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직장의 신 - 우스워도 멋진 그녀, 멋진 배우 김혜수를 만나다

까칠부 2013. 4. 17. 09:16

스타카토란 격정이다. 그리고 절제다. 넘치는 감정을 단속하여 가둠으로써 그 격정을 극대화한다. 그런 한 편으로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거리를 두어 대상을 객관화하여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탱고의 스타카토는 그래서 무척이나 관능적이면서도 외설로 빠지지 않는 절제미를 보여준다. 슬픔도, 분노도, 욕망도, 그리고 웃음도 그렇게 고도로 정제된다.

 

어쩌면 참으로 민망할 수 있는 장면들이었을 것이다. 예정에도 없던 홈쇼핑에서 - 그것도 촌스럽기 이를데 없는 빨간색 내복을 입고 흔치 않은 갖가지 과장된 포즈를 취해보이고 있었다. 상품을 시식하면서도 연기인 것이 뻔히 드러나 보이는 노골적인 표정과 몸짓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우스운 것은 좋은데 자칫 드라마나 배우 자신이 우스워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습기는 하지만 전혀 그런 모습들이 어색하거나 우스꽝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바로 절제였다. 그저 숨기고 아끼려고만 하는 절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노골적이었다. 과감하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다만 넘치려는 순간 그것을 멈출 줄 아는 절도가 그녀에게는 있었다. 그것은 프로서의 그녀의 자신감이고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그저 망가지는 것으로 웃기고 마는 한 바탕의 헤프닝이 아닌 프로로서의 '미스김' 자신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배우 김혜수의 힘이라고나 할까? 배우로서의 그녀의 경험과 자신감이 이렇게 선명하게 드러나고 만다. 우습지 않다. 오히려 멋지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미스김이라는 이름의 김혜수라고 하는 배우의 품격일 것이다. 드라마의 품격이다.

 

하기는 지난주 회식자리에서 탬버린으로 장단을 맞추머 분위기를 뜨우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마치 로봇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무표정한 가운데 몸짓만 신났다. 표정은 그대로인데 탬버린을 흔들며 춤을 추는 몸짓만 흥겨웠다. 그녀는 프로다. 즐거워서가 아니라 일기이게 회식자리에서 탬버린을 흔든다. 흥겨워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기의 역할이기에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일이라면 마땅히 지금 당장이라도 옷을 벗고 촌스러운 빨간 내복으로 갈아입는다. 빨간 내복 차림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민망할 수 있는 어떤 포즈라도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당당하게 취해 보일 수 있다. 시청자가 자신의 몸짓과 표정을 보고 상품에 대한 구매욕구를 가지게 되다면 그것이 그녀에게 승리이고 성공일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일이다.

 

김혜수가 아닌 다른 여배우였다면 어땠을까? 솔직히 지금으로서 김혜수 이외의 다른 '미스김'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건강하다. 강하고 힘이 있다. 당당하다. 그리고 경험이 더해진 치밀한 계산과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다. 어쩌면 코미디이기에 우스꽝스럽기도 하겠지만 '미스김'의 캐릭터를 우습게 만들지는 않겠다. <직장의 신>이 기대 이상의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전할 수 있는 원동력일 것이다. 우스운데 우습지 않다. 우스우면서도 가볍거나 하찮게 여겨지지 않는다. 우스우면서도 오히려 멋있는 미스김의 캐릭터처럼. 망가지는 그 순간에조차 '미스김'은 멋있다. 배우 김혜수는 멋있다.

 

아무튼 드라마를 끌어가는 것이 주인공 미스김(김혜수 분)이라면 드라마를 채워가는 것은 또다른 주인공 정주리(정유미 분)였을 것이다. 정규직을 회사의 노예라 말하며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당당한 미스김과는 달리 오늘도 정주리는 혹시라도 회사에서 쫓겨날까 전전긍긍하며 주위의 눈치를 보는 처지다. 혹시라도 잘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지 않을가, 하다못해 계약이 끝나도 연장되지는 않을까, 아니 그저 아무일 없이 계약기간이나 순탄하게 마칠 수 있으면. 첫월급이라고 받아봐야 이리저리 떼고 나니 남는 것이라고는 한 푼도 없다.

 

거의가 그렇지 않은가.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학자금대출에, 결혼하고 집이라도 장만하려 하면 그로 인한 은행빚을 갚아나가야 하고, 자식을 낳으면 자식 학원비며 대학등록금이며 막대한 돈이 계속해서 빠져나가게 된다. 월급을 받기는 받았는데 그것이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정작 손에 남는 것은 얼마 없다. 그렇게 살아간다. 필요한 것도 많고,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많고, 하면 좋겠는 것들도 많은데, 그러나 월급쟁이의 월급봉투란 항상 그 양이 정해져 있다. 나갈 곳은 많은데 들어올 것은 한정되어 있으니 결과는 뻔하다. 취직해서 월급을 받게 되면 모든 것이 끝이라 생각했건만 현실은 그것이 또다른 시작이었던 셈이다.

 

오히려 고향에 남은 어머니로부터 가방을 선물받는다. 가방 뿐만 아니라 방세마저도 어머니의 도움으로 겨우 치르고 만다. 그런 가방을 회사의 일로 인해 강제로 빌려주었다 그만 망가뜨리고 만다. 사과하는 사람조차 하나 없다. 하기는 장규직(오지호 분) 또한 회사를 위해 자신의 머리를 수단으로 내놓고 만다. 그 또한 현실이었을까? 자신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무척이나 소중한 물건이지만 다른 사람이보기에 그것은 단지 짝퉁가방에 불과했다. 망가뜨리고도 사과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오히려 화를 내고 책임을 물으려 하는 그런 정도일 뿐이었다. 장규직은 차라리 미스김을 원망할지언정 자신의 머리를 도구로 삼은 홈쇼핑업체에 시비를 걸지 않는다. 그것이 당연하다.

 

무정한(이희준 분)이 나쁘다. 엄한 기대를 품게 만든다. 어쩌면 미스김이 장규직보다 더 무정한에게 거부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따뜻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자꾸 현실을 잊게 만든다. 자꾸 현실을 잊고 헛된 꿈을 가지도록 만든다. 믿을 것은 자기 자신이자. 자신의 머리, 자신의 몸뚱이다. 정주리의 굳은 다짐도 그렇게 무정한의 친절 앞에 흐물거리며 녹아버리고 만다. 무정한은 물론 선의로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인 정주리 앞에 놓인 현실은 무정한처럼 다정하지 않다.

 

김혜수의 드라마다. 김혜수가 바로 미스김이다. 군데군데 어쩔 수 없이 어설픈 어색한 장면들이 아주 없지는 않다. 다연하다. 김혜수는 미스김이 아니니까. 김혜수가 굳이 미스김이 될 필요는 없다. 단지 미스김을 시청자들에 보여주면 된다. 미스김이란 어떤 여자인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인물인가. 그녀를 중심으로 드라마는 돌아간다. 드라마는 이루어진다.

 

묘하다. 한껏 웃게 만든다. 민망해서 손발이 오그라지도록 만든다. 그런데 우습지 않다. 우습게 여겨지지 않는다. 김혜수는 미스김이다. 드라마는 <직장의 신>이다. 정유미가 보여주는 사회초년생의 우울한 현실은 지금 우리들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의 이야기일 것이다. 아직 장규직과 무정한과 관련해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즐겁다. 코미디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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