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 - 진보와 보수, 그들을 위해 준비된 로맨스의 이유

까칠부 2013. 4. 18. 09:12

사실 드라마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그다지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 말하기 힘들다. 캐릭터도 평면적이고 이야기의 전개나 구성 또한 매우 진부하기 이를 데 없다. 두 주인공이 얼굴을 마주하고 속사포처럼 대사를 쏘아대는데 그러나 정작 드라마와는 그다지 녹아들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의도된 로맨틱코미디의 정석을 따라가는 목적에 충실한 대사이고, 설정이고, 장면이고, 연출이었을 것이다. 시청률이 지지부진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연애의 모든 것>이라고 하는 드라마가 필자의 흥미를 끄는 이유, 바로 소재의 힘일 것이다. 그 소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활용하는 작가와 제작진의 능력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주연들의 뛰어난 연기가 진부하고 전형적인 캐릭터와 설정과 만나 민망할 정도로 오글거리고 있을 때, 그런 주인공들의 평면적인 캐릭터를 적절한 현실의 소재와 조화시킴으로써 입체의 실제감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로맨틱코미디란 한 마디로 우여곡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에는 많은 고비가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크고작은 난관이 기다린다. 그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사랑을 이루어낸다. 그 과정에서의 헤프닝이 바로 로맨틱코미디인 것이다. 그렇다면 노민영(이민정 분)과 김수영(신하균 분)이라고 하는 젊은 초선의원들 사이에는 무엇이 그들을 방해하는 장애물로써 등장하게 되려는가. 바로 여기에서 작가는 한국정치의 현실을 직설적으로 묘사하여 집어넣음으로써 드라마에 보다 강한 리얼리티를 부여하게 된다. 사실이란 그 자체로써 시청자의 동의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전제가 된다.

 

하여튼 입만 열었다 하면 나오는 것이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이다. 정치현실과 그러한 정치현실에 매몰되고 마는 정치인 자신에 대한 조롱과 비판이 이어진다. 생뚱맞은 드라마속의 허구가 아니다. 현실의 이야기다. 사실의 이야기다. 시청자 자신도 이미 십분 공감하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다. 드라마속 여당이 현실의 여당이 되고, 드라마속 야당이 현실의 야당이 되고, 드라마속 정치인들이 현실의 정치인이 된다. 실제 현실에서 있었던 정치적 사건들이 다수 드라마적으로 가공되어 다루어지기도 했었다. 그런 현실의 배경 위에서 보수적인 집권당의 국회의원이 진보적인 소수야당의 대표와 사랑에 빠진다.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단지 상대가 보수언론사 사주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관계를 제한한다. 자신이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같은 학교를 나온 선후배로써 최소한의 관계는 유지하더라도 그 이상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가 의미하는 바가 그렇다. 보수는 진보의 적이다. 진보는 보수의 적이다. 적을 넘어서 악이다. 공존을 말해서는 안되는 배제하고 격멸해야 할 악 그 자체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든지 상대를 거부하고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있다. 하필 노민영과 김수영 자신들도 역시 진보정당의 대표이며 보수정당의 초선의원이다. 과연 그들은 사랑할 수 있을까?

 

한국 정치가 여전히 혼탁한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란 대화다. 타협이다. 공존이다. 정치에 있어 투쟁이란 결국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정치선진국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상대 또한 같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한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같은 사회에 살면서 그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궁리하며 실천하고자 하는 같은 구성원인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보다 나은 아이디어를 상대로부터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지금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겨질 뿐 상대 또한 자신과 같다. 자신과 동등하며 대등하다.

 

바로 그것을 전제하는 것이 국가라고 하는 신화다. 국가의 이념이며 철학이고 가치다. 바로 이것이 모든 국민이 추구해야 하는 국가라고 하는 이념이고 철학이고 가치다. 하지만 그 출발이 잘못되었다. 모두의 동의를 구하기도 전에 소수의 독단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고, 그에 반발하는 또다른 다수는 그와 맞서싸우는 것을 지상의 가치로 여기게 되었다. 더구나 한 차례의 전쟁과 이어진 첨예한 대립과 대결은 용납해서도 타협해서도 안되는 적의 존재를 확정지어 버렸다. 자신에 반대하는 것은 모두 적이다. 자신의 적인 동시에 국가와 사회의 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방의 불관용은 다른 한 쪽의 불관용적 대응을 불러왔다. 불관용에 대해서마저 관용하게 된다면 결국 그 사회에서 관용은 발붙일 곳을 잃게 된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라도 불관용에 대해서는 단호히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국가보다 그같은 투쟁의 기억이 전제되고 있었다. 여전히 서로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극단의 증오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새 상당수 국민에게 확산되고 있었다. 단지 한 마디 낙인을 찍는 것만으로 다른 편에 선 국민들에게 그는 적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같은 대표적인 두 가지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하나의 거대여당과 또 하나의 거대야당이다. 한국의 현실에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이 둘 중 어느 한 곳에 소속을 두지 않으면 안된다. 단지 정당의 공천을 받는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득표가 보장되고 당선의 가능성이 생긴다. 저쪽 편에 섰으면 적이고 이쪽 편에 섰으면 아군이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결과를 추구하든 상관없다. 어차피 그렇게 길들여진다.

 

어째서 한국의 많은 정치인들은 국민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가. 당연하다. 그들을 정치인으로써 살아가게 하는 것은 국민들 자신이 아니다. 그들에게 공천을 주고 당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기게 될 당의 실세다. 국민이 아닌 당의 실세들에 의해 공천받고 일단 공천받고 나면 당의 이름값에 기대 당선가능성이 생긴다. 국민은 정작 세세하게 후보자 개인의 자질이나 성향, 공약 등을 살피고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좌파냐 우파냐. 보수냐 진보냐. 혹은 수구냐 종북이냐. 오로지 그것만이 논란이 된다. 정체성만을 말하게 된다.

 

그런 현실에서 보수정치인과 진보정당의 대표가 만나 서로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된다.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것을 넘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떻게 되겠는가. 당사자들은 상관없다. 주위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가족이나 당직자는 물론 유권자들도 격렬하게 반응한다.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보수정치인은 적이다.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들에게도 진보정치인은 적이다. 당차원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진보적 성향의 변호사와 보수언론사의 일원이 사랑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유다. 그들은 결코 서로 어울릴수도 어울려서도 안되는 사이였던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그것도 이유가 된다.

 

다시 말해 이 드라마는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는 로맨틱코미디이면서 그러한 남녀간의 사랑을 통해 현실정치의 많은 문제점과 모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정치드라마이기도 한 것이다. 그들의 사랑이 완성되었을 때 현실정치의 근본적 문제들도 해결될 수 있다. 남녀간의 사랑이 시청자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의 많은 모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순간이다. 보수와 진보가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그 사랑을 이루어낸다. 보수와 진보가 공존한다. 공존을 허락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인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쉽지는 않다. 그 쉽지 않은 일들을 쉽게 이루도록 하는 것이 드라마다. 기대하는 이유다.

 

한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진다. 호감을 느끼고 상대의 매력과 장점을 확인하고, 그리고 서로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로맨틱코미디의 시작이다. 드라마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면 우연히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든 그 비정상을 정상적인 일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해답을 드라마는 찾아간다. 드라마속 현실은 항상 행복하다. 코미디란 항상 유쾌하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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