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구성지다'라는 단어의 뜻을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하게 된 계기였을 것이다. 설마 세상을 떠났을 때가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는 나이였었다니. 세상을 다 산 사람의 관조하는 맛이 있었다. 감정에 깊이 빠져들지 않으면서도 어느새 설득당하고 마는 여운이 있었다. 울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그 울음마저 꾹꾹 눌러 삼키기에 더 슬픈 것이다.
하기는 배호의 삶은 그의 노래보다도 더 기구했다. <돌아가는 삼각지>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톱스타로 발돋움하기 바로 전해 그는 이미 24살이라는 젊다기에도 어린 나이에 신장염으로 투병을 시작하고 있었다. 바로 이 신장염이 그로부터 5년 뒤인 1971년 이 한창 나이의 젊은 가수를 세상을 등지도록 만든다. 동료가수의 부축이 없으면 무대에 설 수조차 없고, 무대에 서서도 노래를 부를 기력조차 없었다. 하지만 죽어도 무대에서 죽겠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의지는 죽음보다도 더 강했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의 목소리에 깊은 슬픔이 담겨 있는 것은. 그러나 그의 슬픔은 슬픔이라는 감정에 빠져들거나 휘둘리는 그런 슬픔이 아니었다. 그조차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조차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다. 어려서 배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멋지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묵직한 저음과 그 저음 속에 꾹꾹 눌러담은 감정들이 남자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라 말하는 듯 싶었다. 그가 떠나고 어느새 4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그 감동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치 안개와도 같다. 비보다도 더 가는 어느새 촉촉히 젖어가는 바스라진 안개의 가루들과도 같다. 어스름 수은등이 비친다. 텅빈 거리는 어둠 속에서 수은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차도 사람도 없는 검은 길과 검은 하늘, 그리고 부연 안개와 수은등, 그의 노래는 확실히 나트륨보다는 수은등이 더 어울린다. 북적이는 거리보다는 한적한 외딴 거리가 더 어울린다. 상투적이지만 사람의 본성이란 원래 상투적인 것이다. 아무도 없는 가운데 그저 그의 목소리만이 들린다. 절대의 고독과 절대의 절망, 하지만 길이 있다면 길이 끝나는 곳도 있으리라.
1960년대라면 대한민국 가요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일 것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미군과 함께 미국의 대중문화가 물밀듯 이 땅에 밀려들고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주었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막대한 구호물자로 절망에 빠진 국민들을 살려냈다. 세계최강의 군사력과 세계최고의 부, 하지만 그 이전에도 미국은 당시의 대한민국보다 한참 앞선 보다 정교하고 세련된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의 대중문화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중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더구나 그 수준마저 당시의 대한민국의 그것에 비해 훨씬 앞서 있었다. 어느새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어로 된 음악을 듣기 시작한 대중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음악이 살아나려면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950년대부터 그런 시도는 이어지고 있었다.
1960년대는 그같은 미국의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의 대중음악계로 진출하는 전환점이라 할 수 있었다. 배호 역시 외삼촌들인 김광수와 김광빈이 당시 KBS와 MBC의 악단장을 맡는 등 손꼽히는 음악인들이었고 배호 자신도 드러머로서 12인조의 악단을 이끄는 밴드마스터를 역임한 바 있었다. 그만큼 다양한 음악을 접했고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몸으로 익힐 수 있는 배경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전통의 트로트와는 다른 차라리 미국의 스탠다드의 그것에 가깝게 들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보다 세련되면서도 그러면서도 전통의 가요에서 벗어나지 않는 절묘한 균형점은 당시의 시대를 대변하고 있었다 할 수 있다. 배호가 살다 간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은 본격적으로 서구의 음악을 받아들이며 일대 변신을 꾀하게 된다. 트로트 역시 기존의 전통의 방식에서 새로운 보다 정교하고 세련된 선진의 기법과 양식들을 받아들여 진화하고 있었다. 그 정점에 바로 배호가 있었다. 아마 1970년대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암흑기만 없었다면 배호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높은 평가를 듣고 있지 않았을까?
임태경이 무대에 서는 순간 필자는 임태경의 우승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갖는 힘이다. 노래가 갖는 힘이다. 사람이 노래를 한다.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를 들려준다. 이보다 더한 감동이 있을까? 넘치지 않게, 지나치게 앞서가지도 그렇다고 뒤쳐지지도 않으며, 담담히 그 자리에 서서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준다. 자기의 이야기인 듯. 그러면서도 남의 이야기인 듯. 배호가 그 자리에 있었다. 단지 그는 배호가 아닌 임태경이었을 뿐이다. 아름다웠다. 그 말 밖에 다른 수식어는 필요없다.
