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 - 도망치려던 남자와 도망치려는 여자, 마주서다.

까칠부 2013. 4. 19. 09:15

늘 꿈꾸던 이상형을 만났다. 상대에게도 자신이 이상형이었다.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졌다. 주위의 모두가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해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죽는 그 순간까지 두 사람의 사랑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소설을 써보자.

 

"그들은 만났고 사랑했고 그리고 행복했다."

 

더 이상의 긴 이야기가 필요할까? 풀어쓰나 늘려쓰나 크게 차이는 없다. 괜히 길게 늘려써봐야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다. 굴곡도 없고, 위기도 없고, 반전도 없다. 그냥 만나고 사랑을 하고 그리고 행복해한다. 두 사람의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다.

 

전혀 예정에 없던 사랑이었다. 차라리 배신과도 같았다. 조롱과도 같았다. 이상형과는 당연히 거리가 멀다.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될 이유따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해 보아도 원수나 되지 않으면 다행인 사이다. 그렇게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사랑에 빠졌다. 서로에게 반해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겠는가.

 

처음에는 당연히 반발한다. 불신하고 거부하고 도망치려 한다. 거기에 공연히 주위가 휩쓸리기도 한다. 주위의 입장이나 이해, 감정 역시 서로 얽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드라마는 만들어진다. 사랑하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사랑하는데도 사랑을 거부하려들고, 사랑으로부터 도망치려 하고 그것을 다시 잡으려 쫓아가고. 고뇌하고 갈등하고 충돌하고 엇갈리는 그 모든 것이 이야기를 만들고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드일지라도 해피엔드로 가는 과정은 결코 해피하지 않은 것이 바로 드라마인 것이다.

 

어째서 낙랑공주는 호동왕자와 사랑에 빠졌던 것일까? 오필리어가 햄릿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같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냉정하게 원수의 자식인 로미오를, 혹은 줄리엣을 자신의 안에서 잘라낼 수 있었다면. 원수와 사랑에 빠지고,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신분의 차이에도 간절히 사랑을 갈구하며, 끝내 사랑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 주위마저 최악의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럼에도 인간의 의지와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 그래서 사랑을 운명이라 말한다. 예정된 우연과 결정된 필연이 어떻게 해도 도망칠 수 없는 운명처럼 자신들을 속박한다.

 

도저히 사랑할 만한 상대가 아니다. 사랑해서 될 상대가 아니다. 결국은 불행해질 것이다. 자신은 물론 상대에게도 좋게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당사자인 자신들은 물론이거니와 주위 때문에라도 자제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자신과 모두를 위하는 길일 것이다. 어딜 감히 자신이. 어딜 감히 그런 상대를.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성으로 판단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렇게 애써 외면하고 도망치려 하는 와중에도 그런 서로가 간절히 떠오르고 만다. 사랑의 반댓말이 무관심인 것은 사랑을 하게 된다면 무관심하려야 무관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가 된다. 노민영(이민정 분)을 질투하는 자신이 한심스럽다. 질투하는 것을 넘어 기자로써 그런 감정을 악의적인 기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낸다. 거대언론사 사주의 딸이다. 기자다. 자신에 대한 확신도 있다. 자신감도 자존심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자신을 한심스럽게 여기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김수영(신하균 분)이 노민영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기자 안희선(한채아 분)의 그같은 결심은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질투하고 질투하고 또 질투한다. 그것이 그녀가 사랑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송준하(박희순 분)는 멜로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이유가 많다. 이유를 고민하고 이성으로써 결론을 찾으려 한다. 어쩌면 송준하 역시 안희선을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송준하의 감정은 보수언론사 사주의 딸이라고 하는 안희선의 현실을 넘기에는 너무 계산적이었다. 노민영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으려던 바로 직전 노민영이 출마를 결심하자 이번에도 그는 이유를 찾아 한 발 뒤로 물러서고 만다. 아니 그래서 그는 드라마의 또다른 축을 담당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노민영을 사랑하고 있고 안희선과도 과거의 인연이 있다. 송준하가 사랑을 하게 된다면 바로 거기까지다 다시 한 편의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정석적인 캐릭터들일 것이다. 타고났거나 혹은 훈련된 오만으로 인해 사랑하는 자신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타고났거나 혹은 주위에 의해 소중하게 지켜진 순수가 사랑하는 자신을 낯설어 한다.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사랑하는 그 순간에도 이성에 기대어 판단하려 한다. 그들이 엇갈린다. 그럼에도 감정에만 충실할 수 없음을 아는 또 다른 여자와, 이성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놓아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그런 정석의 멜로를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같은 현실정치와 엮어 한바탕 유쾌한 코미디로 만들어낸다. 그들의 사랑이 우스운 것이 아니라 그들을 고민케 하는 현실이 우스운 것이다. 김수영은 어느새 한결같고 그 진심은 이제 노민영에게 전해졌다.

