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전우치 - 어느새 실종되어 버린 '도사' 전우치!

까칠부 2013. 1. 26. 08:39

지금까지도 여전히 일반명사처럼 쓰이는 미국드라마 <맥가이버>가 생각난다. 첫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지도 한 장 가지고 적지에서 탈출하지 않나, 고작 화학비료와 몇 가지 재료만을 가지고 화약을 만들어내지 않나,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런 몇 가지 패턴이 반복되는 흔하디 흔한 액션드라마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더 이상 수도관 테이프도, 스위스 나이프도 새로운 흥미를 주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한계였을 것이다.

 

도대체 첫회에서의 그 몇 장면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자문도 구해보고, 그것을 드라마로 자연스럽게 녹여내기 위해 고민도 하고 궁리도 했었겠는가. 그러나 한 주에 한 회의 분량을 써내야 하다 보니, 그리고 그것을 촬영까지 마쳐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정에 쫓기면서 그같은 노력들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신해서 드라마의 내용을 채우게 된 것이 맥가이버의 일상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사전제작의 비중이 높은 미국에서도 그런데 한국에서라면 과연 어떠할까?

 

사실 무리가 있었다. 드라마 <전우치>의 첫회에서 보여준 CG의 수준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허술하고 유치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한 주에 무려 2회 분량을, 그것도 회당 70분 분량을 완성해내려면 우려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그래서 첫회를 제외하고 도술장면에서 CG가 그렇게 드러나도록 쓰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최소한의 특수효과와 나머지는 배우의 연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나마도 부담스럽다. 아마 마숙(김갑수 분)과 마강림(이희준 분)이 홍무연(유이 분)과 함께 은광에서 매몰당한 이후 그것을 깨닫게 된 모양이다. 사라진 도술과 CG를 대신한 것이 다른 사극에서도 질리도록 보았던 왕과 권신간의 권력싸움이다. 차라리 전우치(차태현 분)가 아닌 왕과 상선(이재용 분)이 주인공 같다.

 

이제 와서는 굳이 드라마의 제목이 <전우치>여야 할 이유가 있는가 싶을 정도다. 코믹한 캐릭터 연기에 강한 차태현을 주인공으로 섭외했을 때는 그런 방향으로 드라마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성동일도, 그리고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통해 스타로 발돋움한 이희준 역시 마찬가지다. 여주인공 역시 백진희(이혜령 분)에서 유이로 중심을 옮겨가게 된 것이 캐릭터의 성격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원래는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전통의 '전우치' 이야기를 바탕으로 코믹한 캐릭터와 도술을 사용하는 환상적인 액션을 선보이려 했었을 것이지만, 그러나 더 이상 도술이라고 하는 자체를 드라마가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 자리를 대신할 다른 요소가 필요해진 때문이었다. 도술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잡아끌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 그리고 그것은 역시 이혜령보다는 비극을 내재한 홍무연의 캐릭터와 어울리고 있었다. 드라마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일 것이다.

 

<전우치>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아니 이제는 <전우치>라는 제목부터가 부담이 되고 있다. 도술을 쓰는 장면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그 도술로 인해 촬영일정에 무리가 있어서는 안된다. 예고편이 나오지 않은지가 벌써 한참 되었다. 한 주 촬영하면 바로 그날 편집까지 마쳐서 방송으로 내보낸다. 차라리 <전우치>가 아닌 그다지 특수효과씩이나 쓰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사극이었다면. 그래서 마숙은 그렇게 죽고 만다. 어이없이 홍무연의 존재를 알고 그녀를 찾아갔다가 전우치가 홍무연을 구하는 사이 홍무연이 던진 독묻은 칼에 맞고 위기에 처한다. 바로 그때 대군을 해치러 갔던 마강림은 종사관이 이끄는 관군에게 쫓겨 달아나게 된다. 전우치가 마숙을 잡을 때도 기대했던 화려한 도력대결은 없었다. 드라마가 유치해지고 단순해진다.

 

지난번 이미 한 번 지적했을 것이다. 드라마가 너무 지나치게 비장해지고 우울해진다. 어쩔 수 없다. 드라마의 모든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이 다름아닌 도사 전우치의 도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도술을 구현하는데 제한이 있다. 결국 전우치에게는 족쇄가 채워진 채 모순과 갈등만 심화되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전우치가 직접 나서서 해결을 못하니 전우치마저 궁지로 내몰리며 통쾌해야 할 드라마가 오히려 답답해지기만 한다. 끝내 그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 역시 통쾌함과는 거리가 먼 돌발적 우연에 내맡기고 만다. 마숙이 그렇게 위기에 처하다니. 악역에게도 악역에 어울리는 격이라는 것이 있을 텐데 너무 허무하다. 액션이라는 것이 시원한 맛에 보는 것일 텐데 코미디로서 그다지 웃기지조차 않다.

 

이제 거의 끝이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거의 끝에 다가와 간다. 그나마 좌의정 오용(김병세 분)의 전횡을 막을 방법을 마숙과 마강림의 계획이 마련해준다. 오용에게 왕위에 대한 욕심을 심어준다. 이제까지 단지 왕을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권력만을 휘두르려던 오용에게 왕이 되는 꿈을 꾸도록 만든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게 된다. 그것이 오용에게 역풍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우치가 한 것이 아니다. 상선도, 왕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렇게 드라마는 이도저도 아닌 허무한 이야기로 끝맺고 만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반전은 기대하지 않는다. 새삼스럽게 놀라거나 감탄케 하는 결말따위 전혀 기대조차 없다. 그저 지금까지 벌려놓은 일들이나 무리없이 끝내주기를. 어차피 전우치가 없어도 끝은 찾아온다. 아예 전우치가 사라져 있어도 결국에 마숙과 마강림, 오용의 최후는 찾아온다. 하긴 드라마일 것이다. 다시 한 번 한국 드라마 제작의 현실을 생각하며 그 한계를 실감하게 된다.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이었을 것이다. 도술을 쓰는 도사의 이야기란.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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