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대풍수 - 2부의 시작, 더 치열하고 냉혹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다.

까칠부 2012. 12. 28. 08:51

청춘의 꿈은 끝나고 장년의 현실이 욕망이 되어 돌아온다. 과연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던 이성계(지진희 분)의 꿈은 여전히 고려의 백성들을 생각하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되고 있겠는가. 이인임(조민기 분)과 대등하게 맞서는 그의 모습은 어느새 노회한 정치가의 그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바르지 않고 곧지 않은 것을 참지 못하던 젊은 날의 이성계와는 달리 이제는 곧잘 진실을 감추고 뒤로 음모를 꾸미는 법도 안다.

 

오랜만에 마주한 목지상(지성 분)과 해인(김소연 분)의 모습이 낯설다. 지나온 시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의 오해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올곧게 사랑하고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던 젊은 날과는 달리 이제 그들에게는 걸린 것들이 너무 많다. 이제는 이성계의 부관으로서, 그리고 서운관의 교수로서, 아버지마저 저버리고 목지상을 쫓던 해인이 아버지의 뜻을 마저 이루겠다 목지상을 찾고 이성계를 만나려 한다. 아직 서로에 대한 미련이 아주 없지는 않을 테지만 - 어쩌면 그 오랜 세월을 서로를 잊지 못하고 지내왔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이제 그들은 서로를 마주하고도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없다.

 

하나의 고비가 지나간다. 13년의 시간이란 소년이 청년이 되고 청년이 다시 장년의 책임을 알아가는 사내가 되어가는데 필요한 시간이다. 무엇이 진실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진실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만이 중요하다. 진실을 알릴 것인가? 진실을 알리고 이인임을 처단할 것인가? 고려를 위해 권신 이인임을 제거하고 우왕(이민호 분)에게 권력을 돌려줄 것인가?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이성계가 오랫동안 품어온 야망은 갈 곳을 잃고 만다. 차라리 이것으로 이성계로 하여금 명을 등에 업을 수 있도록 계략을 꾸민다. 권력자의 책사가 되어가고 있다. 더 이상 개인 목지상이 아닌 이성계의 부관 목지상으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야(이윤지 분)와의 마지막 만남을 끝으로 순수는 떠나가고, 해인과의 헤어짐으로 인해 열정도 간 곳이 없다. 메마른 수염이 그를 말해준다.

 

어머니를 찾던 순수한 청년 목지상은 더 이상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먼저 자신을 등진 첫사랑임에도 여전히 연민하며, 자신의 사랑을 위해 해맑게 웃던 순진하던 목지상은 더 이상 없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다. 이인임을 제거하고 난 다음에는 요동정벌을 둘러싸고 최영과 대립한다. 우왕을 폐하고 나서는 조민수의 차례일 것이고, 창왕을 폐하고 나서는 다시 공양왕을 받들며 이성계의 야망에 맞서려는 정몽주 등 고려의 마지막 충신들과도 맞서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드라마가 어디까지 다루려는지는 필자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과연 그같은 끝없는 피의 길 위에 옛날과 같은 순수와 열정이 깃들 자리란 어디일까? 그러나 바로 그것이 목지상으로 하여금 목지상이라 불리게 만들 그의 길이기도 할 것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역사에 대한 탁월하면서도 감각적인 작가의 이해와 묘사가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했다. 최영이 이성계가 아닌 이인임의 손을 들어준 것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한다. 원래 최영과 이인임은 그다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최소한 이인임이 집권하고 있던 시기 최영은 군부의 실력자로서 요직에 있었다. 이를테면 구세력인 권문세족의 수장이 이인임이라면 구군부의 수장이 최영이었던 셈이다. 오랜세월 두 세력은 서로 교류하며 유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 역사에서도 이인임은 우왕의 후견인으로서 공민왕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자칫 혼란스러울 수 있었던 고려의 내정을 안정시킨 공이 있다. 당시 고려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했던 것이 이인임과 같은 왕을 지키고 고려의 내정을 안정시킬 실력자였던 탓이다. 실제 이인임 자신도 우왕에 대해서는 진심을 다해 섬기려 했던 정황이 보인다.

