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야왕과 박인권...

까칠부 2013. 2. 21. 00:46

우려했었다. 하필 박인권이라니. 거의 대부분의 경우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창작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기본이라 여기는 내가 전혀 예외라 여기는 몇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스토리와 설정과 연출, 그리고 그림체. 더구나 그림이 더럽다. 한 페이지 넘기기도 무척 버겁다.

 

그래도 설마.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재미있다 여겼으니 드라마로 만드는 것이리라. 드라마로 만드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손도 보고 했을 테니 문제점들도 많이 바로잡아졌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주다해를 심판대에 올리려는 아무런 노력조차 없이 단지 그렇게 하더라도 주다해는 빠져나갈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만으로 주다해를 괴롭히는 이유로 삼는다. 주다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음습한 충동과 욕망을 복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 한다. 복수란 원래 그런 것이었던가.

 

그나마 원작은 더 막장이라 주다해는 악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짓들을 많이 저지른다. 역시 공중파의 한계다. 덕분에 주다해는 악녀라기보다는 그저 조금 얄미운 여자로 끝나고 말았다. 아니 조금 정도는 아니다. 사람에 따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미운 여자일 것이다. 밉기에 악녀라 하기에는 묘사가 상당히 부족하다. 자기가 짓지도 않은 죄에 대해서까지 그녀는 하류의 복수의 대상이 된다. 더욱 하류의 복수는 설득력을 잃고 허공에 붕 떠 버린다. 미우니까 혼내주어야 한다는 원초적 감정이 아니라면 동의하기가 무척 힘들다.

 

어쩌면 내가 워낙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많이 보았고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주다해 정도를 악녀라 하기에는 세상은 더 흉폭하고 더 음험하며 더 잔인하다. 하류 개인으로서는 얼마든지 주다해에 대해 복수심을 가질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역시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겉도는 느낌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주다해의 악행은 악행대로 부족하고, 하류의 복수의 당위는 또 당위대로 어설프다. 이래저래 많이 어설프고 부족하다. 나머지는 유치와 억지가 채운다.

 

도저히 더이상은 보고 있지 못하겠다. 그렇게 되면 월화드라마 가운데 보는 것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는데. 마의는 질려버렸고, 광고천재 이태백은 지겹고, 이제 야왕은 짜증난다. 예능을 굳이 챙겨보는 편도 아니니. 월요일 화요일은 리뷰가 아닌 그동안 쓰지 못했던 글들로 대신해야 할지 모르겠다. 드라마 한 편도 챙겨보지 않게 된 것도 참 오랜만이다.

 

박인권 원작이라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나는 그의 만화를 읽지 못한다. 읽지 않는 게 아니다. 아무리 읽으려 해도 한 페이지 넘기는 것부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참 오래 참았다. 지난주, 그리고 이번주, 맞지 않는 것은 보지 않는다. 욕조차 하지 않는다. 참 아쉽다. 시작만 거창했다. 개인적인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