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란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욕망 또한 어떤 것을 절실하게 욕구하는 본능적 충동이다. 무엇이 다를까? 간절한 것도 바라는 것도 같은데 어째서 꿈과 욕망은 서로 다른 것일까?
모두가 앤서니 김(김명민 분)을 싫어한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이기심이 싫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희생도 아랑곳않는 그 비열함과 난폭함이 싫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앤서니 김이 만드는 드라마를 위해 넉넉지 않은 형편에 일부러 돈을 갹출해 내놓기도 한다. 제작자로서의 앤서니 김은 믿을 수 있다. 전자가 욕망, 후자가 꿈이다.
몰론 꿈도 욕망도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다. '21세기 폭스'와 같은 세계최고의 제작사를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내고 싶다. 다름아닌 바로 자신을 위해서. 하지만 세계최고의 제작사란 굳이 드라마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놀라고 감탄할만한 목표일 것이다. 만일 이루어낸다면 그것은 감동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을 위한 꿈이지만 그것이 모두를 감동시키고 모두를 자신의 꿈으로 끌어들인다. 이를테면 좋은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이고은(정려원 분)의 꿈이 '경성의 아침'이라는 대본을 중심으로 모두를 모여들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욕망은 다르다. 같은 꿈을 향해 나가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감동을 잃는다면 그것은 추악한 이기에 다르지 않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짓밟고,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다른 누군가의 절망과 좌절을 쌓아간다면, 그래서 모두의 증오와 원망의 대상이 된다면, 그렇게 마침내 손에 넣게 된 꿈이란 어느 누구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한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동의를 얻지 못한다. 자기만의 꿈으로 끝난다. 그래서 욕망이다.
앤서니 김이 드라마 제작에 보태라며 돈을 모아온 스탭과 직원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다. 모두의 앞에서 약점을 보이는 것이다. 눈물조차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다. 울더라도 혼자 울고 감동받더라도 홀로 감동받는다. 그리고 이내 그 눈물마저 약으로 진정시킨다. 그가 울 수 있는 그 공간이, 그리고 눈물을 허락할 수 있는 그 시간이 그에게는 자신에게 솔직해 질 수 있는 한계일 것이다.
그래서 무리수를 둔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누구도 보이지 않는 그 좁은 공간에서 오로지 자신이 바라는 목적만을 위해 그저 앞으로만 가려 한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두는 단지 방해물에 불과하다. 자신의 발걸음을 늦출 수 있는 모든 것은 단지 거추장스러운 짐에 불고하다. 그렇게 짓밟고 부수고 그저 앞으로만 걸어왔다. 좁은 창으로 보이는 세상을 오로지 그 한 가지에만 맞추며. 나중에는 그조차도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물론 제국프로덕션의 회장(박근형 분) 쯤 되면 상관없을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그것이 탱크라면 오히려 주위에서 조심하고 알아서 비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만한 힘이 회장에게는 있다. 얼마든지 주위를 자신의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는 돈과 권력과 지위가 있다. 앤서니 김이 그토록 목표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굳이 다른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절대권력. 아마 어느 순간 '20세기 폭스'는 '제국의 회장'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최고의 제작사가 아닌,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권력자. 하지만 그는 회장이 아니었다.
제국프로덕션의 회장이 굳이 아직 힘도 미약한 앤서니 김을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앤서니 김은 자신과 같다. 언젠가 그에게 힘이 주어지면 과거 자신이 했던 그대로 하려 할 것이다. 위험하다. 이를테면 근친증오와 같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동경하면서도 증오하듯, 그들은 닮았기에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앤서니 김에게는 아버지가 없고 제국프로덕션 회장에게도 자식은 등장하지 않는다. 마주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마치 부자간의 대화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앤서니 김에게는 이고은이 있었다. 이고은이란 앤서니 김을 다시 태초의 자궁으로 되돌려 놓는 모성과 같을 것이다. 좁은 자궁에서 그는 과거의 자신과 만난다. 순수했던, 그러나 순수할 수 없었던 원래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대화를 나눈다. 자신이 진정 꿈꾸었던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사채업자로 들은 '욕망'이라는 단어와 성민아가 건넨 '20세기 폭스사'라는 명사는 그 문을 여는 키워드가 되어 주었다. 아주 오래전으로, 잊고 있던 과거로 그는 조금씩 거슬러 여행을 떠나게 된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사회적 메시지가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어야 했다. 그저 가난해서 육성회비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경멸당해야 했었다. 육체적 고통은 별 것이 아니다. 모두의 앞에서 하찮은 존재가 되어 비난받고 매를 맞아야 한다는 사실에 자존감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다. 차라리 가난을 증오하고 부모를 원망하라. 그래서 부자가 되었다. 악착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아 마침내 부자가 되었다. 상처받은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이 이룬 부를 동경과 존경의 눈으로 보는가.