 

이인임이 최영 등에 의해 제거되는 과정도 역시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과 비슷하게 우왕 자신의 의지가 크게 반영된 결과였을 것이다. 당시 고려는 중앙군이 해체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 잦은 전란과 왜구의 발호로 말미암은 재정의 위축은 고려조정으로 하여금 더 이상 중앙군을 유지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내몰고 만다. 그리고 그같은 중앙군의 공백을 대신하고 있던 것이 '원수'라 불리우던 유력한 장수들이 개인적으로 모집하여 유지하고 있던 사병들이었다. 어느새 왕을 넘어서고 있던 이인임의 권력을 견제할 세력으로써 청렴하고 강직하며 충성심 강한 구군부의 실력자 최영은 상당히 매력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이인임을 제거하기 전 그래서 우왕은 최영의 딸을 자신의 후비로 맞으며 그를 배후에 두게 된다. 만일 우왕의 의지가 이인임의 제거에 있지 않았다면 이후의 정국은 상당히 혼란스러웠을 테지만 덕분에 이인임이 제거되고 권력이 최영에게 넘어가는 과정은 무척 자연스러웠다.

 

그저 방탕하기만 한 바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인임에게 눌려 기를 펴지 못하는 비운의 군주도 아니었다. 이인임은 유능했고 최영은 충성스러웠다. 다만 최영의 강직함이 경직된 모습으로 나타나며 이성계에게 틈을 보이고 말았던 것 뿐이었다. 우왕이 만만했다면 오히려 이성계는 우왕을 굳이 폐위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우왕과 최영의 관계 또한 상당히 밀접해서 이성계로서는 우왕을 그대로 왕위에 놔두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드라마에서도 우왕은 상당히 영민한, 단지 뜻을 펼칠 기회를 갖지 못한 비운의 군주로 묘사된다. 정몽주와도 이성계는 상당히 친했다. 역사가 비극을 만든다.

 

명을 배후에 두기 위해 이인임을 속이고 국경을 넘으려는 이성계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국경을 지키고 있던 명나라 군사들이 고려왕의 사신이라는 이성계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병사를 동원해 그를 포위한 것이다. 물론 일시적인 위기일 것이다. 실제의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그래서 안좋다. 결과를 미리 안다. 모르는 것은 그 과정 뿐. 충분히 흥미가 간다. 더구나 주인공 목지상이 활약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사실상의 2부일 것이다. 하나의 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다. 이인임의 머리에도 희끗하니 서리가 내리고 있고, 이성계의 머리와 수염 또한 세월이 하얗게 내려 있다. 이정근(송창의 분)과 목지상의 턱에는 수염이 자라 있다. 이런 때 여자배우들은 불리하다.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데 세월만 지나가고 있다.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드라마, 기대는 점점 높아진다.

 

오현경의 수련개는 '악'이란 무엇인가를 너무나도 소름끼치도록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분노하는 태후를 보며 화를 내기보다 차라리 지겨운 표정을 짓고 있던 모습이라든가, 태후에게 억지로 지병에 좋지 않다는 기름진 음식을 먹이고는 무표정하게 돌아서는 모습, 심지어 무료하기까지 한 무표정한 얼굴에 태후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배경삼아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웃음이 지어질 때는 섬뜩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양심의 가책따위는 느끼지 않는, 차라리 아무런 악의조차 없이 악을 저지르는 악 그 자체, 악녀를 넘어선 악 그 자체로서의 수련개일 것이다. 아름답기에 차라리 그 악조차 아름답게 느껴지는 완벽한 악이다. 비중이 조금씩 줄어들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존재감 하나만 본다면 사실상의 주인공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정근은 여전히 아이같다. 여전히 아이같이 칭얼거리며 충동에 휩쓸리고 만다.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진정 자기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나 마치 손에 든 단 것을 빼앗긴 아이먀낭 더러운 땅바닥을 뒹굴며 마구 소리를 질러댄다. 다른 이를 해치고, 심지어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에게 모진 소리를 해가며, 그러나 정작 가장 상처입는 것은 자신이 아닐까. 홀로 남은 그의 곁에는 그만큼이나 아이같은 욕망덩어리 반야가 있다.

 

점점 더 재미있어진다. 긴장이 고조된다. 다음이 기대된다.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에 부합하면서도 드라마에 어울리게 각색된 내용들이 충실함을 더해준다. 단단하다. 야무지다. 시청률이 무척 아쉬운 이유다. 좋은 드라마다. 어쩌면 제목이 발목을 잡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다. 갈수록 본격화되는 다음을 기다리는 이유다. 다음주가 무척 기다려진다.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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