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전우치 - 전반부와 전혀 다른 후반부, 방향을 잃다.

까칠부 2012. 12. 29. 08:19

지금도 여전히 드라마 <전우치>가 시작할 때면 전우치(차태현 분)와 마강림(이희준 분)이 정확히 화면을 양분한 채 등을 맞대고 서로를 노려보는 그림이 나온다. 아마 처음 드라마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마강림은 원래 전우치의 라이벌이었다. 하기는 전우치를 연기하는 차태현조차도 캐릭터연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듯 보인다. 이희준에게 짐이 너무 무거웠던 탓일까?

 

이제 마강림의 역할이란 큰아버지 마숙(김갑수 분)에게 물으며 마숙이 의탁한 좌의정 오용(김병세 분)가 지시하는대로 움직이는 그저 하수인에 불과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일도 없고, 주도적으로 판단하거나 결정하는 법도 없다. 홍무연(유이 분)을 사랑한다지만 그가 홍무연을 위해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 있던가? 차라리 치가 떨리도록 전우치를 증오하여 전우치를 절망으로 좌절로 몰아넣었다면 이렇게까지 존재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평범하다. 악하다기에는 그 모든 악을 큰아버지 마숙이 대신한다. 김갑수는 과연 대단한 배우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주위에는 불길한 검은 아우라가 느껴진다. 확신에 차서 악을 행하는 그의 모습은 섬뜩할 정도로 혐오와 공포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는 전면에 나서는 캐릭터가 아니다. 차태현과 마강림이 서로 부딪히는 사이 마강림의 배후로써, 차태현과 홍무연 사이의 비극의 원흉으로서 등장했어야 하는 캐릭터였다. 그러나 마강림이 여전히 그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니 전우치는 너무 일찍 마숙과 만나고 만다. 어찌해야 할까?

 

남은 것은 지루한 마숙과 전우치의 맞대결 뿐인 것이다. 마숙은 음모를 꾸미고 전우치는 그것을 찾아 부순다. 마강림이 제 역할만 해주었다면 그 과정에서 전우치와 마강림 사이의 라이벌 구도는 드라마의 긴장과 흥미를 고조시키는 요소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강림의 존재가 사라진 사이 전우치는 마강림을 건너뛰어 직접 마숙과 만나고 만다. 마숙이 굳이 좌의정 오용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마숙과 전우치 사이에 또다른 매개가 필요하다. 마숙은 일부러 나설 필요 없이 오용의 사랑채에서 화로의 불씨나 뒤적이고 있어도 된다. 결국 마지막에 전우치가 상대해야 할 것은 마숙 자신일 터다.

 

그래서 역시나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왕이 전면으로 나서며 해묵은 신권과 왕권의 대립이라는 정치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중전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어디선가 한 번 쯤 본 듯한 흔하고 진부한 것이다. 부패하여 뇌물이나 밝히는 줄 알았더니만 그것을 팔아 어려운 이를 돕고 있더라. 중전이 관리들로부터 뇌물을 받는 장면에서 이미 이후의 전개를 예상하고 말았다. 그만큼 준비없이 성급하게 부실한 내용들을 필요에 의해 끼워넣은 결과일 것이다. 그렇게 오용은 왕의 대적자로 왕의 편에 선 전우치와 맞서게 되고 그런 오용의 손발이 되어 전우치와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마강림이고 그 배후에 숨은 마숙인 것이다. 마강림의 존재가 사라진 결과가 이렇게까지 드라마를 산만하게 흐트러 놓는다.

 

차라리 보다 이른 저녁시간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였으면. 굳이 정치이야기가 나올 것도 없이 도술을 쓰는 전우치라는 도사가 나쁜 무리들을 혼내준다. 성인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유치하다. 연기하는 자신들도 민망한 듯 차태현답지 않게 전우치의 대사에는 진심이 결여되어 있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혼내주는 수위도 너무 어설퍼서 성인이 보기에는 부족한 것 투성이다. 역시 준비부족이다. 초반 어설픈 CG에 의존하기는 했어도 제법 그럴싸한 대결장면을 보여주던 것과 크게 달라진 부분이다. 율도국이 멸망하는 과정에서는 꽤나 잔혹한 장면도 나와주고 있었다. 방향을 잃어버린 것일까?

 

원래의 전우치처럼 풍자와 해학을 담은 유쾌한 민담도 아니고, 홍길동을 흉내낸 듯한 의적활동 또한 어떤 진지함이나 치열함이 결여되어 있고, 왕과 좌의정 사이의 정치싸움은 애초에 준비되어 있지 않던 것이었다. 이혜령(백진희 분)의 위치는 어떻게 되려는지. 홍무연이 다시 살아서 전우치의 곁으로 돌아옴으로써 입장이 애매해졌다. 홍무연과는 오랜 인연이고 이혜령과의 관계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홈페이지를 찾아보는 것이 드라마를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캐스팅의 미스다. 분명해 보인다.

 

정극과 캐릭터물과의 차이일 것이다. 사건위주의 드라마와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는 분명 그 형식을 달리해야 한다. 연기하는 방식도 다르다. 어떤 이야기를 쫓아 캐릭터가 움직이는 드라마가 아닌, 바로 그런 캐릭터이기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의 드라마는 캐릭터의 묘사에 보다 비중을 두어야 한다. 캐릭터가 돋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희준의 연기는 분명 훌륭하지만 마강림이라고 하는 <전우치>라고 하는 드라마가 필요로 하는 캐릭터를 소화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차태현마저 헤매고 있는 중이다. 어렵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장르물이 많이 생소하다.

 

기대만큼의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장르물로서의 B급 정서에 어울리는 재미도, 그렇다고 정극의 진지함이나 스케일도, 그렇다 보니 코미디 역시 어딘가 붕 떠 있는 느낌이다. 유기적으로 엮이지 못하고 모두가 따로 논다. 전반부와 이번주부터 시작된 후반부가 차라리 전혀 다른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래도 마무리만 괜찮다면. 아쉬울 따름이다. 소재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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