앤서니 김이란 물신숭배의 현대 우리사회의 천민자본주의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부란 꿈이었다. 희망이었다. 간절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분노에서 시작되었다. 증오와 원망에서 시작되었다. 세상에 오로지 자신 혼자 뿐이었다. 가족도 무엇도 없이 정글에 홀로 던져진 채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살아왔다. 그는 지금도 필사적이다. 아무것도 갖지 못했기에 필사적이다. 경멸당해도. 조롱당해도. 그래서 비굴하게 굽히며 비겁하게 자신을 감추어도.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내게는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야 말로 앤서니 김의 존엄이다. 그가 잃어버린 반지다. 그가 제왕인 이유다. 무엇과도 드라마와는 바꾸지 않는다. 설사 그것이 제국 프로덕션이라는 강자를 적으로 돌리고 스스로 파멸로 향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지라도.
물론 아직은 꿈이라고 할 수 없다. 아직도 그는 혼자서 꿈을 꾼다. 그러나 성민아가 내민 5억이라는 돈을 잘 쓰겠다며 받아드는 순간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꿈에는 성민아가 있었다. 아니 이미 이전에 이고은이 있었다. 자신만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깨닫는 순간이 다가온다. 하필 그 자리에 이고은과 성민아가 함께 있다. 드라마는 멜로다. 특히 대한민국 현실에서 드라마란 멜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언가 연인의 멜로라기보다는 자식을 사이에 둔 어미의 싸움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다 자란 아이다.
흔히 겪는 일이다. 사업을 하다가도 투자자의 변덕에 보통 곤란을 겪는 것이 아니다. 어제 투자를 결정하고는 오늘 느닷없이 돈이 아까운지 투자를 철회하기도 한다. 남의 돈으로 사업한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남의 돈을 투자받아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고, 또 투자를 통해 다른 사람의 재능과 노력을 빌어 그 가치를 늘리고, 당연히 그 전제는 신용이 될 것이다. 하필 와타나베(장현성 분)가 야쿠자로 설정된 이유일 것이다. 야쿠자와 같다. 신용없는 투자자란. 누구도 믿지 못하고 자신도 믿지 못한다. 의외로 현실에는 그런 투자자가 많다.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여러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드라마라고 하는 꿈을 사이에 둔 인간의 드라마가 더 중요하게 그려지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로 꿈을 꾸는 앤서니 김과 드라마를 꿈꾸는 이고은, 그리고 드라마를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제국의 회장. 그리고 주위의 여러 사람들. 여러 이해로 얽혀 고민하고 갈등하며 때로 엇갈리기도 하는 그들의 이야기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다.
성민아가 그토록 지독스럽게 차였음에도 앤서니 김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그려지고 있다. 앤서니 김의 꿈을 보았다. 앤서니 김의 꿈에 동의하고 감동도 했다. 앤서니 김의 꿈에 동참하고 싶다. 누구보다 먼저 앤서니 김의 꿈이 갖는 가치를 본 것이다. 앤서니 김은 이고은에게서 자신의 꿈을 찾는다. 아직은 욕망만이 보인다. 그러나 앤서니 김은 꿈을 꾼다. 꿈을 되찾는다. 그의 욕망을 대변하는 회장의 존재는 그 속도를 가속시킨다. 구는 꿈을 꾸려 한다.
앤서니 김이란 꿈일 것이다. 욕망을 쫓으려는 꿈과 꿈을 이루려는 욕망. 그 경계에 선 자신들이다. 그가 매력적인 이유다. 결국은 내면의 순수를 찾은 것이기에 더 매력적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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