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를 모르겠다.
"상왕(우왕) 전하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 주실 일이 있어요!"
"이성계에게 마지막 복수를 하는 길을 알려주겠습니다."
그래서 고작 반야(이윤지 분)가 김저에게 요구한 것이 아들인 상왕을 죽이게 될 자백을 하는 대신 그 자백에 서운관의 가무 윤해인(김소연 분)을 끼워넣는 것이었다. 윤해인을 공모자로 몰아 죽인다고 해서 이성계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히려 윤해인을 감싸려던 목지상(지성 분)마저 이성계는 단호히 내치려 하고 있었다.
물론 윤해인이 자신이 꾸민 음모로 인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면 목지상이 받게 될 상처는 대단히 클 것이다. 그것은 목지상을 신임하고 있는 이성계에게도 적지않은 타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댓가로 우왕(이민호 분)은 김저의 자백으로 인해 꼼짝없이 사람들을 모아 자신의 복위를 꾀하려 한 주모자로 확정되고 만다. 단지 혐의가 있을 뿐인 것과 자백을 통해 죄가 명백히 밝혀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왕이었다. 더구나 현왕의 생부였다. 이성계 자신 또한 한때 우왕의 신하였다. 그런 왕을 죽이려 한다. 과거 그런 선례가 있었다. 그래서 이성계와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무리하게 우왕과 창왕을 공민왕이 아닌 신돈의 자손으로 꾸미고 있었던 것이었다. 왕씨의 후손이 아닌 신씨의 후손이라면 무도하게 찬탈의 죄를 범한 것이므로 거리낌없이 이들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아직 창왕이 왕위에 있는데 그 생부인 우왕에게 죄를 물어 죽이는 것은 이성계와 그 무리들에게 있어서도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김저가 자백을 하고 말았다.
무리수다. 그동안 윤해인은 철저히 잊혀져 있었다. 그런 인물이 있었던가 가끔 윤해인이 화면에 모습을 비출 때만 겨우 떠올리곤 할 정도다. 그래도 주인공이다. 주인공인 목지상(지성 분)의 연인이다. 이대로 잊혀진 채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래서 그토록 이성계와 그가 품은 큰 뜻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잔인할정도로 냉철한 모습을 보이던 목지상이 윤해인이라는 이름 앞에 어처구니없이 허물어져 버리고 만다. 이성계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마저 제물로 내놓으라 말하던 바로 그 목지상이 윤해인 만큼은 놓지 못하겠다며 떼를 쓰는 모습을 보이고 마는 것이다. 간절하다기보다는 비루하고, 애절하다기보다는 비겁하다. 그런 목지상을 윤해인은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인연은 다시 이어진다.
반야가 개입한 때문이다. 우왕은 반야의 아들이다. 우왕의 복위시도가 있었다. 그로 인해 무수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런데 반야 혼자서만 아무 상관없이 그저 손놓고 가만히 있다.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반야가 개입한다. 목지상과의 관계를 이용해 우왕을 살리려 하고, 이 모든 것이 목지상이 의도하여 계획한 음모라는 사실을 알고는 다시 목지상과의 관계를 이용해 그에게 상처를 주려 한다. 역사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반야가 드라마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란 이렇게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부분을 건드리고 지나가는 것 뿐이다. 그렇게 아들인 왕이 죽고 반야는 다시 이정근(송창의 분)의 아내가 되고자 한다. 반야와 윤해인이라고 하는 반드시 활용해야 할 카드가 있을 때 이런 무리수도 나오고 만다. 단지 역사의 거대한 격랑이 그같은 사소한 모순들은 가리고 지나갈 뿐.
그렇게 결국 목지상은 이성계의 곁을 떠나 마침내 '자미원국'을 찾아 길을 떠나게 된다. 참으로 먼 길이었다. 원래는 목지상이 대풍수로 성장하고 난 뒤 아버지인 목동륜의 뒤를 이어 자미원국을 찾아나설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목지상의 대풍수로서의 성장은 한 번도 보여진 적 없다. 단지 이성계의 책사였고 모략을 꾸미는 지략가였을 뿐이다. 그래서 이성계로부터 분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성계로부터 떠나 대풍수로 돌아올 계기가 필요했다. 목적이 의도를 만들고, 의도가 사건을 강제한다. 부자연스럽지만 필요하다. 어쩔 수 없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래도 목적지에는 이를 수 있어야 한다. 윤해인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듯 잊고 있던 자미원국마저 그렇게 다시 떠올리도록 한다.
그래도 목지상의 주군이기에 - 그래야 목지상이 꾸민 비열하고 잔인한 모략이 정당화될 수 있기에, 이성계에 대한 정당화 또한 드라마는 포기하지 않는다. 단지 전제개혁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신의 행보에 방해가 되는 - 혹은 방해가 될 정적이거나 정적이 될 인물들을 제거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공양왕이 즉위하고 정몽주 등에 의해 이성계와 그 무리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음에도 결국 실패하고 만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변안렬과 왕안득, 정지 등 자신의 사병을 거느린 무장들이 상당수 숙청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고려의 군사력 전부는 아니었다. 그러나 힘을 가진 무장들이 다수 권력에서 배제되면서 이성계의 무력은 유일한 전부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이성계는 나라와 백성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만을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정도전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다. 전혀 권력에는 관심도 없던 이성계의 이부인 강씨(윤주희 분)에게 접근해 그녀로 하여금 권력에 대한 욕심을 가지도록 곁에서 부추긴다. 이성계의 본처에게서 낳은 아들들에 대해 경쟁심을 가지게 하고 그것을 이용해 그녀를 움직이고자 한다. 장차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인해 강씨부인 - 신덕왕후의 두 아들인 방번과 방석, 그리고 방석을 세자로 삼도록 한 정도전이 죽임을 당하게 되는 원인이 여기서 비롯된다. 재능은 뛰어났지만 인격까지 훌륭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도전이 아닌 이성계가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과시욕도 강하고 권력욕도 강하다. 속물적인 정도전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반야의 존재는 그녀가 역사와는 달리 죽임을 당하지 않은 순간부터 살아있는 자체가 드라마에 부담을 주고 있었을 것이다. 죽었어야 할 이가 살아있으니 - 더구나 역사에서 그녀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당시로서는 타당한 이유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살아 있음으로써, 뿐만 아니라 살아서 그 존재를 알리게 됨으로써 부담은 현실이 되어 버리고 만다. 차라리 반야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더라면 굳이 이와 같은 무리수를 둘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기는 이정근 역시 이성계의 낙마에까지 관여하며 지금도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드라마라는 한계다. 어쩔 수 없다. 픽션이다. 역사 그대로라면 다큐멘터리일 수밖에 없다. 대풍수라는 제목부터가 역사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 제작의 현실은 상상에조차 제약을 가하고 만다. 틈이 보인다. 허술함이 보인다. 상상이 자유로울 수 있는 건 그만한 치밀한 계획과 철저한 준비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과연 목지상은 자미원국을 찾게 될까? 그 자미원국이란 대체 무엇일까? 이정근에게도 최후의 순간이 다가온다. 그 최후의 순간에 반야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마침내 조선이 건국되고 목지상을 기다리는 운명이란 무엇일까? 윤해인은 그때도 그의 곁에 있어줄까? 그녀가 입은 상처가 크다. 모진 고문의 고통보다 무고하게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이 더 시리다.
끝이 다가온다. 혼란스럽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려 한다. 그것이 더 혼란스럽고 모순되다. 그래도 어떻게든 제자리를 찾아가려 분주히 움직인다. 흥미롭다. 조금 더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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