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빈의 '당신'을 들으며 한없이 몰입하고 있었다. 아리아를 듣는 듯. 오로지 노래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다른 아무것 없이 오로지 노래속 주인공이 되어 노래를 들려주려 하고 있었다. 조금만 감정을 더 절제했다면. 하지만 그 이상 감정을 절제했다가는 가요가 아닌 클래식이 되어 버린다. 박현빈이 성악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고 말았다. 노래란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대중가요란 결국 대중과의 소통이다. 대중과 대화하는 것이다. 말로써 다하지 못할 것을 노래로써 전한다. 노래로써 다하지 못할 것을 가수의 표정과 몸짓으로 전한다. 그런 점에서 임태경은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빼고 빼고 또 뺀 나머지 가운데 도저히 뺄 수 없는 것들을 간결한 몸짓과 표정, 그리고 목소리로 들려주었었다. 하지만 이제까지와는 다른 절제된 진지함에서 박현빈이라는 가수의 진정성을 보았다. 노래는 가볍지만 노래를 부르는 자신은 한없이 무겁다. 그가 대중들에 사랑받을 수 있는 것도 그 무거움과 깊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하염없이 가볍기만 해서는 자신도 모르게 휩쓸려 사라질 뿐이다. 먼 훗날 박현빈이 배호의 뒤에 있을 수 있기를 바라는 바다.
노라조 역시 마찬가지다. 조빈과 이혁, 흔히 이혁의 가창력은 알아도 조빈의 노래실력은 우습게 지나치기 일쑤다. 하지만 정작 노라조의 정신사납기까지 한 퍼포먼스를 지탱하는 것은 조빈의 목소리가 갖는 단단함이고 여유다. 출연가수 가운데 가장 전통의 트로트가 갖는 뽕끼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친숙하면서도 능숙하다. 그리고 그 위에 퍼포먼스의 얼개를 쌓는다.
과연 조빈의 목소리 없이 그저 이혁의 고음만이 나와서 이번의 높은 점수가 가능했을까? 조빈의 우울함이 이혁의 고음과 만나 처절한 비극이 되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리 과격한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는 와중에도 그에 휨쓸리는 법이 없는 단단함이 그들에게는 있다. 그것을 실력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조빈이 있다. 우습지만 우습지만은 않다. 노라조라고 하는 밴드가 한 순간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껏 올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가벼운 음악을 한다고 해서 자신이 가벼워해서는 말 그대로 바람에 휘날려 사라질 뿐이다. 아무리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와 노래를 무대에서 보인다 하더라도 자신마저 우스꽝스러워져서는 얕잡힐 뿐이다. 박현빈의 노래는 고음이 많다. 어지간한 사람은 따라부르기조차 버거울 정도다. 그러나 항상 그는 무대에서 여유롭게 웃는다. 단 한 번도 무대에서 힘든 기색을 내보인 적이 없다. 무대 밖에서도 항상 여유롭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불후의 명곡2>가 갖는 가치인지도 모르겠다. 진지한 음악적 깊이와 가벼운 일상의 한담들. 이기찬이 주사가 심한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다. 화요비가 술을 잘 만다는 사실도 신동엽을 통해 들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노래가 그처럼 하찮은가. 이기찬이 부른 '오늘은 고백한다'는 과연 우승에 어울리는 최고의 노래이고 무대였다. 원곡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넘치는 호소록을 자신이라는 그릇에 담아 거슬리지 않게 정제해 들려주고 있었다. 한없이 감미로우면서도 또한 한없이 열정적인 목소리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런 그도 무대 뒤에서는 그는 아무렇지 않은 수다를 즐기는 한 개인에 불과하다. 멋지지 않은가. 무대 위에서와 무대 뒤에서의 서로 다른 모습들이.
프로라는 것일 게다. 그렇게 가볍게 웃고 떠들다가도 어느새 무대에 올라가면 심각해진다. 무대 아래에서 그렇게 떨던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는 방방 날아다닌다. 거짓말같다. 하지만 프로니까. 그리고 무대니까. 그래서 더 진한 감동으로 전해지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돌변하여 전하는 감정과 이야기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다. 가수와 대중이 소통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을 이루고 있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든 가수가 익숙한 친구처럼 정겹고 사랑스럽다.
B1A4는 이번에는 조금 소심했다. 차라리 원곡에 충실하던가. 그도 아니면 아예 원곡을 파괴하더라도 자기만의 색깔을 살리던가. 지금까지의 무대와는 달리 도발적인 느낌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지난 '잊혀진 계절'에서와 같은 원곡에 충실하려는 모습도 없었다. 이도 저도 아니게 그저 어설프게 놀다 내려온 느낌이었다. 준비기간이 부족했을까? 아니면 40년이라는 세월이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조금은 버거웠을까? '비내리는 명동거리'가 들려주는 감성이 그들이 공감하기에는 오래기도 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했다.
그에 비하면 레드애플은 대선배 배호의 '안녕'을 철저히 자기들만의 색깔 안에 가두려 하고 있었다. 원곡의 멜로디와 가사는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자신들만의 연주와 퍼포먼스를 입혀 자기들만의 무대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감동이 퇴색하는 것 같다고 스윗소로우는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레드애플 자신이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고 그리고 레드애플이라는 이름을 남겼다. 기대가 생긴다. 과연 이들은 앞으로 어떤 음악을, 어떤 무대를 들려주고 보여줄까? 당연한 말이지만 노래도 썩 잘한다. 관심을 가져볼 만한 밴드다.
체리핉터가 우승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것은 체리필터의 무대였다. 마치 대선배 배호에게 고백하는 것 같다. 이것이 체리필터라고. 원곡의 멜로디라인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그것을 철저히 자기식대로 녹여내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체리필터다. 이것이 체리필터의 음악이고 무대다. 하지만 그 격렬함은 배호의 절제된 우수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것이 또한 체리필터만의 경의겠지만 청중이 듣는 것은 다를 수 있다. 하필 카메라가 어색하게 박수를 치는 관객의 표정을 잡았다. 조유진의 보컬은 과연 국보급이다.
이기찬의 우승은 예정되어 있었다. 임태경의 순서가 조금만 뒤로 바뀌었다면 또 결과는 몰랐을 것이다. 절제와 오버를 넘나들며 노래와 자신을 훌륭히 버무려냈다. 노래를 들으며 이기찬의 감정을 듣는다. 이기찬의 목소리를 들으며 노래의 감동을 전해듣는다. 약간은 소심한 듯 관객을 선동하는 모습에서 친숙한 웃음마저 자아내고 있었다. 무대 뒤에서는 그리 어색한 표정만 짓더니. 항상 이기찬의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받고 있었다. 그의 우승을 축하한다.
이런 분위기가 좋다. 하찮은. 가벼운. 그러나 친숙한. 친해진다는 건 별 진지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진지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각하지 않은 이야기를 심각하지 않게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용없는 이야기들에도 울고 웃고 화내고 떠든다. 무대는 다르다. 그래서 그들은 프로다. 이번에는 미스에이의 수지가 주인공이 되었다. 항상 즐겁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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