 

사랑하는 남자의 모습이다. 사랑에 낯설어하면서도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그가 엘리트인 때문일 것이다. 사랑에 낯설어하면서도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 하는 것은 많은 로맨스의 여주인공들이 담당하던 때묻지 않은 순수에 의한 것이었을 터다. 사랑을 거부하는 것도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극단을 다시 안희선과 송준하가 보여준다. 굳이 복잡하게 돌아가지 않는 그같은 솔직함이 벌써 직구로 김수영으로 하여금 노민영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캐 한다. 노민영을 무대로 끌어올린다. 배경이 되어주는 정치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무겁고 부담스럽다. 사랑은 가볍고 유쾌하게. 즐겁고 행복하게. 비극에도 웃을 수 있다.

 

어찌보면 참으로 서글픈 모습일 것이다. 법안발의라고는 의정기간동안 단 한 건도 기록된 것이 없다. 그런데 지역구를 관리한다고 아침일찍부터 주민들이 즐겨찾는 등산로를 지키며 일일이 인삿말을 건네고 있다. 비가 내리는데도 굳이 조기축구회의 시합을 관전해야 한다. 하나라도 현안들을 살피고 그 대안을 찾고 궁리해야 할 시간에 정작 지역주민을 찾아 얼굴도장을 찍는데만 여념이 없다. 그래도 당선된다. 결국 문봉식(공형진 분)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킨 것은 그런 그에게 공천을 주고, 그렇게 공천을 받아 출마한 문몽식 자신에게 표를 주어 당선시킨 주민들 자신이라는 것이다. 누구를 비난하겠는가?

 

개인적인 감정을 언론보도에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는 안희선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중립을 잃는다. 반드시 중립적일 필요는 없더라도 중립을 지키려는 노력을 보여야 할 텐데 그조차도 가볍게 포기해 버린다. 아예 협박을 한다.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앞으로도 계속 불리한 기사를 써주겠다. 그로 인해 노민영은 그 의도와 상관없이 단지 폭력적이고 난폭하고 예의가 없는, 더구나 옷까지 못입는 국회의원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안희선은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김수영과 가까이하는 노민영에 대한 질투심을 불태울 뿐이다.

 

국회의원은 부모가 아니다. 선생도 아니다. 국민을 책임지고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그런 역할이 아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이 있을 때 국회의원도 의정활동을 통해 그것을 국정에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법안을 만들고, 그것을 통과시키고, 여러 경로를 통해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권한 안에서 최대한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인다. 국민이 바라지 않는데. 국민 자신은 무엇도 하지 않으려 하는데. 고작 잠시 시간을 내서 교육을 받는 정도인데도 그조차 못하겠다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국회의원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비단 정치의 문제가 정치인 자신의 잘못에만 의한 것은 아니라는 뜻일 게다.

 

마침내 김수영이 노민영에게 자신의 감정을 직구로써 노골적으로 당당히  털어놓고 있다. 노민영은 그같은 김수영의 진심과 - 더불어 자신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감정과도 마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안희선은 솔직하다. 송준하는 비겁하다. 김수영의 정치를 바꾸고자 했던 의지가 노민영에 대한 올곧은 감정으로 만나려 한다. 송준하는 김수영을 질투한다. 안희선은 김수영을 사랑한다. 노민영이 가슴에 묻은 사랑이 누구인가 보이는 것 같다.

 

그들은 만났다. 이상형도 아니었으며 서로 좋아할만한 아무것도 없는 사이였다. 만남도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주위의 여건도 그들의 편은 아니었다. 도망치려 했고 도망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사랑을 할까? 사랑을 하니까 또 드라마다. 정석을 보는 재미란 때로 새롭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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