같은 L의 계획을 위해 청부를 받고 동원된 것이었다. 배후에 다른 조직 같은 것은 없었다.

 

어쩌면 지애를 납치한 배후에는 거대한 음모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지애를 납치한 조직과 L과의 사이에도 어떤 깊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L은 '나쁜 피'다. 과거 '나쁜 피'라 불리우는 존재를 정부의 주도 아래 비밀리에 연구한 적이 있었다. 시즌2가 시작되고 초반 몽타쥬처럼 조각난 기억의 파편들이 드라마의 서두를 장식하면서 과거는 바로 현재와 이어지고 있었다. 민태연을 뱀파이어로 만든 박훈(공정환 분)이 아직 인간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는 현재를 바로 과거에 종속시켜버린다. 어쩌면 이 모든 사건들이 과거의 어떤 은밀한 비밀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중심에 L이 있었다.

 

하지만 분명 라울(박재훈 분)은 '나쁜 피'를 보았다 말했지 그것이 L이라고는 한 번도 말한 적 없었다. 민태연이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뱀파이어가 L이었기에 라울이 말한  이 모든 비극의 근원에 존재하는 '나쁜 피'의 정체가 L일 것이라 스스로 넘겨짚었을 뿐이다. 시청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즌1에서 가장 오랜 뱀파이어였던 박훈보다 더 오랜, 박훈을 뱀파이어로 만든 L의 존재야 모든 것으 근원에 존재하는 '나쁜 피'일 수밖에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고를 확장시킨다. L이 찾으려 하고 있는 누군가와 지애를 납치한 조직을 L이 뒤쫓으려 한다는 사실, 조정현(이경영 분)을 뱀파이어로 만드는 것 역시 L의 변덕스런 선의가 아닐까 추측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다 착각이었다. 그것이 마지막 순간 허탈해 하면서도 새롭게 등장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나쁜 피'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는 이유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시청자를 기만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나쁜 피'의 정체란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인가? 필경 모두가 아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라면 반전의 의미가 퇴색된다.

 

어쩌면 시즌 단위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강하게 작용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재미로 따진다면 L - 아니 '나쁜 피'의 배후에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조직이 있는 쪽이 더 재미있다. 특수수사팀으로서도 감히 어찌할 수 없는 강대한 적이 '나쁜 피'와 함께 얽혀 있어 '뱀파이어 검사' 민태연과 특수수사팀과 부딪히게 된다. 강대한 적이 꾸미는 음모와 사건만으로도 얼마든지 초장기시리즈를 기대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즌이란 하나의 단위이며 거창한 시리즈보다는 TV드라마로 적당한 소품을 추구한다. 거대조직은 뱀파이어가 된 조정현 개인에 의해 초토화되는 어린이인신매매조직으로 소모되고 L과 관련한 과거의 중대한 기밀들은 다시 '나쁜 피'에게로 넘어간다. L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시즌2를 통해 종료하고 다시 '나쁜 피'를 중심에 놓은 '시즌3'의 독립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만 시즌3에서도 '나쁜 피'를 중심으로 독립된 단위로서 이야기가 구성될 것인가. 시즌1과 시즌2의 시간적 간격을 고려한다면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이번 시즌에 대한 만족도가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

 

폭주하는 조정현과 어느새 본색을 드러내며 루나(요시타카 유리코 분)를 공격하는 L의 존재, 조정현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민태연 앞에서 부장검사 주지희(김보영 분)의 지시를 받은 경찰특공대에 의해 조정현은 사살당하고 만다. 결국 이 모든 것이 L의 계획이었다. 지애를 납치한 것도, 지애를 납치하여 특수수사팀을 혼란에 빠뜨린 것도, 절망 속에서 조정현이 스스로 뱀파이어가 되도록 유도한 것도, 그리고 마지막 순간 정작 L이 '나쁜 피'가 아니었다는 사실까지. 민태연은 L과 같이 죽고자 했지만 아마도 '나쁜 피'라 여겨지는 누군가에 의해 살아 있었다. 도대체 그는 누구이며 민태연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시종일관 긴장을 유지하며 답을 찾았다 싶은 순간 차라리 배신과도 같은 반전으로 시청자를 충격으로 몰아넣는다. 여지까지 남긴다. 시즌3를 벌써부터 기다리라. 화가 날 정도다.