손호영의 무대는 말 그대로 손호영의 스타일이었다. 그럼에도 반복된다는 느낌 없이 새롭다. 쉽지 않지만 손호영은 그것을 해내고 있다. 다만 '돌아가는 삼각지'와 무대의 퍼포먼스가 따로 노는 느낌은 없지 않은가. 뮤지컬인듯 혹은 6, 70년대 어느 클럽의 쇼를 재현한 듯 화려하고 흥겨운 퍼포먼스 가운데 정작 노래는 묻히고 있었다. 무대 자체는 흥겹고 정겨웠지만 그런 점에서 배호의 원곡과 비교가 된 것은 아닐까. 만일 이 노래가 손호영의 오리지널 노래였다면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원곡을 아는 입장에서도 무척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었다. 경쟁자인 임태경이 너무 셌다.
임태경과 마찬가지로 목소리 하나로 승부했지만, 일단 무엇보다 목소리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고음에서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이 방송을 통해서도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 앞서갔다. 때로는 노래보다 앞서가는 것도 필요하다. 노래보다 앞서 대중들에 자신을 보인다. 자신의 표정을, 자기의 감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어떤 노래에서는 연주조차 자제된다. 연주를 최대한 자제하며 오로지 가수의 노래에만 촛점을 맞춘다. 모든 것을 덜어내고 노래 하나만을 남긴 임태경에 비해 정동하에게는 자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보다 컸다. 하기는 정동하는 록커다. 록이란 주관적이며 자폐적인 음악이다. 훌륭한 노래였고 무대였다.
미스에이는 무대가 너무 안 좋았다. 시도는 좋았다. 어설프게 노래를 따라부르기보다 자신들의 스타일에 맞게 노래를 재구성한다. 미스에이만이 가능하다.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오로지 미스에이만이 할 수 있는 무대다. 전혀 새롭다. 배호의 노래가 이렇게도 재구성된다. 아니 재탄생된다. 하지만 관객들의 연령대가 너무 높다. 평소 아이돌의 무대에 익숙하지 않거나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다지 호의로 받아들이기 힘든 자리였다. 노래의 편곡도 좋았고 안무도 훌륭했지만 결국 무대를 즐기는 것은 관객이라는 뜻일 것이다. 기대한 이상이었다. 미스에이의 다음 출연을 벌써부터 기대하게 된다. 즐거웠다.
스윗소로우는 역시 강자였다. '두메산골'을 그런 식으로 컨트리풍으로 편곡해 부를 수 있다니. 원곡에 충실했던 전반부와 컨트리 리듬에 맞춰 흥겹게 달려가는 후반의 구성이 무척 흥미롭다. 문득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는 미스에이의 수지처럼 필자 역시 놀라며 무대에 집중하게 되었다. 임태경이 아닌 배호가 스윗소로우를 이겼다. 만일 모인 청중들이 배호의 팬들이 아니었다면. 배호의 노래를 기리는 자리가 아니었다면. 임태경은 노래를 불렀고, 스윗소로우는 스윗소로우가 노래를 불렀다. 여전히 아름다운 화음은 이들이 어째서 <불후의 명곡2>의 최강자인가를 확인하게끔 한다. 아름다웠고 흥겨웠다. 스윗소로우다웠다.
화요비는 참 노래를 잘한다. 화요비만의 이른바 '뽕기'일 것이다. 트로트 특유의 '뽕기'가 그녀의 R&B창법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숨소리 하나까지 계산한 듯 애절한 도입부에 이은 흥겨운 쇼무대, 그리고 이어진 다시 피아노 연주와 노래, 흥겨우면서도 노래가 갖는 비통한 정서를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소화해 들려준다. 임태경의 무대가 아쉽다. 너무 압도적이었다. 아마 첫무대가 아니었다면 점수도 400점은 훌쩍 넘길 수 있었으리라. 임태경이 경쟁상대라는 것이 화요비에게도 너무 아쉬웠다. 오늘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임태경이었다. 임태경이 들려주고자 했던 배호 자신이었다.
음악프로인가 하면 예능프로그램이다. 아니 예능프로그램 쪽이 맞을 것이다. 무대의 진지함과 무대 뒤의 부산함. 신동엽의 짓궂은 소재가 노래에 젖어 있다가도 왁자하게 웃게 만든다. 이전의 무대를 잊어버릴 정도로 웃음소리 또한 크다. 스윗소로우의 소개에서는 한 대 얻어맞은 듯 당황했고, 화요비에 대한 소개에서는 마치 친한 여자친구를 보는 듯 짓궂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가수와 대중의 거리를 좁혀준다. 이들이 이토록 정겹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그것이 설사 꾸며진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도 한결 무대를 즐기는 자신이 즐거워진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고작 8년, 하지만 그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배호가 우리에게 남겨주고 간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계기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저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들도 없다. 배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미스에이도 없다. 선인이 남긴 발자취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누구보다 크고 깊은 발자국을 남긴 이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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