 

마지막회 전반을 지배한 것은 영혼이 저리도록 시린 절망이었을 것이다. 지애가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있었다. 지애를 살리려면 자기가 죽어야 한다. 이미 자신의 손은 더럽혀져 있다. 더렵혀진 손으로 - 더구나 인간이 아니게 된 몸으로 지애의 곁에 있을 수는 없다. 조정현은 지애를 떠나보내고 절망 속에 지애를 유괴한 인신매매범들을 하나하나 죽음으로 내몬다. 유일한 희망이 지애였지만 지애의 손을 잡기도 전 무심한 총탄이 조정현을 쓰러뜨리고 만다. 차라리 그에게는 죽음이 구원이었을까? 악해질 수밖에 없었던 나약한 영혼의 사내는 그제서야 비로소 안식을 얻게 된다. 그것은 L에 대한 오마주다.

 

지독한 절망 속에 희망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다시 연구소를 탈출해서 희망을 꿈꾸었을 때 그에게 다가온 것은 그보다 더 처절한 절망이었다. 희망이란 없다. 차라리 처음부터 희망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L이 진정으로 분노하는 것이다. 차라리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렇게 짐승처럼 사육당하며 사용되어졌다면. 인간이라는 자각조차 없이 그저 사물로써 도구로써 그렇게 소모되었다면. 희망을 저주한다. 그가 굳이 조정현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이유일 것이다. 헛된 희망으로 민태연을 조급하게 만드는 이유다. 절망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 자신이 겪은 그와 같은 잿빛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죽음은 차라리 구원이다. 그는 차라리 죽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뱀파이어가 괴물인가? 인간이 괴물인가? 조정현은 끝내 지애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본래의 마음을 되찾는다. 그러나 조정현에 의해 죽어간 인신매매조직은 어떠한가? 조정현을 죽이도록 지시한 주지희는 과연 인간이라 말할 수 있는가? 뱀파이어 L을 뱀파이어로 만들고 도구처럼 사용한 것 또한 인간들이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자식의 병을 고치기 위한 수단으로서 조정현의 아버지 또한 L을 사용하려 한다. 기계적으로 민태연을 공격하고 조정현에게 총격을 가한 경찰특공대에게서는 아예 살기조차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뱀파이어와 인간, 과연 누가 진정한 자신들의 적인가?

 

몰아치고 있었다.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고, 갈등과 위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다. 기대가 어긋나면서 당혹감과 더불어 어느새 드라마에 끌려가고 있었다.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허탈하게 만드는 최악의 반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패배감과 함께 기대가 싹튼다. 스릴러란 이런 것이다. 자신감이 모두를 감탄케 한다.

 

시즌3에 대한 기대가 크다. L보다 더 강하다. 그리고 더 비밀스럽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주위에는 더 깊고 은밀한 비밀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주지희로 대표되는 인간의 악의가 더욱 강하게 민태연과 특수수사팀을 휘감을지 모른다. 민태연과 특수수사팀은 새로운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인가. 유정인(이영아 분)과 민태연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가. 소소한 재미와 스케일이 압축되어 다가온다. 시즌2가 쉬어가는 과정이라면 시즌3에서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본격적인 위험과 싸움이 시작되려 한다.

 

드문 스릴러의 수작일 것이다. 어쩌면 케이블TV이기에 가능한 본격적인 스릴러 드라마일 것이다. 적절한 완급조절과 매력적인 캐릭터, 무엇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메시지가 있다. 음울하되 침울하지 않다. 밝지만 가볍지만도 않다. 즐겁게 보며 무겁게 느낀다. 시즌3를 기다리게 된다.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지금까지로는 부족하다.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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